“예술이 진정하게 꽃을 피우려면 수준 높은 예술이 대중일반에까지 폭넓게 향유되어야 한다”

(시사매거진255호=차홍규 화백) 김찬동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장은 필자가 북경 청화대학 재직 시 국내 미술계를 잘 모르기에 자문을 구하려 만났던 오래된 지인이다. 인터뷰를 망설이는 그에게 “김 관장님은 한국 미술계를 움직이는 대표적 미술인의 한사람이고, 또한 평생을 미술영역에 종사해온 한 사람이시니 미술계에 관한 여러 사항들을 중심으로 나름의 생각을 자유롭게 인터뷰를 해주신다면 좋겠다”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김찬동(金瓚東1957~) 휘문고등학교 졸업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박사과정 수료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장, 미술전문위원 역임, 경기문화재단 뮤지엄본부장 역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큐레이터(<북한미술의 어제와 오늘>)부산비엔날레 큐레이터 (<아시안 아방가르드>)홍콩 한국문화원 개관전 기획(<접경개화>)현 수원시립미술관장,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 한국예술경영학회 이사,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어떻게 미술을 하게 되었나

중학교 시절, 미술을 좋아하는 터라 자연스럽게 미술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초등학교 때와는 달리 미술실기대회에 나가 상을 많이 탔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그 상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을 텐데도 스스로 재능을 조금씩 확인하며 열심히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중2 때부터는 데생과 유화를 그리며 좀 더 깊이 빠져 들어갔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수업을 끝내고 미술실에 남아 늦게까지 그림을 그리는 일이 가장 행복했고 아마 그때가 정말 그림에 순수하게 미쳐 지냈던 시기로 기억난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미술을 전공해야겠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고2 말 진로를 놓고 엄청 고민이 많았는데 결국 많은 고민 끝에 내가 가장 좋아하고 인생의 말년에까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조용히 결심했다. 물론 장남으로 미술을 전공한다는 것을 집에서는 반대하셨지만 용기를 내어 자신의 인생에 충실하기로 했다.

 

우리 미술계의 현실은

80년대 말 서울올림픽을 거친 후 우리미술계는 급격히 팽창되고 세계화되었다. 피상적으로는 매우 다양화되고 풍부해졌다. 광주비엔날레 등 다양한 비엔날레가 출현하고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공립 미술관들도 늘고 전문적 역량을 가진 큐레이터들도 많이 육성되었다. 대안공간을 통해 과거와는 다른 시스템을 통해 작가들이 발굴되고 해외 유학이 늘면서 작가들이 국제적 맥락에서 활발하게 활동한다. 미술시장도 활성화되고 부분적인 일이긴 하지만 단색화를 고유 명사화하고 브랜드화 하여 세계무대에 소개하기도 하고, 전위미술의 1세대 작가들의 작품이 테이트 모던 등 국제적인 미술관에 소장되는 등 우리미술이 국제적 맥락에서 조금씩 진입하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인 백남준이나 이응로 같은 작가가 있지만 한국에서보다는 독일이나 미국에서 또는 프랑스에서 더 그들의 정신과 가치를 더 중시하고 있다. 한국엔 능력 있는 작가들이 많지만 이들을 국제무대에 제대로 소개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미술의 정체성과 관련한 이론적 기반이 약하기 때문이다. 서구나 다른 나라의 미술과 다른 점을 역사적으로 관통하는 중심 개념이 명확치 않기 때문이다. 엄밀히 따지면 서구 중심의 개념으로만 교육하고 평가하고 의미를 부여해왔기 때문에 서구미술의 아류처럼 비쳐지고 있다.

미술관이나 대안 공간, 레지던시, 비엔날레 등 세계 미술계에 일반적 기반시설이 충분할 정도로 늘어나 있고 이를 기반으로 많은 작가들이 배출되고 있지만 기반시설마다의 특성과 전문성이 취약하다. 국공립미술관의 소장품의 수준이나 미술관 큐레이터들의 수준도 국제적 기준에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미술관의 숫자보다 내실을 다지는 일에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우리 미술관의 수준은 지난번 외국인 마리 관장을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영입하는 해프닝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많은 잠재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미술계이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시장의 규모가 작다보니 자생성이 약한 상태에서 국가의 지원금과 지원제도에 대한 의존도는 높아 자유로운 창작의 에너지가 발산될 수 없는 측면이 아쉬운 점이다.

21세기에 국가 경영자들은 문화예술에 대한 거시적인 안목을 키워야 할 중요한 시기라고 말하는 김 관장. 그는 “국가가 예술현장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거나 문화예술을 정치에 종속시켜서는 곤란하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경구는 우리에게 유효한 원칙이다”라고 피력했다.

아쉬운 점과 대책은

큰 아쉬움이 있다면 창작활동을 중단한 점인데, 가끔 중진작가들이 되어 있는 과거의 동료들이나 후배들을 볼 때 작업에 대한 미련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또 하나의 아쉬움이 있다면, 과거 현장에 필요한 정책을 개발하고 제도를 운영하기도 했지만 과거의 그것들이 시간이 지나 환경과 여건에 따른 불가피한 변화를 겪게 된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2000년대 조성된 대안공간들에 대한 지원과 그 결과에 대한 것들로, 당시 대안공간은 미술계의 새로운 활력소였다. 기성제도에 대한 혁신적 발언과 극복의 주체들이었다. 그곳들을 운영하는 젊은 기획자들은 힘들었지만 의욕이 넘쳤고 공간들은 새로운 에너지의 원천이 되었다. 나도 젊었을 때이니 신진작가들에 대한 지원이나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지원하는 일은 매우 매력적인 것이었고 그 분야에 대해서도 많은 열정이 있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그 대안공간들은 새롭게 변화되지 못하고 하나의 또 다른 제도로 변질되어 버렸다. 이제는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못한 채 견고한 제도가 되어 국가 지원금의 상당부분을 잠식하는 주체들이 되었다.

또한 최근 10년간 수준 높은 예술을 창작하는 방향보다는 일반시민들의 예술향유라는 쪽에 정책적 초점이 맞추어지고 정책이 시장에 개입하기까지 하다 보니 양질의 창작활동과 창작역량이 적극적으로 강화되질 못하고 있다. 어찌 보면 다원화사회의 가치에 접목된 하향 평준화된 예술이 수준 높은 예술과 혼동되고 있는 양상이다. 시장은 시장논리에 의해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공적영역에서는 시장실패를 적극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예술에 좀 더 치중하도록 하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 아울러 미술관이나 문화기반시설의 숫자를 늘려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반시설 운영의 내실화와 전문화가 더 중요한 부분이며 기반시설을 활용한 고급 콘텐츠의 생산과 문화 경제 등 4차 산업의 가치를 내다보는 정책수립과 실천도 필요하다.

 

앞으로의 계획은

현재 맡고 있는 미술관장의 직분을 잘 수행하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 미술행정, 미술경영학적 연구, 소규모미술관의 운영과 경기문화재단 산하 6개의 미술관 박물관 운영책임을 통해 얻는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수원시미술관의 정체성과 경쟁력을 구축하는 일에 중점을 두고 싶다. 수원시립미술관은 (주)현대산업개발이 건립하여 수원시에 기부한 건물이다. 건립한지 4년째로 접어든 신생미술관으로 수원이라는 지역이 가진 역사 문화적 특수성을 기반으로 국제적 수준의 미술관으로까지 위상을 높이는 일이 과제이다. 비록 기초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미술관이지만 광역시의 그것들과 같은 수준의 미술관이 되도록 위상을 설정하고 있고, 미술관의 기능과 역할의 기초를 다듬는 일에 치중하고 있다. 수원이 가진 화성과 정조대왕이라는 역사 문화적 요소, 또 나혜석이라는 한국최초의 여성운동가의 고향이라는 요소, 삼성전자라는 글로벌 기업을 가진 도시라는 측면에서 전통의 현대적 해석과 여성주의, 그리고 IT를 기반으로 한 융, 복합예술의 거점을 기반으로 수원미술관의 콘텐츠를 생산코자 한다.

국제적인 수준의 전시를 유치하는 등 수준 높은 전시 콘텐츠를 생산하고 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미술문화를 향유토록 하는 것이 미술관의 본령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이외에도 개인적으로는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연구와 한국미술을 국제화할 수 있는 국제교류전을 기획하고 연구하는 일에 당분간 초점을 맞추고 싶다.

 

예술인으로 예술의 대중화에 대한 생각은

예술이 진정하게 꽃을 피우려면 수준 높은 예술이 대중일반에까지 폭넓게 향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이 삶과 괴리되지 않고 대중들의 삶에 일상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예술교육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현재는 학교교육에서 예술의 영역이 크게 약화되어 있고 고교시절 이후에는 예술에 대한 제도적 공공교육의 기회가 없어지다 보니 예술을 폭넓게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축소되고 있다. 최근 다양한 미술관련 교양강좌나 인문학 프로그램이 마련되고 있고, 대중들에게 예술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도시재생이나 마을미술프로젝트, 찾아가는 예술여행 등 다양한 방식의 생활접목 프로그램들이 일상화되고 있다. 미술관에서의 교육은 이런 점에서 매우 중요한 영역인데 여기에는 우선 미술관을 자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미술창작이나 체험교육이 필요한 이유이다. 또한 미술관의 전시에 대해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작품에 대한 쉬운 이해와 설명 등을 통해 미술에 대한 관심과 매력을 심화시켜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미술에 대한 교양강좌의 차원을 넘어 관람자들과 함께 전시를 만들어가는 방식의 좀 더 적극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최근 VR(가상현실),AR(증강현실) 등 급진적으로 진화하는 디지털 매체의 활용을 통해 디지털 리터러시와 이를 기반으로 체험기회를 강화시키는 방식 등도 필요하다.

하지만 대중화란 미명하에 수준이 낮은 예술의 체험과 향유기회를 늘리는 하향평준화는 진정한 대중화라 할 수 없다. 영국의 문화정책의 슬로건이 ‘모는 국민들에게 가장 우수한 예술을’은 시사 하는 바가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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