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주 변호사

(시사매거진254호=오병주 칼럼위원) 한국에서 회의에 참가하기 전에는 이번 UN범죄방지회의 일정이 이렇게까지 타이트한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막상에 회의에 참가해 보니 아침 9시 30분부터 저녁 5시에 이르기까지 계속 회의와 세미나가 진행되었다. 또한 일과시간 이후에도 분임별로 UN본부에 입법을 건의하기 위한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어느 때는 밤 10시까지 계속 토론을 한 적도 있었다.

바쁜 일과가 진행되던 어느 날, 이주까 검사가 동경지검 아사노 부장이 오 검사를 만나고 싶어 하니 시간을 내어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다. 일과 후 이주까 검사 및 마꾸다 검사와 UNAFEI 건물 근처 일식집에 가자 동경지검 아사노 부부장 검사와 도야마 지검의 여자 검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동경에서 후쭈시까지 먼 거리를 와준 아사노 부부장께 감사 인사를 드렸다. 아사노 부부장은 검사 경력 20여 년으로서 우리나라의 서울지검 부장검사와 비슷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국말이 상당히 유창하여 어떻게 한국말을 그리 잘하느냐고 묻자, 평소부터 한국에 관심이 많아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한 것이라고 했다. 요즈음도 출퇴근 시에 항상 한국어 어학 테이프를 듣고 NHK 한국어 강좌를 빠짐없이 듣고 있다고 했다.

일본 검사들과 정종을 곁들어 식사를 하며 환담을 나누던 중 이분들에게 한국의 역사를 알려 주는 것이 좋을 듯하여 UN회의에서 각국 대표들에게 강연을 한 것과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진지하게 이를 경청했다.

이에 덧붙여 한일 간의 인물 교류와 관련한 역사 이야기를 하나 소개했다.

풍신수길이 일본을 통일하고 정명가도(征明架道)를 구실로 조선을 침략한 임진왜란 당시 소서 행장 휘하의 한 일본인 장수가 조선의 문물을 흠모하여 귀화했는데 그 사람의 귀화 후 이름이 김충선이다.

그는 경상북도의 우록면에 터를 닦고 정착해 살았는데 몇 백 년의 긴 세월이 흐른 후 그의 후손에서 대한민국의 내무부장관이 나왔다.

한편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조선 동공 수천 명을 일본을 납치해 갔는데 몇 백 년이 흐른 후 그 조선인 후손에서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외무부장관을 지낸 도조 외상이 나왔다. 임진란을 계기로 한일 간에 역사적 인물 교류가 이루어진 셈이다.

그밖에 백제시대에 우리의 많은 선조들이 일본에 와 일본 문명을 전수한 사실 등을 일본의 곳곳에 남아있는 옛 백제, 신라, 고구려의 지명 흔적 등을 예로 들며 설명해 주었다.

아사노 부부장은 한국을 잘 이해하는 분으로 내 얘기가 끝나자 일본 정보와 학교에서 국민들에게 역사적 진실을 너무나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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