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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로 보는 '유신의 추억'
  • 김민수 기자
  • 승인 2019.04.02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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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김민수 기자] 추억 속에 비친 유신의 기억

1963년부터 1979년까지 이어진 박정희 대통령 시대, 그중에서도 1972년 10월 유신~1979년 10월 26일 이른바 ‘유신시대’에 일어난 70가지 에피소드로 그 시대의 역사적 의미를 찾아가는 책이다. ‘유신’이라는 전대미문의 초헌법적 독재 체제 아래서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학교를 다니고 무얼 먹고 무슨 노래를 부르고 어떤 스포츠에 열광했을까?

한국사는 물론이고 세계사까지 아우르는 <에피소드> 시리즈를 통해 이미 6권의 책을 출간한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담이 유독 많이 녹아 있어, 객관적인 역사 서술인데도 철없는 소년 화자의 성장기 같은 해맑은 골계미마저 풍긴다. 그만큼 당대의 한국인들에게 유신은 거역할 수 없는 야만이었고 벗어날 수 없는 삶의 조건이었다. 1972년 10월 17일 오후 7시, 전국에 선포된 비상계엄령으로 시작된 ‘겨울 공화국’ 시대에 이 땅의 아이, 청소년, 청년, 장년, 노인들은 어떻게 살고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치떨리고, 그립고, 짠한 그때 그 시절의 우화

유신독재가 어땠는지 교과서와 많은 책들이 잘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는 멀고 역사는 더 멀다. 유신 시대를 돌아보며 만화책과 야구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은 좀 더 가깝게 독재를 느껴 보려는 시도이다. 새마을운동, 경제개발 5계년 계획, 가정의례준칙부터 장발 단속과 어린이대공원, 고교 평준화, 이순신 동상, 바니걸즈, 땅굴, 학도호국단, 영일만 시추, 판문점 도끼 사건 등 각계각층 전방위에 걸친 에피소드들은 중장년층에겐 그리운 추억이 되지만, 청소년들에겐 이상한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저자는 유신 독재는 멀고 무거운 정치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유신은 그때 그 시절을 살았던 어른과 아이들의 일상이었다. 1979년 10월 아침 대통령 할아버지의 죽음에 슬퍼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기억과 박정희 독재에 대한 역사의식은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까? ‘600만 불의 사나이’를 흉내 내며 장독대에서 뛰어내린 기억과 한국 자본의 종속성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박정희가 죽으면 나라가 망할 거라 믿었던 기억과 박정희를 정점으로 한 가부장제 문화는 어떻게 관련이 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을까?

 

가까운 미래가 된 과거 이야기

어떻게 보면 맨 마지막 70번째 에피소드부터 읽고 맨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이 책을 입체적으로 즐기는 방법일 수 있다.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 40분 궁정동 안가에서 울린 두 발의 총성이 갖는 무게를 장전하고 앞의 에피소드들을 읽으면 각 에피소드를 비추는 ‘박정희’라는 태양의 존재가 더 뜨겁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1961년 5·16쿠데타로 시작된 18년간의 독재는 그 두 발의 총성으로 마감되지만, 황망하게 또 다른 독재의 서막을 열어젖힌다. 그 역설과 모순은 단지 우연이었을까.

왕이자 악당, 우상이었던 “대통령 할아버지”의 죽음에 눈물을 뚝뚝 흘렸던 소년은 이제 50이 되어 묻는다. 독재는 멀고 경제는 가까운, 정치는 멀고 역사는 더 먼 이 땅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딱 7년간의 유신 시절은 어떤 추억으로 남았는가. 혹 우리의 가까운 과거가 우리의 멀지 않은 미래가 되지는 않았는지, 저자는 되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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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기자  dikigirl200@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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