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김민수 기자] 

전통과 현대 개인주의라는 박자, 거기에 더해 소수자로서의 삶이라는 박자까지

이 모든 박자에 맞춰 살아가야 하는 아랍 성소수자들의 일상

『구아파』는 익명의 아랍 국가에 사는 게이 청년인 라사가 정치적, 사회적 대변동의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 고군분투하는 24시간의 행적을 따라간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라사는 외국 단체나 개인들을 위해 일하는 통번역 회사에서 일하면서 자신을 키워 준 할머니와 함께 살아간다. 어느 날 밤 연인인 타이무르와 함께 있는 것을 라사의 할머니가 발견하게 되고 손자가 게이임을 인정할 수 없는 할머니와의 갈등이 시작된다. 그다음 날에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열정적인 활동가이며 지하 바 구아파의 드래그 퀸 스타인 마즈가 게이 영화관을 급습한 경찰들에게 끌려가게 된다.

‘에이브(수치스러운 것)’에 억눌려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된 채 우울증을 앓다가 집을 나간 어머니와 그 후 암에 걸려 할머니의 민간요법에 의지하다가 죽은 아버지의 추억 속에서, 라사는 게이이자 청년, 현대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찾으려 애쓴다. 결국 사회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기로 한 타이무르는 라사의 곁을 떠나 결혼하게 되며, 라사는 할머니가 대변하는 사회의 규율을 깨고 어머니를 찾아 나선다.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 전통과 현대의 박자를 맞추며 살아가야 하는 아랍의 현대인들. 이러한 사회 안에서 게이 청년 라사와 그의 연인 타이무르, 친구 마즈는 성소수자라는 또 하나의 장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세 번째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자신들의 자유로움이 빛을 발하는 지하 바 구아파, 시위대의 구호가 명멸하는 알 샤르키예의 거리를 오가며 그들이 선택한 리듬은 무엇일까.

아랍 세계만의 전통과 현대 사회의 일반적인 가치들이 뒤섞여 만들어 내는 갈등

낯선 아랍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발견하다

살람 하다드의 첫 작품인 이 소설은 사회적이며 개인적인 여러 갈등의 지점들을 매력적인 인물들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주인공 라사는 어린 시절부터 그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한 할머니와 갈등하는 한편 유학 간 미국 사회에서의 삶, 돌아온 조국에서 일어났다가 스러져 버린 혁명, 통번역가로 일하는 와중에 바라본 외국인 활동가들의 모습 등을 마주하며 느낀 생각들을 예민하게 드러낸다. 이는 곧 전통적인 가족주의의 붕괴, 이민자로서의 정체성, 변혁의 시대에 놓인 개인, 민족주의와 같은 현대 아랍 사회의 면면과 그 속에 놓인 개인의 치열한 고민에 맞닿아 있다.

사막, 낙타, 테러, 전쟁, 난민 등 언론에서 대상으로서만 비춰지는 아랍. 아랍은 우리에게 영원한 타자이다. 하지만 사실 아랍의 현대는 우리의 현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라사의 일상에는 영화 ‘사랑과 영혼’, 조지 마이클, 라디오헤드, 캔드 크러쉬 사가, 그람시 등 우리도 공유하고 있는 서구화된 문화와 함께 아랍인 독자라면 십분 공감할 만한 아랍사회의 전형이 번갈아 등장한다.

모로코의 학자 파티마 메르니시는 아랍의 현대인들은 두 가지 장 위에서 두 가지 리듬에 맞추어 춤추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토로했다. 오늘날 아랍은 개인이 한없이 축소되는 공적인 공간과 외부에 드러내는 것이 금기시되는 사적인 공간의 엄중한 구분이 여전히 지속되는 사회이며, 그 위에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와 인권이라는 새로운 장 또한 공고하게 펼쳐진 사회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낯설기만 했던 아랍사회에서 동시대의 젊은이들이 겪는 혼돈은 역시 아시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다지 낯설지 않은 것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특정되지 않았지만 실제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법한 아랍국가와 라사가 유학 간 미국을 배경으로, 역시 구체적으로 명명되지는 않지만 충분히 짐작 가능한 사건들(9.11 테러 등)이 펼쳐지는 와중에 라사는 게이와 아랍인, 무슬림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질문한다.

나는 게이인가. 게이인 나는 아랍사회에서 에이브인가. 나는 아랍인인가. 나를 아랍인 그리고 무슬림으로 규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래서 당신들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결국 모든 것에 그리고 모두에게 맞서겠다고 선언하게 되기까지, 고군분투하며 하루를 보내는 라사를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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