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강한 반도체 소재, 장비 기업들이 많이 포진해야

(시사매거진253호=차홍규 화백) 지봉선 한국 반도체 소재 진흥회 회장은 한양공대를 졸업 후 LG에서 반도체 소재를 생산하는 기술자로 반도체에 첫발을 들였고, 국내 벤처기업을 거쳐, 노르웨이의 소재기업인 Scan Crucible AS 창립멤버로 참여하는 등 국내외에서 다양한 분야의 반도체 소재 기술과 산업을 경험한 사람이다. 필자 역시 학사와 석사는 미술학이지만, 박사는 재료공학을 전공한 공학박사로서 지봉선 회장이 반도체 분야에만 정통한 전문가로 생각하고 인터뷰를 시작했으나,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폭넓은 사고를 가진 인물이었다.

지봉선 회장은 “산업별로 기업 현장에서 체감하는 목소리가 체계적으로 모아지는 민간단위의 협의체가 활성화되어 산업단위의 목소리가 정부 정책에도 반영되는 소통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뉴스를 보면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대단하고, 사상 최대 연속 무역수지 흑자 역시 반도체 수출에 힘입어 신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그런데 청년들 취업이나 소상공인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이러한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GDP 대비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이나 수출입 무역규모가 2000년 이후 비약적으로 커지게 되었다. 이러한 성장은 수출을 중심으로 하는 대기업의 비약적인 성장을 동반하게 되었다. 아마도 이 시점부터가 오히려 본격적인 양극화의 시작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대기업과 중소 기업의 경제 규모 차이가 더욱 커지게 되고, 임금격차 역시 이후로 더욱 벌어지게 되었다.

중소기업의 고용비중이 OECD 최고 수준인 전체 87% 이상을 차지하는데도, 대기업의 성장과 함께 중소기업의 성장이 받쳐주지 않는 이러한 불합리한 현상이 20여 년 지속되면서, 기업의 양극화와 함께 소득수준의 양극화가 더욱 커지게 되었다고 본다. 중소 기업이 탄탄해야 많은 양질의 일자리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양질의 일자리 부족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우리 경제의 문제를 단순히 단기적인 정부의 처방에 의존할 수도, 대기업 갑질 등의 도덕적인 문제로 국한해서 보기 어렵다. 우리 경제가 한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기술혁신을 가속하는 촘촘한 산업생태계를 만들어 내기 위해 정부와 민간기업의 역할을 고민하고 함께 계획해야 한다.

 

산업의 현장에서 건강한 산업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인의 역할은 

예를 들어, 우리나라 5대 산업 중의 하나인 조선산업에서 배 1척을 수주하는 금액이 반도체 공정 장비 1대와 비슷한 수준이다. 훨씬 고부가 가치인 대부분의 반도체 장비는 아직도 외국에서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반도체 산업 강국인 우리나라가 반도체 장비 전문 중소기업이 육성되어 촘촘히 생태계의 빈자리를 메워간다면, 조선산업 못지않게 많은 양질의 고용창출과 더 큰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대기업과 많은 중소기업이 형성하고 있는 산업생태계를 더욱 촘촘하고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한 장기적인 정부정책과 기술혁신에 과감히 뛰어드는 기업인의 노력은 변함없이 필요하다. 특히 민간단위의 협의체가 활성화되어 산업단위의 목소리가 정부 정책에도 반영되는 소통 구조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민간과 정부의 소통구조가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업들의 협의체가 적극적으로 정부 정책에 대안을 제시하는 등의 소통구조가 있다면 많은 기업들의 능동적인 기술혁신과 발전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정부와 특정 기업 간의 유착이 초기에는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지만, 이후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이웃 나라의 사례를 보아서도 알 수 있다. 건강한 산업 생태계, 공정한 시장질서가 만들어 지는 것은 단순한 경제민주화를 위한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인 경제 발전을 위한 기본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공유되어야 한다. 생각의 공유만이 아니라 산업계 각 분야에서 나오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종합되고 정제되어 정부의 정책과 소통하고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건강한 산업 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봉선 회장은 결국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작지만 강한 반도체 소재, 장비 기업들이 반도체 산업 생태계에 많이 포진하여, 건강한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구성해야 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반도체 산업생태계가 미흡하게 된 원인과 해결 방안을 어떻게 모색할 수 있나 

촘촘한 반도체 산업생태계로 성장되었다면, 반도체 산업의 발전은 물론, 수많은 양질의 일자리와 부가가치가 창출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민간 기업들과 우수한 인력들은 이러한 산업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또한, 장기적인 정부의 발전전략이 필요하다.

공업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한국의 지속적인 경제 성장은 생산요소(토지, 노동, 자본)를 투입하는 단계를 넘어 생산성 향상, 즉 기술혁신을 통해서 만이 가능하다. 기술혁신은 공정한 시장에서 자란다는 인식을 민간기업과 정부가 공유하고, 그러한 인식의 토대위에 장기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중소, 중견 기업인과 기술자들이 공정한 시장에서 창의적인 기술 혁신을 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은 이미 갖추고 있다.

다만 이러한 의지와 능력을 담아내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틀이 필요하다. 내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 반도체 소재 진흥회’는 이러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틀을 지향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대기업과의 공정 거래를 위한 하소연이나 또는 신문고의 역할보다는 근본적으로 한국 반도체 산업의 생태계를 건전하게 육성하기 위해 여러 중소 기업인과 기술자들의 생각을 모아 상생을 위한 전략적인 형태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목적이다.

이러한 호소를 통해 반도체 소재의 중소, 중견기업들이 정부 정책과 대기업과의 유기적 상호작용과 상생관계를 만들어 낸다면 해결 방안의 첫 단추는 이미 채워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묘수와 편법을 지양하고 장기적인 전략이 근본적인 방법이라는 당연한 말을 재차 강조하고 싶다. 

 

중국 반도체 산업의 새치기와 묘수는 우려가 될 만하다고 보는데 

새치기, 묘수는 빠르게 기술을 흉내낼 수 있는 빠른 방법이지만, 기술 개발과 시장 확대를 위한 궁극적인 방법은 아니다. 반도체 산업은 조선기술에 비하여 오히려 공정카피율, 기술카피율이 떨어지는 첨단 기술이며, 흉내 내는 단계도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중국 BOE의 적극적인 기술카피를 통해 LG디스플레이의 엄청난 적자를 초래한 예를 들었는데, BOE도 아직은 중국 정부의 보조금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2018년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했다. 최근 미국에 의해 재제를 받고 있는 중국 첨단IT회사인 화웨이의 경우에는 회사 내에 기술 스파이 활동을 잘한 직원에 대한 보상이 체계적으로 되어있을 정도로 기업이 적극적으로 직원들의 기술 빼오기를 독려했다고 한다.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모든 기업이 이러한 묘수나 새치기의 유혹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자체기술 역량을 강화하는 것보다 기술탈취에 적극적이라면 결국 회사의 장기적인 기술개발 역량과 제품의 완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예를 최근 조선산업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중국 반도체 산업계에 대해 한국 반도체 업계는 어떠한 대비가 필요한 것인가 

한국보다는 중국의 투자 의지가 더 강한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특히 중국 정부 기관의 산업 육성에 대한 정책적인 접근은 극성에 가까울 정도로 적극적이다.

최근 중국 지방의 산업개발구를 담당하는 국장과 만남을 가진 적이 있는데, 자기 담당의 개발구 토지를 50년간  무상대여하고, 건물을 지어주고, 무이자 대출까지 지원하는 방법으로 반도체 소재 산업 기술을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인 기술 유치 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매우 인상을 깊게 받았다.

내가 국내 대기업에서 반도체 소재 엔지니어로 재직 당시 함께 일하던 대부분의 동료들이 퇴직 후 한국에서 관련 산업에 재취업 되거나, 스스로 창업하지 못하고 중국에 넘어가서 중국 반도체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계에 종사한 고급 기술자들이 대기업 퇴직 후에도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도 국내에 머물며 한국의 기술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결국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작지만 강한 반도체 소재, 장비 기업들이 반도체 산업 생태계에 많이 포진하여, 건강한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구성해야 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다. 

 

지봉선 회장은 필자의 박사학위 전공처럼 재료 공학을 전공한 공학 후배다. 덩샤오핑처럼 작은 체구와 동안을 가졌지만 가슴속에 나라를 사랑하는 원대한 꿈을 가진 사람으로, 미술에 대한 이해의 폭도 대단히 넓고 서양미술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대화를 나누다보니 필자를 압도한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 핸드폰에 도입한 손가락 터치 방식은 치열한 ‘생산 기술의 현장에서 생각치도 못한 미술이라는 예술의 방식을 도입해 대성공을 이룩한 하이브리드의 성공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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