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3호=김길수 발행인)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걱정한다’라는 말은 이제 새로운 말이 아니다.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국회의 모습을 보면 참담한 심정에 말을 꺼내기조차 불편하다.

국회선진화법 이전에나 볼 수 있었던 국회 점거 농성이 재등장해 감금, 몸싸움, 욕설, 고성, 막말, 집기 파손이 난무하고 못을 뽑을 때 쓰는 속칭 ‘빠루’와 장도리 같은 연장도 등장했다. 민의의 전당이라기보다는 ‘동물 국회’나 다름없다. 팩스 사보임에 국회의장의 병상 결재, 이메일 법안 제출 등도 이뤄졌다.

여당은 검찰로 달려가고, 야당은 거리로 뛰쳐나가 사법 처리와 장외 시위로 상대방을 겁박하고 있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소속 의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방해한 혐의로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를 포함한 의원 18명과 보좌관 1명, 비서관 1명을 검찰에 고발한 데 이어 추가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당도 홍 원내대표 등 민주당 의원 17명을 공동상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문희상 국회의장과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에 대해서도 직권남용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 원내대표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검경 수사권 조정, 선거제도 개편안을 패스트트랙에 지정키로 합의한 것이 결국 엄청난 파장을 불렀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이를 밀어붙이는 쪽도, 막는 쪽도 국민의 이익이나 민생은 안중에 없다는 점이다. 오로지 자기 정당과 정파의 이해득실만 따질 뿐이다.

애당초 3개 안건은 서로 연계 처리해야 할 성질의 법안도 아니다. 그런데도 공수처법의 제정을 강하게 주문하고 나선 청와대·민주당과 표의 등가성과 비례성의 강화를 통해 현재의 양당 구도를 깨고자 하는 군소정당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연계 처리가 추진됐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공수처법은 알맹이에 해당하는 대통령 친인척과 국회의원이 기소 대상에서 빠지면서 ‘무늬만 공수처법’이 돼버렸고, 선거법도 비례성 강화라는 측면만 부각되면서 의원들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난수표 같은 법안을 만든 것이다.

무엇보다 한동안 사라졌던 폭력 국회를 재연시킨 1차적 책임은 바른미래당 지도부에 있다. 김관영 원내대표와 지도부는 자기들 입맛대로 갈 길을 정해 놓고 이에 반대하는 의원에게 ‘당론 투표’임을 앞세워 찬성을 강요했다. 이에 불응하자 다른 의원으로 대체하는 사보임이란 편법까지 동원해 당내 반발과 역풍을 불렀다. 독재·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나 있을 법한 전근대적이고 비민주적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수처법이든, 선거법이든 최종적 정책 소비자이자 주권자인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공론화 과정을 거쳐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최대 공약수를 찾는 게 선행돼야 한다. 이 과정은 생략한 채 밀실에서 자기들 입맛대로 손질해 놓고,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한다고 밀어붙이려다 결국 폭력사태로 발전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한국당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적극적으로 타협안을 제시하지 않고, 기득권 지키기에만 급급하다 패스트트랙 지정이 코앞에 닥치니 육탄저지에 나섰다. 모두가 무책임 정치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사상 유례없는 경제난으로 지금 국민은 생업의 위기마저 느끼고 있다. 그런데 정치권은 국민의 상처를 보듬기는커녕 민생은 뒷전으로 내몰고 정파적 이해에 눈이 어두워 밀실 협상 법안 처리로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다. 지금이라도 여야는 냉정을 되찾아 머리를 맞대고 협상을 재개하기 바란다. 정파 이익이 아닌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는 이성적인 새 해법 도출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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