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사와 인텔사 등의 획기적 연구개발로 이루어진 ‘PC혁명’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될 생활필수품으로 자리잡은 PC의 역사가 20년 밖에 안되었다는 것을 알면 모두들 놀랄 것이다. 어떻게 PC가 20년만에 급속하게 우리 생활에 자리잡게 된 것일까? 오늘날의 PC가 만들어지기까지 최초의 PC에서부터 그 변화과정과 그 위대한 혁명을 이루어낸 주인공들을 살펴보자.


오늘날 PC는 전 세계 구석구석까지 퍼져 있어 2000년 말 현재 약 5억 대의 PC가 팔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8월 12일 PC가 탄생 2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앤디 크로브 전 인텔 회장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들이 모여 성대한 축하 파티를 갖고 PC 진화상을 보여주는 각양각색의 PC모델과 함께 언론 배포용 사진도 찍었다.
IBM 기념 홈페이지(www.pc. ibm.com/ww/pcanniversary/)를 통해 지난 20년간의 변화를 알려주고 있다. "PC는 사람의 일상생활과 업무방식은 물론 사고방식까지 바꿔놓았다. 또한 세상은 PC로 인해 완전히 달라졌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PC는 아득히 먼 미래의 일로만 여겨지던 '정보혁명'을 현재진행형으로 앞당겼다. 이러한 변화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것이 자동차 산업이다. 만약 자동차 산업의 기술 변화가 PC의 그것만큼 드라미틱 했다면 고급 승용차의대명사인 롤스로이스의 대당 가격은 2.75달러까지 떨어졌을 것이고 연비는 휘발유 1ℓ당 200만㎞-200㎞가 아니다-에 이르렀을 것이다.
PC란 IBM이 '개인용 컴퓨터' 라는 뜻의 'personal computer'를 줄여 만든 것으로 처음으로 제품을 내놓은 것이다. 물론 그들도 처음부터 오늘날과 같은 결과를 낳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최초의 IBM PC는 미국 플로리다주 보카 레이턴의 연구소에서 윌리엄 C로를 비롯한 12명의 엔지니어가 설계한 것이다. 당시 프로세서의 처리속도는 4.77㎒였다. 요즘 나오는 펜티엄Ⅳ 프로세서의 1.5㎓에 견주면 채 300분의 1도 안 되는 속도였다. 메모리는 16KB, 256KB까지 확장할 수 있었지만 그럴 경우에도 요즘의 '표준'으로 통하는 128MB와 비교하면 500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운영체제는 PC-DOS 1.0으로 아이콘과 마우스로 상징되는 '윈도'는 찾아볼 수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PC-DOS를 통해 당시만 해도 이름 없는 소기업에 지나지 않던 마이크로소프트를 컴퓨터 업계의 대부로 키워낸 것은 물론 이 회사의 설립자인 빌 게이츠를 '세계 제일의 갑부'로 만든 것이다. 빌 게이츠는 IBM PC를 공개하기 1년 전 IBM의 고위 간부를 만났다. PC에 들어갈 운영체제를 주문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경합 중이던3,4개의 PC용 운용체제 중 빌 게이츠의 것은 들어 있지 않았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막힌 우연 속에 그는 IBM프로젝트의 일원이 되었다.

8비트에서 시작한 PC, IBM 가세하면서 발전 본격화

IBM PC가 처음 등장한 1980년대 초까지도 'PC혁명'의 기미는 잘 포착되지 않았다. 당시 상위 500대 기업이 사용하던 타이프라이터의 10% 정도만을 PC로 교체했을 뿐이다. 그러나 1980년 여름 IBM이 사내 최고 엔지니어 12명을 모아놓고 PC를 1년 안에 만들어 시장에 내 놓으라고 지시했다. '더티더즌' 이라고 불린 이들은 곧바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더티더즌은 1년간의 비밀작업 끝에 1981년 8월 12일 'IBM5150'을 세상에 내 놓았다. 이것은 인텔의 '8088'칩과 256킬로바이트의 메모리를 달고 보조기억장치로는 테입드라이브를 사용한 것이었다. 이렇게 8비트 짜리 시작한 개인용 컴퓨터의 역사는 IBM이 가세하면서 질풍노도와 같은 한편의 드라마를 엮어내며 본격적인 PC시대를 열게 된다. 이후 IBM PC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는데 미국에서 시판된 지 4개월 만인 1981년 5만대가 팔렸으며 이듬해엔 애플Ⅰ,Ⅱ의 총 판매량을 앞지르게 된다. IBM내부에서도 미처 예상치 못한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메인 프레임을 중심으로 확고한 정상의 제국을 건설한 IBM이 PC시장에 뛰어든 이유는 애플의 급속한 성장을 견제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IBM이 첫 모델을 내놓았을 당시 집집마다 이 물건을 쓰리라고 기대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IBM경영진조차 1981년부터 1986년까지 최초 5년 동안 PC판매 계획치를 24만1천6백83대로 잡을 정도로 수요를 과소 평가했다. 더욱이 당시 PC 대당 판매가는 2,665달러로 미국 근로자 월 평균 소득의 4배에 달하는 가격이었다. 그러나 첫해에 5년 예상치의 PC가 판매됐고 이후 5년 동안 3백만 대가 팔려나갔다. 1981년 이후 컴팩, 델과 같은 PC제조업체가 등장하며 PC판매 대수가 매년 배 이상 늘었다. 또 XT와 286AT라는 제품을 거쳐 1990년 이후 386·486PC가 등장하면서 PC의 성능도 광속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1994년 PC가 인터넷과 본격 결합하면서 PC는 세계 경제의 심장이 됐다. 20년 전과 단순 수치로 비교하면 CPU는 356배, 메인메모리는 4,000배, 하드디스크는 2,000배나 향상했다. 만일 IBM이 PC개발을 결정하지 않았다면 무명 벤처기업이던 마이크로소프트(MS)의 소프트웨어나 인텔의 컴퓨터칩이 쓰일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는 PC업계의 최대 아이러니인 동시에 IBM에는 최대 실수이기도 하다. 결정은 IBM이 했지만 결국 MS와 인텔이 IBM을 물리치고 PC업계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8월 초 미국 새너제이 테크박물관에서 열린 PC 탄생 20주년 기념 행사의 주인공은 IBM이 아니라 MS와 인텔이었다.
사실 IBM이 PC의 원조는 아니었다. 그보다 6년 전인 1975년에 이미 '애플Ⅱ' 가 나왔고, 아타리2600, 코모도PET, MITS알테어 같은 개인용 컴퓨터들이 시장에 소개되어 있었다. 따라서 IBM PC를 '모든 PC의 원조'라고 규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IBM PC는 이전의 PC들이 미처 하지 못한 '경험'을 감행하여 '개방형 아키텍처'를 채택했다. 이것은 PC의 핵심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외부의 개발업체에게 공급함으로써 이를 본 뜬 제2, 제3의 PC가 나올 수 있는 길을 열어서 IBM호환용 PC라는 말도 여기에서 나오게 되었다.

PC업계가 낳은 스타
IBM은 이미 설립 5주년을 맞은 MS와 프로그래밍 언어 문제로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게이츠와 공동창업자 폴 앨런은 세계 최초의 미니컴퓨터용 프로그래밍 언어를 개발해 명성을 얻고 있었다. MS는 디지털리서치의 OS를 사용할 권한은 있었지만 소유권이 없어 IBM에 이를 제공할 수 없었다. 따라서 게이츠는 IBM을 대신해 디지털리서치와의 회의를 주선했다. 디지털리서치는 IBM이 제시한 요구 조건에 불만족스러워하면서 자사 OS를 IBM에 넘기지 않고 사용권한만을 허용하고 싶어했다. 결국 IBM은 MS에 다시 의뢰했고 이를 계기로 게이츠는 IBM에 PC용 도스(DOS)공급권을 따내면서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를 통해 고속 성장의 기반을 다지며 1990년대 이후 윈도 3.1과 윈도 95를 내놓아 세계에 '윈도 열풍'을 일으켰다.
인텔의 창업자인 고든 무어도 PC가 낳은 스타이다. 올 초 은퇴한 그는 '무어의 법칙'으로 유명하다. 핵심은 '반도체의 성능은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하지만 가격은 그대로'라는 것이다. 20년간 깨지지 안은 무어의 법칙은 컴퓨터 발전 속도와 맞아떨어지면서 IT업계의 공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간 유통을 거치지 않고 직판 사업을 시작한 마이클 델(델 컴퓨터), 386컴퓨터를 처음 선보이면서 당시 최대 PC제조사인 IBM의 아성에 도전한 에커드 파이퍼 회장(컴팩), 매킨토시 컴퓨터로 화려하게 재기한 스티브 잡스(애플 컴퓨터)등도 PC업계의 스타로 꼽힌다.

미래의 PC는..

눈부시게 발전한 지난 20년의 PC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과연 미래의 PC는 어떻게 바뀔지 궁금할 것이다. 현재 인텔과 IBM 등에서 이뤄지고 있는 연구와 개발을 살펴보면 우선 나노 기술 덕택에 원자만한 크기의 트랜지스터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인텔은 2007년까지 10억개의 트랜지스터로 구성된, 20㎓ 속도의 칩을 내놓을 계획이다. 복잡한 음성 명령어를 완벽하게 알아들을 수 있음은 물론, 실시간 번역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양자 컴퓨터가 실용화하고 큐빗이 비트를 대체할 것이다.
IBM이 2006년쯤 선보일 메타패드는 PC가 어느 정도까지 작아지고 얇아질 수 있는지를 입증하는 한 증거가 될 것이다. 마이크로프로세서, 그래픽 컨트롤러, 하드디스크, 메모리 등 일반 PC의 핵심부품이 들어가면서도 메타패드의 크기는 오늘날의 PDA(휴대용 디지털 단말기)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두루마리처럼 말거나 접을 수 있는 디스플레이가 상용화 될 것이다. 펴면 일반 컴퓨터의 스크린처럼 기능하지만 휴대할 때는 마음대로 접거나 말 수 있다. 일반 종이책과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그 안에 수십에서 수백권의 내용을 담을 수 있는 e-북, 구부렸다 펼 수 있는 컴퓨터칩 등도 현실화할 전망이다. 손과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인도 '생각하는 모자'를 통해 마음대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 모자는 이용자의 뇌파를 인식해 해당 명령을 컴퓨터로 보내고 컴퓨터는 그에 따라 휠체어를 움직이거나 워드프로세서에 텍스트를 입력한다. 유럽을 중심으로 관련 연구가 활발하다.
최신 마이크로프로세서 명령어를 웹에서부터 다운로드 받아, 플라스틱 판 위에 '반도체 잉크'로 이를 인쇄해 쓴다. 수십억 달러가 필요한 반도체 공장이 유명무실해지는 것이다. MIT에서 '인쇄되는 반도체'를 연구하고 있다.


국내 PC산업의 주역
국내 PC 산업의 산 증인은 삼보컴퓨터이다. 1980년 7월 이용태 삼보컴퓨터 회장과 6명의 창립멤버가 청계천 골방에서 삼보전자엔지니어링(삼보컴퓨터 전신)을 설립해 국산 PC시대를 열었다. 자본금이 1천만원에 불과했던 이 회사는 1981년 외국산 PC를 뜯어다 조립하는 이른바 '리버스 엔지니어링' 기법으로 TV수상기를 모니터 대용으로 합체한 국개 최초의 PC 'SE-8001'을 선보인다. 같은 해 9월 삼보는 상공부로부터 국내 첫 PC 생산업체로 지정되어 이듬해 8피트 애플 호환기종인 '트라이젬 20'을 생산한다. 이 무렵 청계천 세운상가의 한국마이컴, 희망전자, 석영전자, 골든벨 등 30여 중소 업체도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사용해 앞다퉈 애플 호환기종을 조립, 생산했다.
1983년엔 금성사가 '마이티'라는 8비트 컴퓨터를 내놓은 것을 비롯해 동양나이론의 '하이론-8', 삼성반도체통신(현 삼성전자)의 'SPC-1000', 대우전자의 'IQ-2000'등 대기업 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16비트 IBM PC 호환기종이 도입돼 본격적인 PC시대가 개막된 것은 1984년, 삼성전자의 'SPC-3000', 삼보컴퓨터의 '트라이젬 88' 등이 국내에 처음 판매된 IBM PC 호환기종이다. 하지만 1985년까지만 해도 PC 1대 가격이 4백만원대인 포니자동차를 웃돌아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웠다. 1990년대에 들면서 국내 PC 시장은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 IBM 호환 기종으로 통합된다. 당시 국내 PC 산업에 활력을 제공한 주인공은 대형 컴퓨터 업체가 아닌 소규모 벤처기업이다. 1990년 서울대 기계공학과 학생이던 이찬진씨가 한글과 컴퓨터를 설립해 5.25인치 플로피디스크 2장짜리 '아래아한글1.0' 을 내놓으면서 국내 PC 산업사의 한 획을 그었다.
국내 PC산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주역으로 용산전자상가 조립 PC업체를 들 수 있다. 이들은 PC 대중화의 전위부대 역할을 맡았다. 용산전자상가 1세대로 불리는 조립 PC 업체들은 PC 1대당 수십만원의 마진을 남기면서 신바람을 탔다. 중견 PC 메이커로 코스닥에 등록된 현주컴퓨터나 주연테크 등이 모두 용산에서 터를 닦은 기업들이다.

세계 IT경기 침체, PC 판매 격감

지난 7월 초 MS가 갤럽에 의뢰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50% 이상이 PC로 음악감상이나 인스턴트 메시지, 인터넷 등 실시간 커뮤티케이션을 즐긴다고 답했다. 가정에서 PC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PC가 가족이나 친지들과의 의사소통 강화는 물론 학습 및 정보 검색, 여가 활용에도 도움이 된다"는 데 공감을 표했다. 기업 내 사용자들도 PC가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며 동료와 의사소통을 하는 데 필요한 핵심적인 기술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업무를 간소화하는 기술적 진보에도 불구하고 PC는 좌절과 격분을 불러일으키는 기계일 뿐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최근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PC를 비롯한 기술적 진보는 많은 직장인을 피곤에 찌들게 하고 불쾌감을 느끼게 만든다고 한다. 조사 대상 직장인 5명 중 2명이 업무 이외의 시간에도 PC 및 관련 장비 사용이 불가피해 컴퓨터 의존도가 낮은 직업을 꿈꾸곤 한다는 것이다.
쾌속 질주하던 PC 산업은 이제 가쁜 숨을 내쉬고 있다. 지난해 9월 이후 세계 IT경기가 침체에 빠지면서 특히 PC 보급률이 70%를 웃돌고 있는 미국, 일본, 한국의 PC 판매가 격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PC 산업의 위축이 신경제의 몰락과 맥을 같이한다고 말한다. 산업경제의 속성인 경기순환 구조가 첨단 정보통신으로 대변되는 신 경제 체제에서 사라질 것이란 환상을 줬지만 PC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결국 PC도 운명의 날이 다가올 것인지 지켜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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