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同情)이 아닌 동행(同行)이 필요한 이들

(시사매거진255호=김민건 기자) “타인에게 옮기는 질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곱지 않은 시선을 아이가 받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또래 친구들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아이를 키우는 같은 학부모의 입장에서 차별적인 시선을 보내고 그걸 느끼면 정말 마음이 찢겨나가는 기분이거든요”
 

사진출처_Shutterstock

울시 금천구에 살고 있는 정모(43)씨는 혈우병을 앓고 있는 초등생 둘째아들 지훈(9세·가명)을 아내와 함께 키우고 있다. 선천성 질환인 혈우병을 가지고 태어난 지훈이가 유치원에 등원할 나이가 될 무렵, 정씨는 아이를 데리고 A유치원에 등원하고자 찾아갔다. 정씨는 아이의 질환에 대해 유치원 측에 전하고 각별한 주의를 부탁했지만 유치원 측은 아이들끼리 놀다가 다칠 수 있기 때문에 아이의 등원이 어렵다고 판단해 거부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가 또래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고 함께 수업을 받길 원했기에 간곡히 부탁을 했으며, 그 결과 등원은 가능하나 어머님 혹은 아버님이 상시 아이와 함께 있어 줘야한다는 조건을 제안 받았다. 결국 맞벌이 부부였던 둘은 한사람이 직장을 포기해야했고, 아이를 위해 유치원에 함께 등원을 해야 했다. 그렇게라도 아이가 또래들과 함께 어울려 잘 성장하길 바랐지만 아이는 친구들 사이에서의 외면과 다른 원생 부모들의 곱지 않은 시선에 결국 유치원 등원을 이어가지 못했다. 정씨는 당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자신을 책망하며 사회성을 기르지 못한 아들이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통이 원만하지 않아 현재 초등학교에서도 놀림을 당하는 것 같아 매 순간 아이에게 미안할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유병율이 높진 않지만 치명적 질환

한번 피가 나면 좀처럼 멈추지 않는 질환인 혈우병은 응고 인자 결핍에 따른 유전성 출혈질환으로 평균적으로 10,000명 중 1명에게 나타나는 희귀혈액질환이다. 결핍된 응고인자에 따라 혈우병A(제8혈액응고인자 결핍), 혈우병B(제9혈액응고인자 결핍)로 분류되며, 체내 또는 체외 출혈 발생 시 지혈이 되지 않는다. 특히 출혈이 반복될 경우 관절의 형태 및 기능 이상이 발생하며 구인두강, 중추신경계, 후복강 내 출혈이 발생할 경우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응고인자의 결핍은 X염색체와 관련된 유전자 변이에 의한 것이기에 혈우병은 보통 모계를 통해 유전되기도 하지만 혈우병 환자의 약 1/3은 가족력 없이도 나타난다. 전체 환자의 80%가 제8혈액응고인자의 결함 혹은 결핍으로 발병하는 혈우병A형 환자이고, 나머지 20%가 B형(제9혈액응고인자 결핍) 환자로 알려져 있다.

한국혈우재단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전국에 2,094명의 혈우환자가 이중 혈우병 A환자는 1687명, 혈우병 B환자는 417명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혈우병은 상대적으로 유병율이 높진 않지만, 치명적인 질환이다. 환자들은 평생 동안 출혈로 인한 어려움을 겪게 되며, 출혈 증상은 중증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경증의 혈우환자는 보통 외과 수술이나 치과 시술 등의 사고 후에만 출혈과 관련된 문제를 겪지만 중증의 혈우 환자는 일상생활에서 관절이나 근육에 자발적인 출혈이 발생할 수도 있으며, 부상이나 사고, 외과적 수술 후에 장기적인 출혈이 생길 수 있다. 또한 일주일에 1~2회 출혈을 겪거나 명확한 원인 없이 오랜기간 출혈이 계속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응고인자의 결핍은 X염색체와 관련된 유전자 변이에 의한 것이기에 혈우병은 보통 모계를 통해 유전되기도 하지만 혈우병 환자의 약 1/3은 가족력 없이도 나타난다. 전체 환자의 80%가 제8혈액응고인자의 결함 혹은 결핍으로 발병하는 혈우병A형 환자이고, 나머지 20%가 B형(제9혈액응고인자 결핍) 환자로 알려져 있다.

혈우병은 언제부터

혈우병(hemophilia)의 용어는 ‘피(hemo)를 사랑한다(philia)’는 뜻의 그리스어로, 1823년 스위스의 의사 호프(Hopff)에 의해 처음 사용됐다고 나온다. 혈우병은 유태인 전래서인 탈무드에 언급될 정도로 오래된 희귀질환이다. AD 2세기경 랍비 유대인들은 할례 의식(포경수술)에서 남자 아기들이 피의 출혈이 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그들의 종교 의식이라 할 수 있는 할례에 대해 이전 2명의 사내아이가 출혈의 병력이 있다면 3번째 남자 아기는 할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을 마련했다고 전해진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유전형식은 혈우병 가족에 속하는 모계에 의해 그 유전자가 자녀에게 전해진다. 예를 들면 *보인자의 어머니로부터 아들에게 유전되게 된다. 따라서 이 질환이 나타나는 것은 거의 대부분 남자아이이고, 여자아이에게는 드물게 나타나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carrier_숨겨져 있어서 나타나지 않는 유전 형질을 지니고 있는 사람)

세계사에서 혈우병이 각인된 것은 대영제국을 이끌었던 빅토리아 여왕이 혈우병 보인자였다는 기록이다. 빅토리아 여왕의 자손들은 당시 유럽 왕가의 풍조대로 이웃 나라의 왕가와 서로 결혼을 하면서 혈우병은 유럽의 여러 왕가로 퍼지게 되었으며, 빅토리아 여왕의 자손 중에는 1명의 아들과 3명의 손자가 혈우병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인지 혈우병은 ‘왕가의 병’으로도 불리 운다.

유전형식은 혈우병 가족에 속하는 모계에 의해 그 유전자가 자녀에게 전해진다. 예를 들면 *보인자의 어머니로부터 아들에게 유전되게 된다. 따라서 이 질환이 나타나는 것은 거의 대부분 남자아이이고, 여자아이에게는 드물게 나타나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혈우병 치료 개선은 보이지만 아직 부족한 현실

대부분의 희귀병은 치료를 받기가 어려워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삶이 고통스럽고 치료를 위한 비용 또한 천문학적으로 들게 된다. 국내에서 혈우병은 60년대 말부터 치료가 시작되었고 70년도에 들어서면서 치료제가 생산되기 시작했다고 알려진다. 혈우환자는 매년 희귀난치성 질환의 정부지원을 받기 위해 환자가구 및 부양의무자가구의 소득과 재산을 관할 보건소에 신고해야한다. 평균적으로 2년에 한번 조사하며 시기는 1년에 두 번(4월, 10월) 공문이 자택으로 발송된다. ‘희귀질환 의료비 지원신청 소득재산조사’는 혈우병과 같이 치료비가 많이 드는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제도로 재산과 소득이 많은 가정은 일정부분의 처방약 값을 지불하고 나머지는 정부에서 부담한다. 반대로 재산과 소득이 적은 가정은 전액지원을 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다. 해당 제도를 기준으로 재산과 소득이 기준을 넘게 되면 본인부담금 10%(건강보험90%)를 내게 되는데 혈우환자에게 치료제 본인부담금 10%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된다.

더욱이 이러한 본인부담금은 건강보험에서 정한 상한선에까지 올라가게 되고 상한금액을 초과 한 이후에 정부지원금을 받게 되니 기준표가 나올 때마다 혈우 환자들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나마 여타 질환에 비해 치료 약값이 많이 드는 혈우병 환자들을 위해 산정기준을 환자가구일 경우 중위권 소득의 160%, 부양의무자가구일 경우 240%로 맞춰져

있지만, 이를 초과하는 순간 1년에 수백만 원에 달하는 돈을 내고 처방을 받아야하는 처지이기에 해당 기준이 턱없이 낮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혈우병환자 치료는 고위험·고난도 진료 및 수술을 요하지만 수가는 미비해 병원에서도 치료를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에 이 또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혈우병 환우들의 사회활동 영역 내지는 영향력을 보면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며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희귀질환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 차등의 시선을 던지고 그들의 업무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이들에게 동정이 아닌 동행자로써의 시선을

혈우병은 당사자나 가족의 육체적, 심리적 고통도 동반하지만 사회적 인식의 개선 역시 매우 중요하다. 아직까지 많은 이들은 혈우병에 대해 알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대중들은 희귀질환 혈우병이라고 하면 부담을 느끼곤 한다. 때문에 사회활동을 이어가는 많은 환우들이 자신의 병을 주변인들에게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최근 혈우병 환우들의 사회활동 영역 내지는 영향력을 보면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며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희귀질환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 차등의 시선을 던지고 그들의 업무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우리 주변에 마음을 닫고 있을지 모르는 혈우병 환우를 위해 혈우병에 대한 오해와 상식 몇 가지를 짚고 마무리 한다.

혈우병은 유전이다? X염색체에 있는 성염색체 열성으로 유전되는 유전병이라 알려져 있지만 약 30%의 경우는 가족력이 없는 경우에서 돌연변이로 발생하고 있고, 후천성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

혈우병은 남성에게만 발생한다? 그렇지 않다. 여자의 경우에서도 드물지만 남자에게서 볼 수 있는 각각의 응고인자 결핍 혈우병을 볼 수 있다.

베이거나 상처를 입으면 출혈이 멈추지 않는다? 피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혈우병에 대한 가장 큰 오해다. 베이거나 상처를 입는다고 해서 피를 분출하거나, 출혈로 인해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경우는 없다. 상처가 나을 때 출혈량은 다른 사람과 같으며 단지 더 오래 지속될 뿐이다. 외상보다도 근육과 관절에서 출혈이 반복될 수 있으며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으면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는 다양한 응고인자들이 개발되어 많은 혈우환우들이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혈우병 환자는 운동을 하면 안 된다? 결론은 아니다. 건강한 근육은 관절을 보호하며 일상생활에서의 사고를 막을 수 있고, 튼튼한 근골격계를 갖추는 것은 자연 출혈의 빈도를 낮추기 때문에 혈우병 환자 역시 근육과 관절을 강화시키는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완치가 불가능하다? 지난 2006년 우리나라에서도 간 이식을 통해 혈우병을 완치한 사례가 있지만, 혈우병 환자의 완치방법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출혈이 생겨 통증이 심할 때 치료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응고인자의 정맥투여가 현재로서는 유일한 방법이다. 환자에게 부족한 응고인자를 투여하면 완치는 아니더라도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현재 혈우병 환자 치료에 쓰이는 응고인자는 혈장제제와 유전자재조합제제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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