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이창조 화백

[시사매거진=신혜영 기자] 수많은 풍경화 중에서도 한국화에 더 친숙한 식물, 소나무를 유화 물감으로 그려 동양화의 정신을 서양화로 표현하는 이창조 화백은 서양화의 필법으로 인생을 관조하는 소나무 같은 예술가이다. 독실한 장로이기도 한 그는 매일 아침 정갈히 앉아 묵상을 하고, 자신의 예술성을 붓 끝에 담을 준비를 한다. 분청사기와 백자 표면에 그려진 소나무처럼 매끈한 그의 소나무 연작들은 그라데이션과 과감한 생략 속에서 빼곡하게 드러난 솔잎을 강조하는 대신, 애국가 노랫말처럼 소나무의 상징과도 같은 철갑과 솔방울까지 생략하고 있다. 그림 속에서 소나무의 줄기와 솔잎은, 그윽한 부드러움 속에 당당한 풍채를 과시하며 청, 흑, 녹의 단색으로 명징한 자태를 보여준다.

이 화백의 작업 과정은 작품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달라지지 않는 점은 묵상이나 사물을 대하며 처음 가졌던 느낌을 단번에 표현하고자 즉각적으로 그리는 기법이라고 한다. 물감이 마르기 전, 붓질을 반복하여 붓이 미끄러지는 장력을 이용해 효과를 내는가 하면, 동양화의 기법인 농담 표현이 불투명 유채로는 표현이 어렵기에 백붓으로 번지는 효과를 만들기도 한다. 물감이 마르기 전에 붓을 거듭 문질러 스쳐 지나가는 자국들은 흡사 포토샵의 블러 효과 같기도 한데, 이 화백은 덧칠을 거듭해 사실적인 음영을 더하는 유화의 재료를 이용해 한국화의 일필(一筆)을 추구한다고 전한다. 어떠한 감정 표현을 그림으로 배출하고자, 이 화백은 서양화의 정확한 재현 대신 동양화의 감성에 이끌렸다고 한다.

미술을 전공한 이래 20여 년 간 입시학원에서 학생들의 데생을 지도해 왔다는 이 화백은, 개성이 남는 자신만의 작품을 추구한 결과 차분한 덧칠보다 크로키처럼 재빨리 휘갈겨 색을 입히는 데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고는 이를 한국화의 속성과 결합시켜 누구나 한 번 보아도 이 화백의 작품임을 구분할 수 있는 소나무의 일관된 영혼을 그려낼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원조 한류는 풍류, 묵상으로 다완의 빈 잔으로부터 시작해 은혜의 연못을 향하다

11세 때부터 화가를 목표로 그림을 그려 온 이 화백은 만화나 삽화를 모방하는 아동미술 대신 처음부터 데생에 가까운 화풍을 가져, 이를 발견한 교생선생님들의 추천으로 국내외의 각종 미술대회를 석권한 적도 있다. 유년기에 지금의 한옥마을 인근 전주 시내에 살았으며, 판소리와 풍물, 극과 정가(正歌)가 성행한 예향의 도시로서 다방의 벽에는 시서화가, 중국집 메뉴판 옆에는 추사의 글씨가 걸려 있는 전주의 문화를 흡수하며 자라난 이 화백에게, 한국화를 전공하지 않아도 한국의 정서를 표현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렇게 동양화의 정신을 표방하기 시작한 이 화백은 K팝을 비롯해 모든 대중문화가 세계를 휩쓰는 지금 미술만이 침체되어 있는 판도를 아쉬워하며 한국의 정신을 표현하는 데 힘을 다하고 있다.

한국의 정신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풍류정신’이라고 말하는 이 화백은 기개 높고 호방한 선비정신의 근거를 찾아 소나무의 영혼으로 삼았으며, 단색인 코발트블루 계열을 통해 곧고 맑으며 청아한 정신세계를 나타내고 있다. 현대적인 컬러에 들어 있는 일필휘지의 선 맛과 에너제틱한 구성으로 그린 소나무로 세상과 소통하는 한편 이 화백은 한류의 풍류에 대한 연장선으로 도자기와 찻잔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무언가 담거나 사용되려면 그 전에 늘 깨끗이 비워져야 한다는 철학을 내포한 빈 잔 시리즈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동군 도요지를 비롯한 ‘이도(井戶)다완’이 작은 막사발 하나조차 일본의 국보급으로 칭송받으며 일본 다도문화의 버팀목이 되었다는 일화는 이 화백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따라서 전쟁의 풍파 속에서도 살아남아 전해진 백자와 막사발을 폭풍 같은 배경에 배치시켜 유혹을 이겨내는 신앙인의 모습으로 비유한 빈 잔 시리즈는 작가 자신도 만족하며 그리는 작품들이다.

또한 마음속 묵상을 나타내는 풍경화로는 에덴동산의 열두 가지 과일이 열리는 금단의 생명나무 형상을 비롯해,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베데스다의 못’과 하나님의 보좌 아래 흐르는 은혜와 치유의 강처럼 종교의 영역에 있는 부분을 담은 강 시리즈가 있으며 이 화백은 묵상을 통해 이상적인 강가의 형상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대작의 형태로 조금씩 그려 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중들이 원하는 그림에 의미를 부여, 작품은 곧 작가의 삶에서 나온 배설물이기도

한편, 이 화백은 관객과 소통하고자 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에서도 의미를 찾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 화백이 콜렉터들의 취향을 존중하여 정성껏 그리는 동양적인 매화와 목단, 모란 등은 다완과 함께 일반 가정에 걸어놓는 그림으로 꾸준히 사랑받는다. 대신 소나무를 그릴 때는 소나무의 상징인 장수, 건강, 권위, 절개와 위엄을 유감없이 발휘하는데, 이 화백은 가장 한국적인 소나무를 세간의 편견처럼 고루하게 보지 않도록 현대적으로 잘 표현해, 여느 현대미술에도 버금갈 작품으로 내놓겠다는 각오가 상당하다. 또한 올빼미 생활에 익숙한 많은 화가들과 달리, 이 화백은 여행과 스케치 작업 외에도 새벽기도로 스스로에게 겸양을 다짐하면서 매일 신이 주신 ‘달란트’로 무엇을 그리느냐는 질문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작품의 영감을 얻는다.

이 화백의 소나무들은 선비가 정갈하게 친 매난국죽처럼, 닮은 듯 은연중에 서로 다른 감성으로 태어났다는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며 지금까지 똑같은 소나무 그림을 한 장도 그린 적이 없다고 한다. 한국화에서 먹을 갈며 생각을 정리하듯 물감을 기름에 개면서 마음을 가다듬는 과정에서 영감을 얻어, 지금처럼 일필을 유지하는 소나무 그림을 그리게 된 이 화백은 작품에 대해 “작가의 삶에서 나온 배설물”이라고 정의하며, 작가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림이 달라진다고 덧붙인다.

그래서 지난 해 1월 대장암 수술을 받고 열두 차례가 넘는 항암치료를 받아 회복하는 동안, 자칫 약해진 상태가 소나무와 작품의 기개에 영향을 줄 까봐 작업을 거의 하지 못했다는 이 화백은 최근 상태가 호전됨에 따라 의욕적으로 그림을 시작하고 있다.

인천의 잇다스페이스, 서울 금보성 아트센터에서 입주 오픈전을 개최하기도 한 이 화백은 동성고등학교 내 혜화아트센터에서 개최될 11월 초대개인전에 40여 점의 그림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좋은 화가란 시류에 끌려 다니거나 생계에 급급하기보다는 관객의 눈을 존중하면서도 자신만의 향기를 내는 화가이며, 작가 고유의 작품세계가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목표인 이 화백은 앞으로 푸근하면서 긍정적인 한국정서인 멋과 풍류를 외국에 알려, K문화에는 그림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혼신을 다할 것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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