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뉴스 문화 소설
[이순신의 반역] 제 10장 오랑캐 공주
  • 유광남 작가
  • 승인 2019.05.13 14:26
  • 댓글 0

(시사매거진253호=유광남 작가) “지난 달 통제영에서 압송된 후 이번 달 초나흘 하옥되셨습니다. 지난 수 일간 식음을 전폐하시어 매우 수척한 상태 이옵고 통제영으로부터 뒤따르던 일행은 서소문 근방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이제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차마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이던 울은 급기야 뜨거운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그 모양이 부모를 잃고 서러워하는 자식의 모습 그대로다. 유성룡도 가슴이 미어졌다. 정경달이 목소리를 높였다.

“통제사의 무고를 주청 드리겠사옵니다.”

“그리하여 해결 될 수 있다면 이야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겠는가?”

“진실을 청하는데 어찌 외면하실 수 있겠습니까? 주상 전하의 혜안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애초의 판단대로 곧은 성품의 충성스러운 문관이었다. 결국 이러한 신하들이 존재함에 왜구의 침략에 그나마 조선을 수호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유성룡은 생각했다.

“그대들이 나를 찾아 온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해결책은 아닐세.”

“영상이 아니시라면 어느 분에게 구명해야 합니까?”

유성룡은 그들을 번갈아 보면서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나와 통제사와의 관계는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모두 알고 있지 않나? 만일 통제사의 구명에 나서게 되면 오히려 반대 당파인 서인을 비롯한 대신들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게 될 것이야.”

유성룡은 차마 왕 선조의 경고를 들먹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판단은 정확한 것이었다. 이순신을 통제사로 천거한 유성룡이니 만큼 이번 사태에 대하여 정적(政敵)들의 상소(上訴)와 음해성 탄원(歎願)이 얼마나 극성을 이루겠는가. 동향인인 동시에 일본과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두 사람이었다. 유성룡은 통제사 이순신의 제거 후에 도사린 파국(破局)의 기미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은 당연하였다. 적지 않은 당상관(堂上官) 세월을 지내 온 그로서는 권력의 무상함과 허실(虛失)을 누구보다도 냉엄하게 느끼고 있는 터였다.

“대감, 그리하면 어찌 합니까? 통제사의 무고함을 어찌 수수방관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방도를 일러 주십시오.”

전 종사관 정경달은 애가 타 견딜 수 없는 모양이었다. 얼굴이 순식간에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번 사태는 심상치 않아.”

“당연히 그렇지 않겠습니까? 남해를 완벽하게 방어 하시던 통제사 이십니다. 그런 장군을 한양으로 압송 하였으니 이제 바다는 고스란히 일본 수군에게 내준 것입니다. 이보다 더 심각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물론 그것도 근심이나 내 말은 조정에서 바라보고 있는 통제사의 죄목일세.”

울이 억울함을 하소연 했다.

“왜적의 간계에 어찌 이리 쉽게 놀아난단 말입니까? 우리 조선의 왕과 대신들이 고작 이 정도였습니까?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대감!”

유성룡은 내심 놀라고 있었다. 평소의 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는 반 조선인이던 사야가 김충선의 궤적을 동조하고 동감(同感)하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이들은 이미 공모를 하고 자신을 찾아 온 것인지도 몰랐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유성룡의 자세는 더욱 더 신중해졌다.

“언행을 주의 하게나. 아직 통제사를 추국(推鞫)하지 않았으니 그 죄의 유무를 어찌 판단한단 말인가? 고정하게.”

“솔직한 심정을 아뢰겠습니다. 소생은 조정을 믿지 못합니다. 지난 해 의병장 김덕령의 모함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조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 출병 하였으나 간악한 역도의 무리가 내뱉은 증언에 의해서 충신을 무참히 매질로 죽였습니다. 이제 부친에게 가해질 그 매를 어찌 감당하라 하십니까?”

“사안이 다름이야.”

울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절대 다르지 않습니다. 부친을 심문할 분이 뉘십니까? 좌상 육두성이 아닙니까? 바로 김덕령을 추국하였던 장본인 입니다”

유성룡은 대답하지 못했다. 조선의 임금 선조는 통제사 이순신을 제거하고자 한다. 또한 왕은 스스로의 손에 피를 묻히고자 원하지는 않는다. 왕은 언제나 당쟁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권력을 유지해 온 영악하고 치밀한 두뇌의 소유자였다. 따라서 직접 통제사를 견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것이다. 서인의 대표적 인물인 좌의정 육두성이 적임자다.

“저희들의 예상이 틀린 것입니까?”

“저희들이라면...... 혹시 거기에는 김충선이란 젊은이도 포함된 것인가? 그러한가?”

울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친구를 만나 보셨는지요?”

“다녀갔네.”

유성룡은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우물 내부를 들여다 본 기분으로 대답했다. 일시에 소름이 발가락 끝에서 꼬물거리며 발등을 타고 정강이를 통과하여 허벅지와 단전위로 비늘처럼 돋아났다. 가슴을 타고 올라 목구멍 까지 가시가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적중한다.

“자헌대부 김충선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그 지모(智謀)와 무술은 물론이거니와 병법에 있어서도 탁월합니다. 의병장 홍의장군과 함께 왜적의 이동 경로를 치밀하게 파악하여 공략함으로서 선두와 후방 부대의 보급로를 차단 시켰습니다. 결국 군량과 화약을 단절시킴으로 왜적들의 임진년 총공세를 봉쇄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뿐만이 아니고......”

정경달은 이미 사야가 김충선의 신봉자로 보여 졌다. 거품을 물면서 칭송하는 그를 유성룡이 제지 했다.

“그 정도는 알고 있소. 또한 일본의 조총 기술과 제조 방법 등을 조선에 전파 했다는 사실도.”

이번에는 울이 정면으로 시선을 마주쳐 왔다. 진의가 담겨 있는 눈빛이 유성룡에게 머물렀다.

“대감, 김충선이 하고자 원하는 바를 굽어 살펴 주십시오.”

그들 사이에서 침묵이 흘렀다. 유성룡은 잔뜩 긴장하며 눈을 감았다. 선조와의 독대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왕은 나를 보호하고 싶어 한다. 통제사 이순신과의 관계를 염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그냥 이순신을 구하기 위해 나선 것이 아니다. 이들은 이순신의 나라를 원하고 있다. 새로운 조선의 건국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건 모반(謀反)이며 역모(逆謀)이다.

‘차라리 그때 통제사 함대의 일본 교토 공략을 가로막지 않았으면...... 오늘의 이런 고뇌는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거늘.’ 후회막급(後悔莫及)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금일 역시 기로(岐路)에 서 있다. 이순신은 이제 언제든지 저들의 손에 의해서 추국에 들게 될 것이었다. 결단은 촌각(寸刻)을 다투고 있었다.

“당시 사야가는 일본 기습을 위한 사전 포석(布石)을 완벽하게 마무리 하고 돌아 왔었습니다. 그는 조일전쟁을 발생시킨 히데요시를 제압할 수 있는 유일한 영주인 일본의 이에야스와 밀담을 나누었지요.”

사야가 김충선이 충분히 대단한 젊은이라는 사실을 새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울의 증언이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관백 히데요시와 일본 천하를 다투는 인물이 아닌가? 어느 방면으로는 오히려 히데요시를 능가하는 세력을 지니고 있는 일본의 이인자였다. 그런 대영주와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은 김충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입증하는 것이었다.

“당시 어떤 이야기가 그들 둘 사이에 오고 갔는지는 궁금하지 않으신 겁니까? 혹시...!”

방문 밖에서 나직이 들려오는 음성에 실내의 그들은 전원 소스라치게 놀란다.

“누...군가?”

유성룡은 나직한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나누던 대화가 어디 예사로운 말이던가? 순식간에 천년의 적막감이 감돌았다. 그때 방문이 열리면서 거리낌 없이 남녀가 등장했다.

“지난 달 통제영에서 압송된 후 이번 달 초나흘 하옥되셨습니다. 지난 수 일간 식음을 전폐하시어 매우 수척한 상태 이옵고 통제영으로부터 뒤따르던 일행은 서소문 근방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이제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차마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이던 울은 급기야 뜨거운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그 모양이 부모를 잃고 서러워하는 자식의 모습 그대로다. 유성룡도 가슴이 미어졌다. 정경달이 목소리를 높였다.

“통제사의 무고를 주청 드리겠사옵니다.”

“그리하여 해결 될 수 있다면 이야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겠는가?”

“진실을 청하는데 어찌 외면하실 수 있겠습니까? 주상 전하의 혜안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애초의 판단대로 곧은 성품의 충성스러운 문관이었다. 결국 이러한 신하들이 존재함에 왜구의 침략에 그나마 조선을 수호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유성룡은 생각했다.

“그대들이 나를 찾아 온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해결책은 아닐세.”

“영상이 아니시라면 어느 분에게 구명해야 합니까?”

유성룡은 그들을 번갈아 보면서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나와 통제사와의 관계는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모두 알고 있지 않나? 만일 통제사의 구명에 나서게 되면 오히려 반대 당파인 서인을 비롯한 대신들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게 될 것이야.”

“대감을 다시 뵙게 되어 매우 반갑습니다. 김충선이옵니다.”

준수한 용모에 단단한 체구가 돋보이는 청년과 단정한 경장 차림새였으나 이목구비가 또렷한 미소녀였다. 전원의 시선이 여인에게로 쏠렸다. 김충선이 예의 신비한 미소를 지었다.

“직접 소개를 올리시지요.”

미소녀는 주저함이 없었다.

“인사 올립니다. 아율미라고 합니다.”

의외의 등장으로 인하여 유성룡을 비롯한 울과 정경달 등도 어리둥절한 표정 이었다. 특히 유성룡의 안색은 난감함을 넘어서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인기척도 없이 안채의 서재로 들어왔소? 행랑의 아랫것들을 정녕 마주치지 않은 것인가?”

유성룡은 이해되지 않았다. 믿어지지도 않았다. 당연히 문간에는 늘 입구를 지키고 있는 하인들이 즐비 하였으며 손님이 방문 할 시에는 한달음에 달려와 통보를 하는 것이 순서였다.

“송구하옵니다. 번잡한 것을 저희 둘 다 싫어해서......”“그럼 월담을 하였다는 것이요?”

정경달이 직설적으로 물어왔고, 아율미는 망설이지 않았다.

“네. 영상대감 댁 담이라고 특별히 높지는 않았사옵니다. 지름길로 왔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 댁은 이미 경험이 있는지라.”

이건 또 무슨 소린가? 경험이 있다면 침입한 적이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소인이 일전 대감을 방문 했을 시 그녀 역시 뒤를 밟아왔었습니다.”

김충선의 말을 듣고 있자니 유성룡은 기절초풍 할 노릇이었다. 이 미소녀가 자신과 김충선의 대화를 모조리 들었다는 것이라면 그건 엄청난 파문(波紋)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시사매거진, SISAMAGAZINE

유광남 작가  sisamagazine1@sisamagazine.co.kr

<저작권자 © 시사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