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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눈으로 그려낸 문혁시대의 내재적 비극 '고치'
  • 김민수 기자
  • 승인 2019.05.14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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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김민수 기자] 글항아리가 소개하는 중화권 소설 ‘묘보설림’ 시리즈 제6권으로 장웨란의 『고치繭』가 출간되었다. 1982년생으로 중국 산둥성 지난에서 태어나 싱가포르국립대를 졸업하고 6권의 장편소설과 2권의 단편소설집을 상재하는 등 왕성하게 집필하는 작가다. 장웨란의 『고치』는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그녀의 최신작으로 712쪽에 이르는 대작이다. 중국의 각종 문학상에 노미네이트되고 탕누어로부터 “기억의 실체를 철저히 규명하고 그 안에 담긴 진실과 상처를 껴안는 작가”로 평가받는 그녀는 문화대혁명이 중국의 일가족 삼대에 남긴 상처를 다룬 『고치』에서 자신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고치繭’는 애벌레가 나비로 변하기 전 머무는 집이다. 스스로의 몸에서 뽑아낸 진액으로 몸을 감고 아무도 들여다볼 수 없는 천형의 감옥에서 스스로 변태하여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난다. 이 작품 또한 마찬가지다. 문화대혁명을 다루지만 그것의 범죄성을 고발하거나 시대의 파노라마를 펼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작가는 철저히 자신의 삶으로 걸어 들어가 그 독을 들이마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결을 하나하나 분별해낸다.

이 작품은 두 가지 점에서 이채롭다. 하나는 문화대혁명 당시 비판투쟁 중 이웃에 의해 머리에 못이 박혀 식물인간이 된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이다. 그 할아버지의 아내, 자식, 며느리, 손자가 한 축을 이룬다. 그의 머리에 못을 박은 것으로 추정되는 유명한 원로 의사와 그의 아내, 자식, 며느리, 손녀가 다른 축을 이룬다. 이야기는 주로 손자, 손녀 세대가 이끌어가는데 그 마을의 또래들이 관찰한 세계라는 점에서 익숙한 유년소설의 관점을 취했다. 또 하나 이채로운 점은 소년과 소녀가 번갈아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화체라는 점이다. 소년은 소녀에게, 소녀는 소년에게 자신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우리’의 이야기를 속삭인다.

소녀가 태어났을 때 ‘문혁’이라는 상황은 이미 종료된 후였다. 하지만 메스를 넣고 봉합한 것처럼 상처는 끊임없이 새어 나온다. 주인공이 마주치는 어른들은 그 상처를 쉬쉬하고, 외면하거나 그로부터 달아나는 방식으로 망각의 생존 논리를 앞세운다. 그렇게 ‘변해버린’ 사람들의 모습은 히스테리컬하고 삶의 본능만 남아 있는 모습인지라 어떤 점에서는 괴물을 닮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해도 무의식은 그 아픔의 실체를 ‘중얼거린다.’ 소녀는 그 중얼거림을 듣고 그 소리의 끈을 계속 감아서 거대한 실뭉치로 만들어나간다. 어쩌면 이게 ‘고치’의 실체인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후기’는 왜 ‘고치’라는 소설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독자들에게 먼저 이 후기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여기 나오는 작가의 자전적인 스토리는 기대 이상으로 놀라운데 그 이유는 아버지가 쓴 소설을 자식이 다른 소설로 다시 쓴 것이기 때문이다.

장웨란의 아버지는 1977년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자신이 일하던 양식국糧食局 수송대에 작별을 고하고 대학에 들어갔다. 좋은 직장을 때려치우고 소설을 배우러 중문과에 입학한 그는 이듬해 『못』이라는 소설을 완성한다. 소년 시절 직접 목격한 사건을 소재로 했는데, 그가 거주하던 병원의 직원아파트에서 바로 옆 동에 살던 의사가 비판투쟁 중에 누군가의 의해 머리에 못이 박혔다. 점차 언어와 행동 능력을 상실한 그는 식물인간이 되어 줄곧 병상에 누워 있어야 했다. 잡지사에 소설을 보냈고 게재 통보를 받았으나 다시 게재 불가 통보를 받았다. 작품 분위기가 너무 어둡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몇 편의 소설을 더 쓰고 투고했으나 그때마다 같은 이유로 거절되었다. 어둡다고 말했지만 우리는 ‘문혁’이 금기의 언어였기 때문이라는 걸 안다. 서랍에 들어간 『못』은 그 이후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수십 년이 지난 2010년의 어느 날 그의 딸이 식탁에서 아버지의 이야기를 자신이 소설을 쓰겠다고 선언한다. “그게 뭐 소설 감이나 되나?” 아버지가 보인 반응이었다. 이미 생활인이 된 아버지는 과거의 소설과 그 안의 이야기를 거의 기억하지도 못했다. 작가는 이런 아버지를 인터뷰하고 병원에 가서 취재도 한다. 하지만 7년이 지나도록 어떻게 풀어나갈지 알지 못한 채 포기하고 만다.

이야기가 풀린 것은 설을 맞아 지난濟南의 집을 방문한 때였다. 아래 그 내용을 요약해본다. 이러한 소설이 쓰인, 아니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 유년 전체의 역사를 쓸 수밖에 없도록 만든 거역할 수 없는 힘과의 마주침이 제시되어 있다.

시사매거진, SISAMAGAZINE

김민수 기자  dikigirl200@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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