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김민수 기자] 여권은 여행의 흔적이 기록되는, 사적이고도 공적인 특별한 공문서다. 여권이 있으면 국경 너머로 갈 수 있기에, 내 손에 여권이 있다는 건 여행할 권리를 쥐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상상하게 만들고, 새로운 세계로 떠날 수 있게 해주는 여권은, 그래서 우리를 설레게 하는 물건이다.

한편 여권은 거의 모든 여행자가 가지고 있는 흔한 물건이지만, 민감한 개인 정보를 담은 특별한 물건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 사람의 여권이 아무리 궁금해도 그 여권의 구석구석을 살펴보기란 쉽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권의 페이지를 펼치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여권의 표지, 표지 이면, 사증 면 등에 들어 있는 다양한 상징과 문양, 삽화 때문이다. 여기에는 우리의 개인적인 추억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모두 그 나라의 역사적 맥락이나, 고유한 상징물이나, 문화적 성취를 드러내는 것들이다.

그러니 한 나라의 여권은 한 나라의 이력서인 셈이다. 여권에는 한 나라의 문화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 상징과 삽화들에 얽힌 이야기를 살펴보면 그 나라를 들여다볼 수 있다. 각자의 이야기를 담은 12개 나라의 여권을 들춰보면 그들이 어떤 길을 걸어왔고, 무엇을 기억하려 하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여권을 펼치고 새로운 세계를 여행해보자.

페이지마다 담긴 세계사 명장면, 그 속에 담긴 정신과 가치

뉴질랜드 여권에는 왜 고사리 문양이 있을까? 도쿄올림픽에 맞춰 새로 공개될 일본 여권은 왜 우키요에를 넣었을까?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들어보면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각국의 여권에는 가득하다. 뿐만 아니다. 캐나다 여권에는 희망을 안고 달린 청년이, 영국 여권에는 그들의 끝없는 혁신이, 미국 여권에는 우주를 향한 도전이, 프랑스 여권에는 자유를 상징하는 여인이, 인도 여권에는 평화를 이야기하던 군주가 있다. 여권 속 이야기는 가슴 뜨거운 실화부터 벅차오르는 상상까지 놀랍도록 다채롭다.

이 책은 12개 나라의 여권을 소개하고 있다. 수많은 나라 중에서도 이들을 뽑은 이유는 여권에 담긴 이야기가 풍부하고, 그 메시지가 강렬하며, 우리와 교류가 왕성한 나라들이어서다. 그중에는 인류의 보편적인 주제를 담고 있는 경우도 있고, 그 나라만의 독특한 문화를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출입국 관리 공무원으로 20여 년 동안 일해온 저자는 직업의 특성상 많은 나라의 사람과 많은 나라의 여권을 만나왔다. 각 나라의 여권이 각자의 가치와 각자의 역사를 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을 여러 번 마주할 수 있었다. 이 책은 그런 앎에서 오는 기쁨을, 다양한 여권을 접하지 못할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썼다.

한편 우리나라 여권은 남색 표지로 디자인을 바꾼다. 차세대 여권이 2020년부터 발급됨에 따라 각국의 여권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이다. 각 나라의 여권과 여권의 변천사를 담은 이 책은 쉽게 접하기 힘든 여권에 대한 독자들의 호기심을 해소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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