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 - 5월 27일, 갤러리카페 질시루(종로구 돈화문로 71)

[시사매거진=하명남 기자] 염기현(廉起賢) 작가가 돌아왔다. 매일 쓰는 ‘일기와도 같은 작품’, 양평에서 마주하는 아름다운 일상의 풍경에 생각을 담고 나무 이쑤시개를 모아 채색한 작품으로 돈화문로에 화려하게 귀환한다. 5월 1일부터 27일까지 갤러리카페 질시루(종로구 돈화문로 71)에서 염기현(YEOM KI HYUN) 개인전 ‘생각을 담다’를 개최한다.,

29 생각-달맞이 꽃, 이쑤시개 위에 아크릭, 14X20cm, 2019, 염기현

따뜻한 본성으로의 귀환 - 문선주(미술사학 문학박사)

첫 번째 개인전부터 일관되게 보여주었던 ‘오랜 시간의 축적’을 통해서만 완성되는 작품의 성격을 그는 수정 혹은 변형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가 작가로서 포기하지 못했던 것은 작업에 대한 진지함, 작품에 대한 성실성이었다. 작가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작업인, 이쑤시개를 조금씩 모아 반복적으로 구성함으로써 축적되는 일상의 풍경은 그가 작품을 시작할 때부터 일관되게 가지고 있었던, 자신의 작업에 대한 지독한 끈기 그 자체였다.

인두로 찍었던 수많은 점들은 이쑤시개의 뾰족한 끝부분과 닮았다. 한 개의 이쑤시개는 점이었지만, 이것들이 모여 선과 면을 이루었다. 작가에게 이쑤시개는 이제 더 이상 한번 쓰고 버려지는 하찮은 존재가 아닌 자신의 회화적 감성을 담아낼 캔버스가 되었다. 이쑤시개는 작가가 가장 쉽게, 그리고 가장 싸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이기도 했다. 매일의 노동 후에도 잠깐의 짬을 내어 완성할 수 있는 재료로 이쑤시개가 적격이었다.

그는 이 재료를 가지고 일단 작업 과정을 기획했다. 단시간에도 만들 수 있고, 그렇게 만든 것들을 모아도 작품이 되는 과정. 그러기 위해서는 소재의 형태를 단순화하고 다양한 형상을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모듈(module)이 필요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몇 가지 형상 모듈을 모으면 화면이 되는 과정을 설계했다. 그는 어떤 날은 갖가지 꽃과 나무, 강물의 모양 틀을 만들고, 어떤 날은 자신이 일했던 현장에서 보았던 포크레인 모양 틀도 만들어보고, 또 어떤 날은 자신의 아이들 모양 틀을 만들었다. 이 틀에 이쑤시개를 한데 모아 형상을 만들어 채색을 하고, 이 형상을 조합하여 일상의 풍경과 사소한 이야기를 꾸며 작품을 완성했다. 그러나 이 역시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꽤 소요되었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들을 작가는 “일기와도 같은 작품”이라 표현했다.

27 생각, 이쑤시개 위에 아크릭, 21.5X25cm, 2018, 염기현

양평에 봄이 오면 지천으로 피어나는 희거나 노란 민들레, 달빛 아래 노란 달맞이꽃, 이름도 알 수 없이 사계절 피는 들꽃, 계절마다 달라지는, 강 건너 초록색의 운길산, 밤낮과 계절마다 달라지는 푸른색의 북한강, 밤이면 그가 사는 집 위 칠흑 같은 하늘로 선명히 떠오르는 흰색의 초생달, 그리고 거의 모든 화면에 오롯이 드러난 손수 지은 집을 그는 그저 담담히 기록하고 있다. 어찌 보면 나무로 만든 민화(民畵)나 유화 같기도 하고 가끔은 판화 같기도 한 그의 화면은 이렇게 탄생했다. 고요한 화면에 단지 몇 가지 색채를 입힌다고 해서 이렇게 따뜻한 느낌이 드러날 수 있을까? 그의 소박하고 따뜻한 화면은 저녁달빛과 물을 좋아한다는 작가가 가진, 작은 것들, 어린 것들,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애틋함에서 시작된 듯하다.

35 생각, 이쑤시개 위에 아크릭, 53X31.5cm, 2015, 염기현

염기현 작가는 자신의 본성에 가까운 가장 편안해 보이는 작품을 들고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작가가 오랜만에 돌아왔기 때문에 반갑다기보다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그와 가장 닮은 옷을 입고 돌아왔기 때문에 반갑다. ‘따뜻한 본성으로의 귀환’ 목공예품과 평면회화 작품의 중간쯤에 위치한 그의 작업을 보면서 미소 짓게 되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유이다.

염기현(廉起賢) 작가는 추계예술대학교 서양화과, 성신여대 조형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왕의 거리라 일컫는 돈화문로에서 북한강의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한다. 염기현 작가의 매일매일의 생각을 담아 고백하듯 끈기로 탄생시킨 이쑤시개 작품들은 경건하면서도 따뜻한

감성을 전달한다. 이번 전시가 열리는 ‘돈화문갤러리’는 올해 설립 20주년을 맞은 (사)한국전통음식연구소(대표 윤숙자)가 왕이 거닐던 돈화문로의 새로운 문화 중심을 선언하며 지난 3월 ‘돈화문갤러리’와 ‘갤러리카페 질시루’를 오픈한 ‘돈화문로의 문화랜드마크’다. 염기현 작가의 개인전 ‘생각을 담다’는 5월 1일부터 27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오픈식은 5월 3일(금) 6시. 관람은 오전 10시- 오후 8시, 휴관일은 없다.

42 생각, 이쑤시개 위에 아크릭, 36X29.5cm, 2015, 염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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