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KBS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시사매거진=주진현 기자] 장미 꽃길에서 시작하는 동네 한 바퀴

서울 중랑구에 붉은 장미꽃이 가득 피어올랐다. 중랑천 제방을 따라 펼쳐진 장미꽃 길을 걸어보는 배우 김영철. 12년 전, 중랑구 묵동과 중화동을 중심으로 시작된 작은 동네 축제가 이제는 서울시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축제로 자리 잡았다. 5월이 되면 중랑천을 따라 화사하게 피어나는 장미꽃을 보러 수많은 사람이 찾아온다는데. 특히 화려한 장미들로 장식한 약 5km 길이의 장미 터널은 주민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명소이다. 향기로운 장미 터널을 걸어보며 김영철은 힘차게 여정의 첫 발걸음을 옮긴다.

도심 속 과수원, 노부부의 배나무밭

길을 걷다 우연히 배나무를 전지하는 할아버지를 만나는 김영철. 서울 도심에 배나무밭이라니 의아하게 들리지만, 중랑구는 조선 시대부터 먹골배의 주산지로 유명했다. 과거 봉화산 일대에서 생산되던 먹골배는 그 맛이 좋아 조선 시대에 임금에게 진상되었다는데. 옛날만큼은 아니지만, 중랑구는 서울에서 가장 큰 규모의 배밭이 조성되어 있다고. 할아버지 안내에 따라 과수원으로 들어가 보니 또 다른 세상에 온 듯하다. 아파트 단지와 빌라촌이 빼곡히 들어선 주택가에 1,500평 가까이 펼쳐진 배밭은 색다른 풍경을 자아낸다. 하루가 다르게 개발이 되는 도심 속에서 어머님이 물려준 과수원을 지켜가는 노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유일하게 남은 마지막 선비의 집

빽빽한 주택가를 거닐다 담장 너머로 김영철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다름 아닌 오래된 ‘한옥’. 알고 보니 중화동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한옥이라는데. 중랑구는 과거 서울 시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집성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중 중화동은 해주 최씨들이 400년간 집성촌을 이뤄 최촌마을로 불렸다고. 시간이 지나며 한옥은 하나 둘 씩 사라지고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왔지만, 그 가운데에서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한옥은 최씨 집성촌의 마지막 선비라고 알려진 가산 최공식 선생의 집.

최공식 선생의 손자 최위수 씨는 할아버지의 낡은 고서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틈틈이 집안 곳곳을 가꾸고 정리하며 한옥을 지키고 있는데…. 텃밭 가꾸랴, 서까래 보수하랴 사시사철 손이 많이 가는 한옥이지만, 지금까지 소중히 집을 지켜온 이유는 무엇일까?

중랑구 망우동 떡볶이 촌, 50년 역사의 떡볶이

발길 따라 걷다 보니 유난히도 분식집이 즐비한 골목에 다다른 김영철. 알고 보니 이 길목은 과거 떡볶이 포장마차들이 가득했던 ‘떡볶이 포장마차촌’ 골목이었다. 과거 7개의 학교를 중심으로 발전됐던 망우동 떡볶이 포장마차촌 골목은 ‘망우리 명동’이라고 불리 울만큼 번성했던 곳이었다는데. 개천 따라 펼쳐진 포장마차들은 하나둘씩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골목의 역사를 그대로 기억하는 낡은 떡볶이집이 있다.

50년 동안 떡볶이를 팔고 있는 떡볶이집. 지금은 며느리가 대를 이어 시어머니가 만들었던 그 옛 맛을 지켜내고 있다는데. 어머니가 쓰던 식기, 물건 모두 그대로, 떡볶이 맛도 그대로 지켜내 이 집에는 학생들보다도 어른들이 가득하다. 과거 중, 고등학교 때 먹었던 맛이 그리워 어른이 되어서도 잊지 않고 찾아오는 떡볶이집. 조그만 식당 한구석에 앉아 김영철은 추억의 떡볶이 맛을 맛본다. 과연 그 맛은!?

망우동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망우리 납작만두

떡볶이를 먹다 발견하는 특별한 만두. 과거 망우리 포장마차촌과 그 역사를 같이한 망우동만의 납작 만두라는데. 과거 떡볶이 촌 골목에서부터 함께 시작해 지금도 망우동 떡볶이집들은 이 납작 만두만 받아 쓰고, 손님들도 납작만두를 먹으러 떡볶이집에 찾아온다. 바삭한 식감과 고소한 맛이 일품인 납작 만두는 떡볶이 국물과 최상의 궁합을 자랑한다고. 망우리 납작만두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가게에 방문해보는 김영철. 밀가루, 소금, 물로만 만들어지는 납작만두는 간단해 보이지만 손으로 빚고 만두를 쪄내고, 식히고, 튀겨내는 복잡한 과정이 뒤따른다. 주변 떡볶이집들을 위해 40년 동안 우직하게 만두를 만들어온 만둣가게 할머니. 할머니가 정성으로 빚은 만두는 망우동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다.

중랑이 간직한 힐링 명소: 망우리 역사문화공원 & 용마폭포

주택가를 벗어나 산 쪽으로 걷다 마주한 망우리 역사문화공원. 망우리 공원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보물창고로도 불린다. 만해 한용운, 시인 박인환, 소파 방정환 등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중요한 인물들이 이곳에 잠들어 있기 때문인데. 과거에는 수만 개의 묘지로 가득 찬 망우리공동묘지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무연고 분묘를 정리한 후에는 울창한 산림이 회복돼 지금은 평일에도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공원이 됐다. 망우리 공원에 조성된 사잇길을 천천히 걸어보며 이곳에 묻혀있는 위인들을 살펴보는 김영철. 격동의 근현대사를 간직한 망우리 공원이 이 시대의 소중한 문화유산임을 느낀다.

산길 따라 걷다 들려오는 거대한 폭포 소리. 우렁찬 소리 따라 들른 곳에는 아시아 최대규모로 조성된 용마폭포가 있다. 1970년대까지 광물 채석장이었던 용마산에, 돌을 깎다 생긴 절벽을 이용해 폭포를 만들었다고. 시원한 폭포 덕분에 무더운 한여름에도 주민들이 즐겨 찾는 중랑구의 명소가 되었다. 장대한 폭포의 경관을 바라보며 김영철은 잠시 한낮의 열기를 식힌다.

산에서 내려와 김영철이 들른 곳은 동네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는 작은 해장국집.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을 아들이 도와 2대째 운영하고 있다는데. 죽어가는 골목상권을 살려내고 작은 해장국집이 계속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사장님 특유의 인심과 재료에 대한 굳건한 신념에 있다. 온종일 불 앞에서 선지를 삶고 핏물을 빼는 고된 작업을 견뎌내야 재료마다 최상의 맛이 나온다는 모자의 신념은 음식에 고스란히 묻어나온다. 빨간 선지 국물이 아닌 맑고 하얀 국물의 해장국이 바로 이 집의 유일한 메뉴. 사장님의 손맛과 음식에 대한 철학 덕분에 이 집은 망우동 주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해장국집으로 손꼽힌다.

면목동의 마지막 국수 공장

골목 한 쪽에 하얗게 널어놓은 국수들이 김영철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60년이 흐르는 세월 동안 면목동 골목을 지키고 있는 도심에서는 보기 힘든 오래된 국수 공장. 당시 면목동에는 국수 공장이 여럿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닫고 이 집만 남았다. 노부부는 매일 새벽마다 반죽한 밀가루를 옛날 기계에 넣고 면을 뽑아 자연 바람에 말려놓는다는데. 노부부 나이만큼이나 기계도 나이를 먹어 하나하나 손으로 밀어주고 기름칠을 해야 겨우겨우 돌아간다. 55년 된 낡은 기계가 내는 소리와 골목에 널어놓은 국수가 만들어내는 정겨운 풍경. 하나둘씩 사러 오는 손님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노부부의 뒷모습을 보며 김영철은 따뜻한 온기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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