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감사 외유성 ‘이과수’ 세미나 도마에
‘신의 보직’ 감사, 예산 낭비 등 공무원 기강해이 지적도

남미로 관광성 외유를 떠났던 21개 공기업·공공기관 감사들이 도마 위에 올랐다. 돌아오는 길에서도 일부 인사들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노래방에서 여성 도우미들과 술판까지 벌였다고 알려져 더욱 국민적 분노를 사고 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공공부문의 고질적 병폐가 응축된 사건으로 일부 시민단체와 주민들은 남미 외유성 연수를 다녀온 서울 7개 구청장에 대해 주민소환을 검토하고 있다.

집단 외유라는 지적이 일고 있는 공기업 감사 중 일부가 남미 방문을 취소하고 지난 5월 15일과 16일 조기 귀국하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혁신 세미나 명목으로 남미 방문에 나섰던 21명의 공공기관 감사단 가운데 12명이 15일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칠레로 떠났으나 나머지 9명은 국내 여론이 악화되고 있는 것을 감안, 더 이상의 해외 체류는 불필요하다고 판단해 나머지 여행을 취소하고 귀국한 것.
정부는 남미로 여행을 떠났던 공공기관 감사들에 대해 향후 처리방안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감사의 남미 여행을 도덕적으로 문제 삼을 수 있어도 법적으로는 하자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처벌 쉽지 않아 기획처도 골머리
이들 감사에 대한 조치는 ▲해임 ▲경비 환수 ▲연임 불허 ▲경영평가에 반영 등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해임 조치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공기관운영법 제35조는 ‘기획처 장관은 비상임이사 및 감사가 규정에 따른 의무와 책임, 직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이를 게을리 하면 공공기관운영위의 심의·의결을 거쳐 해임을 임명권자에게 건의할 수 있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도록 해당기관에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규정에 따른 의무와 책임은 회계감사와 경영감시 등 본연의 업무에 해당된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남미여행을 떠났다고 해서 의무와 책임을 이행하지 않았거나 게을리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기획처 실무자들의 설명이다. 물론, 도덕적으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행위를 저질렀을 경우에는 해임의 조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과수 폭포를 방문하는 일정이 평일이 아닌 주말에 잡혀 있었고 공공기관 방문 일정도 적지 않았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는 여행이라고 무조건 매도하기도 힘들다.
참여연대측도 이번 사안이 해임에 해당하는 것으로 생각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해임요구나 검찰고발은 어렵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다만, 감사원이나 기획처의 조사를 거쳐 예산낭비에 따른 여행경비 환수는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여행 경비의 환수는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결정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감사들 스스로가 자율적인 형식으로 반납을 결의할 수 있다.
하지만 여행경비의 지출도 해당 기관장의 결재를 거친 것이기 때문에 다시 환수한다는 것은 기관장의 결재가 잘못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돼 해당 기관으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이들 감사의 연임을 불허하는 것은 처벌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동안 문제가 없더라도 감사의 임기가 연장되는 사례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경영평가의 반영도 감사들로서는 크게 ‘신경쓸만한’ 처벌에 해당되지 않는다.

정치권 출신 상임감사들 ‘낙하산 인사’ 논란
지금까지 기획처가 경영실적 부진을 이유로 기관장 해임을 건의한 것은 2002년 박문수 당시 광업진흥공사 사장이 유일하다.
경영지침에는 또 ‘공공기관 감사는 반드시 외부 전문가를 임용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기획처가 공공기관에 경영지침을 내려 보낸 이후에도 공공기관들은 ‘낙하산 인사’ 논란을 빚으면서까지 외부 전문가가 아닌 정치권 출신 인사와 관료 출신을 감사로 선임해왔다. 그럼에도 기획처는 외부 전문가를 감사로 선임하지 않은 공공기관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강동원 농수산물유통공사 감사는 “과거 공공기관에 대한 정부의 경영평가에서 감사에 대한 평가는 거의 없었다”며 “기관장을 중심으로 경영평가를 한 뒤 기관장이 잘하면 감사도 보수를 많이 받는 식이어서 감사는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공공기관의 감사는 “지금까지 공공기관에 대한 제재는 ‘솜방망이’ 수준에 불과했고, 기관장에 대한 유일한 견제 수단인 성과급 지급 축소제도도 유명무실했다”며 “공공기관에 대한 정부의 느슨한 규제가 공공기관 감사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온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기획처가 공공기관 감사는 반드시 외부 전문가를 선임해야 한다는 지침을 만들어놓고 이를 제대로 시행하지 않은 탓에 남미로 ‘외유성 출장’을 떠나 물의를 일으킨 ‘감사포럼’ 소속 상임감사의 70%가 정치권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처의 ‘공공기관 알리오 시스템’에 따르면 ‘감사포럼’에는 공공기관 상임감사 62명, 비상임감사 21명이 가입해 있으며, 상임감사의 70.5%인 43명이 정치권 출신 인사이다. 공공기관에 대한 감사권한을 가진 감사원 출신 감사도 8명이나 됐다. 비상임 감사 중 정치권 출신 인사는 1명에 불과했고, 대부분은 변호사, 회계사, 연구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급여가 적은 비상임감사에는 비교적 전문성을 갖춘 인사가, 대부분 억대 연봉을 받는 상임감사에는 정치인 출신이 선임된 것이다.
기획처 관계자는 “지난 4월 1일부터 시행된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라 공공기관 감사에 대한 선임절차가 까다로워지면 ‘낙하산 인사’가 공공기관 감사로 선임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사회혁신 시스템 구멍
이번 감사들의 외유성 남미 출장 파문을 계기로, 참여정부 핵심 어젠다인 ‘공직사회 혁신’ 시스템의 실효성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참여정부는 그동안 인사(고위 공무원단)와 행정(공공기관운영법) 등 공직사회 전반의 틀을 바꾸는 제도를 도입하고, 업무 프로세스의 투명성을 강조하는 등 그 어느 정부보다 공공 부문 혁신을 강조해 왔다. 한편으론 ‘일하는 정부’를 표방하며, 지난 4년 동안 5만 여명의 공무원을 늘리기도 했다. 앞으로도 추가 증원에 관한 계획들이 줄을 잇고 있다.
‘큰 정부’의 비효율성에 대한 지적이 끊이질 않았지만, 정부는 변화와 혁신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시장기능이 마비됐을 때는 정부가 나서서 조정하는 것이 진정한 시장주의다” “낙하산 인사라도 일만 잘하면 된다”는 등의 발언이 정부의 입을 통해 전해진 것도 이 같은 자신감의 반영이다. 때맞춰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은 2007년 세계 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의 정부 효율성 순위를 지난해 41위에서 올해 31위로 상향 평가했다.
하지만 상당 부분이 평가대상국에 대한 설문에 의존하는 IMD의 발표는 공직사회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이번 감사 외유에서 드러난 것처럼, 일선 공직사회의 구태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별로 없다. 굳이 혁신과 경쟁력을 배우려면 관광지인 남미가 아니라 인도나 러시아 등 다른 나라를 찾았어야 했다. 그럼에도 일선 구청장들이 감사들의 남미 파문에도 불구하고 외유성 일정을 강행하고 있다. 정권말기 들어 새 조직이 들어서는 부처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 내에서도 혁신프로그램들이 아랫물로 스며들기에는 지나치게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변화를 요구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정부부처의 한 관계자는 “참여정부하에서 인사, 일반 업무행정 등 큰 그림으로써의 공직사회 제도는 모두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면서 “하지만 공직사회의 오랜 관행이 단기간에 이뤄진 형식적인 제도 도입으로 개선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자인했다.
실제로 이번 파문의 장본인 격인 공기업의 감사 자리는 원칙적으로 외부 추천을 통해 능력 있는 전문가들로 구성돼야 했지만, 실상은 절반 이상이 정치인 출신으로 채워졌다. 중앙부처의 인사담당자는 “윗선에서는 내부혁신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해외연수나 세미나 출장 등 각종 교육프로그램을 확대하라고 지시하지만, 이들 중 위로 또는 격려성 출장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아직은 이상적인 혁신과 현실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존재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청와대가 지난 5월 17일 민정수석실을 통해 공무원이나 공기업 임원 등의 해외시찰, 연수 등 복무관련 제도적 문제점을 개선하겠다고 밝힌 것도 뒤늦게 혁신의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4대그룹의 한 임원은 “기업과 시장에서는 지금 어떻게 하면 미래의 먹을거리를 찾아내고, 신(新)성장동력을 발굴할까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아직도 나랏돈으로 외유를 떠나는 마음 편한 준공무원들이 다수 존재하는 현실에서 어떻게 우리가 큰 정부와 정부의 혁신노력을 인정하고 수긍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행자부 ‘공기업 임원 해외출장 보류’
한편, 기획예산처가 ‘이과수 폭포 감사 혁신포럼’에서 중도 귀국한 공기업 감사들을 불러 출장 경위를 조사했다. 감사원은 출장 감사들에게 ‘감사 교체권고권’을 행사할 방침을 밝혔다. 행정자치부는 지방 공기업 임원의 해외출장을 전면 보류했다. 한나라당은 “해당 감사를 해임하라”고 요구했다.
예산처는 지난 5월 18일 오전 감사 9명을 모두 불러 출장 경위를 집중 조사했다. 누가 출장을 주도했는지, 경비는 어떻게 처리했는지, LA에서 노래방에 간 경위 등을 따져 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예산처 관계자는 “앞으로 귀국하는 감사들도 같은 절차를 거칠 것”이라고 밝혔다. 예산처는 공공기관 감사들의 단체 출장을 조사하기 위해 태스크포스(TF)도 구성했다. 단장은 반장식 예산처 차관이 맡았고 이용걸 공공혁신본부장, 류성걸 공공정책관, 이관섭 경영지원단장, 김용진 정책총괄팀장 등이 참여한다. 류 공공정책관은 “이번 사안에 대한 조사를 철저히 하기 위해 내부 TF를 구성했다”고 전했다. TF는 주말에도 전원 출근해 경위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감사들은 예산처 조사에서 출발 전 브라질 이과수 폭포 관광 일정을 취소하기로 했고 방문기관도 언론에 보도된 것보다 더 많았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과수 폭포로 가는 비행 편이 모두 예약돼 일정을 취소하지 않고 출국한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들은 또 이번 출장이 남미 감사 현황을 연구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 관계자는 “중앙 행정기관과 지자체·정부투자기관의 감사가 업무를 태만히 하면 감사원이 교체를 권고할 수 있다”며 “이번에 출장 간 감사들에게 이 권한을 적극 행사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남미의 감사제도를 배우러 간다는 주장은 어색하다”며 “오히려 남미가 세계감사원장회의(INTOSAI) 이사국인 한국으로 감사를 배우러 오는 게 맞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행정자치부는 이날 전국 지자체에 지방 공기업 임원이 포함된 모든 해외 출장을 전면 보류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박재영 행자부 균형발전지원본부장은 “공기업 감사들의 외유성 해외 출장이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만큼 예방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행자부는 조만간 지방 공기업 평가를 하면서 외유성 해외 출장이 있었는지 면밀히 조사하기로 했다.
귀국 뒤 자숙은커녕 언론 보도를 비난한 감사들에 비판 여론도 고조되고 있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청와대는 보은·코드 인사로 임명한 낙하산 감사들을 즉각 해임하고 재발 방지책을 국민 앞에 약속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나 대변인은 “감사는 청와대의 인사추천회의 심사를 거쳐 임명되고 있으므로 이번 사건의 1차적 책임은 청와대에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같은 당 김기현 의원은 “이번 출장은 21명만 참가했으나 애초 신청자는 34명 이었다”며 “신청했다 취소한 사람도 이과수 관광 일정을 알고 참가 의사를 표시했기 때문에 실제 출장을 간 사람에 준하는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기관 노조도 비판에 가세했다. 한국증권금융 노조는 출장을 다녀온 감사에게 공개 사과를 촉구하고 거부할 경우 출장비 반납을 요구하기로 했다.

하는 일 없이 억대 연봉 받는 ‘감사’
그렇다면 이번에 문제가 된 공기업·공공기관 감사는 과연 어떤 직책이며 하는 일은 무엇일까. 공기업, 공공기관 감사는 조직 내에서는 최고경영자(CEO)에 이어 2인자로 꼽히지만 보수 등은 CEO 수준으로 대우받는다. 또 CEO가 조직의 실적 등에 의해 평가를 받는 반면 감사는 하는 일 없이 견제 시스템조차 없어 과다한 연봉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기획예산처의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인 ‘알리오’(www.alio.go.kr)에 따르면 지난해 기관별 감사연봉은 산업은행 5억4,400만 원, 수출입은행 4억6,800만 원, 기업은행 3억7,900만원, 한국투자공사 3억4,000만 원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또 한국전력 2억8,000만 원, 주택금융공사 2억7,600만 원, 신용보증기금과 한국토지공사가 각각 2억5,800만 원, 기술보증기금 2억4,100만 원, 한국도로공사 2억400만 원, 예금보험공사와 한국조폐공사가 각각 2억 원 등으로 상당수 기관들의 감사연봉이 2억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 가스공사 1억9,700만 원, 대한주택보증 1억7,000만 원, 한국관광공사 1억6,800만 원, 한국마사회 1억3,200만 원, 한국석탄공사 1억1,600만 원 등으로 대부분의 공공기관 감사들도 1억 원 이상의 연봉을 받았다.
이번에 외유성 남미 출장을 떠난 21명 중에서는 최교진 토지공사 감사가 2억5,800만 원으로 최고 연봉을 기록했다. 김광식 조폐공사 감사와 이양한 예금보험공사 감사가 각각 2억 원씩의 연봉을 받고 있다. 이 밖에도 김성철 주택보증공사 감사가 1억7,000만원을 받는 등 외유성 출장을 다녀온 21명의 감사들 중 1억 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공기업 감사들은 8명이나 됐다. 백계문 한국증권금융 감사, 김영환 생명공학연구원 감사, 윤창국 기초과학지원연구원 감사, 유재홍 표준과학연구원 감사의 연봉은 공개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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