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김민수 기자] 병자호란은 진정 위정자들의 무능으로 초래된 사상 최악의 인재일 뿐인가?

병자호란으로부터 무려 4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우리는 참담한 패전과 치욕의 역사를 되새기며 당시 조선의 위정자들에 대한 평가와 단죄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비극의 반복을 막기 위한 교훈 찾기에 주력한 탓일까,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맥락은 종종 무시된다. 근거 없는 억측이나 ‘허위사실’이 버젓이 통용되고 있다. 침략 전쟁의 피해자였던 조선에 대해서는 패전의 책임뿐만 아니라 심지어 전쟁의 발발을 막지 못한 책임까지 묻지만, 정작 침략 전쟁을 일으킨 청에 대해서는 왜 조선에 쳐들어왔는지 따지지 않는다. 청의 전쟁 승리는 그저 당연시할 뿐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묻지 않는다. 그래서 병자호란의 실상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 책은 병자호란이라는 전쟁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려는 기획의 산물이다. 청나라의 역사를 연구하는 저자는 병자호란이 청 태종 홍타이지가 일으킨 전쟁이었다는 사실을 중시하며 이런 질문들을 던지고 그 해답을 찾아간다. 홍타이지는 언제, 무엇 때문에 조선 침략을 결심했는가? 그는 조선 침략에 얼마나 많은 병력을 동원했으며, 어떤 작전을 구사했는가? 청군은 어떻게 해서 난공불락이라던 강화도를 점령할 수 있었는가? 혹 누군가의 도움을 받은 것은 아닌가? 홍타이지는 왜 전쟁을 서둘러 끝내고 귀국했는가? …… 질문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저자는 사료의 기록을 비판적으로 분석하여 사실을 밝히고 당시의 역사적 조건과 맥락 속에서 상황을 ‘디테일하게’ 재구성한다. 그리하여 ‘홍타이지의, 홍타이지에 의한, 홍타이지를 위한 전쟁’이었던 병자호란의 새로운 역사상을 제시한다.

‘병자호란’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많은 이들이 떠올리는 것은 무능력의 극을 달린 위정자들의 한심한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병자호란은 당시 위정자들의 무책임, 무능력, 부도덕이 초래한 인재일까?

이 책은 병자호란에 대한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서, 폭넓은 사료와 기존의 불명확한 분석들을 검토하여 병자호란의 실상을 온전하게 규명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병자호란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역사적 맥락 속에서 전쟁의 의의를 밝히는 데에 주력했다. 그러나 병자호란이 역사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하는지에 집중하다 보니 정작 병자호란의 실상을 규명하는 작업은 뒷전으로 밀렸다. 전쟁 자체를 사료적 근거를 바탕으로 규명하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미약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조선 측 문헌의 기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결과, 역사적 실제와 부합하지 않는 허위사실이 실제로 발생한 일인 양 널리 알려져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병자호란 당시 청군의 병력은 12만8,000명에 달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당시의 청나라는 이렇게 많은 병력을 동원할 수 있을 만큼 큰 나라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조사된 바에 따르면, 당시 청군의 병력은 갑옷을 제대로 갖춘 정규군을 기준으로 대략 3만4,000명으로 추산된다. 이는 현재까지 널리 통용되고 있는 12만8,000명의 약 27퍼센트에 불과하다. 알려진 병력보다 실제 병력이 더 적었음에도 패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물을 수 있겠지만, 전쟁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싸우는 것이다. 아군이 아무리 최선을 다했다고 하더라도 적군이 아군보다 더 강하면 승리할 수 없다. 이 책에서는 조선의 전쟁 준비에서 무엇이 부족했기에 병자호란에서 실패했는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이처럼 이 책의 저자는 신뢰할 수 있는 사료와 합리적 추론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병자호란이라는 전쟁을 규명한다. 이를 위해서 사료와 연구 시각의 측면에서 차별화를 두었다. 먼저 사료의 측면에서 보면, 종래의 연구에 비해서 청나라 사료의 활용도를 높였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대부분 조선의 기록에 근거해서 사실을 구성했다. 그러나 병자호란은 조선과 청나라 간의 전쟁이었다. 전쟁의 실상을 온전히 규명하기 위해서 이 책에서는 청나라의 기록을 충분히 참조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만주어로 쓴 기록에 주목하여 당시 조선과 청나라가 주고받은 문서들을 정확하게 해석하고 분석한다. 또한 청나라가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꾸어 조선에 적극적으로 협상을 시도한 이유로 천연두를 꼽으며, 병자호란 시기의 천연두 문제가 지금껏 주목의 대상으로 떠오르지 못했던 까닭을 사료를 통해서 자세히 살핀다.

두 번째로 연구 시각의 측면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연구는 ‘전쟁 실패’를 설명하는 데에 주력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병자호란이 청의 전쟁이기도 했다는 점을 함께 조명하여, 이전에는 중시되지 않았거나 오늘날까지 제기되지 않았던 질문들, 즉 ‘홍타이지는 어떤 전략 구상으로 전쟁에 임했을까?’, ‘홍타이지는 전쟁을 끝내고 귀국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리라고 예상했을까?’ 등과 같은 질문들을 던진다.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서 전쟁의 서사를 조금 더 입체적으로 구성하고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 책은 병자호란이라는 전쟁 자체의 실상을 밝히기 위해서 총 7장에 걸쳐서 설명한다. 제1장 ‘친정’에서는 ‘병자호란의 발발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시작으로 홍타이지가 언제, 그리고 무엇 때문에 조선 침략을 결심했는지 파헤치고자 한다. 제2장에서는 청군이 서울을 급습해서 인조의 강화도 파천을 저지하기까지의 과정을, 제3장에서는 청군이 조선의 근왕병을 격퇴하고 포위망을 구축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제4장에서는 ‘강화도가 단 하루 만에 함락된 까닭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청군이 강화도에 상륙하기까지의 모습과 상륙 이후의 상황을 묘사한다. 제5장에서는 홍타이지가 정월 16일에 보낸 서신을 분석하여 홍타이지가 서둘러 조선 조정과 협상을 벌이고자 했던 이유를 깊이 있게 분석한다. 홍타이지가 전쟁 계획을 갑작스럽게 수정할 수밖에 없었던 중대사건이 무엇인지를 세 가지 조건을 내세워 설명하며, 이 조건들을 모두 충족시키는 것으로 ‘천연두’를 꼽는다. 제6장에서는 천연두가 인류의 역사에서 얼마나 무서운 전염병이었는지를 상기시키며, 천연두가 병자호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제7장에서는 홍타이지가 병자호란을 왜 일으켰고, 어떻게 준비했으며, 어떤 공격전략을 수립해서 전쟁을 치렀는지, 어떤 식으로 전쟁을 끝냈는지를 시간 순서에 따라서 요약한다.

다양한 사료적 근거를 토대로 병자호란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 이 책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병자호란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시각으로 병자호란의 실체적 진실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도록 이끈다. 또한 역사 교과서처럼 내용을 일방적으로 나열하여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병자호란의 실상을 규명하기 위해서 필요한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짐으로써 독자들이 전쟁의 과정을 분석하고 추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독자들은 새로운 시각으로 세밀하고 정확한 병자호란의 서사를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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