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김민수 기자] 

※ 사상을 해방시키는 첫 단계는 실사구시를 하는 것이다

모든 부분에서 실사구시를 추구해야 합니다. 옳으면 옳다고 하고, 아니면 아니라고 하며, 맞으면 맞고, 틀리면 틀렸다고 하며, 무거우면 무겁다고 하고, 가벼우면 가볍다고 해야 합니다. 또 좋으면 좋다고 하고, 나쁘면 나쁘다고 하며, 크면 크다고 하고, 작으면 작다고 하며, 많으면 많다고 하고, 적으면 적다고 해야 합니다. 시시각각 백성을 위한 혁명을 염두에 두어야지, 개인의 잇속을 차리거나 거짓말을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무릇 거짓말을 하는 자라면 반드시 엎어 질 날이 오게 마련입니다.

대중들과 서로 어우러지고 그들의 장점을 따라 배워야 합니다. 대중의 경험을 종합해서 일리가 있는 이치와 방법으 로 종합한 후 다시 대중들에게 알려주어야만 합니다. “꼴사납게 어깨에 힘을 주지 말고 기꺼이 초등학생처럼 순수해야 합니다.”

본 문선은 1952년 5월부터 1986년 10월까지 후야오방(胡耀邦) 동지가 발표한 중요한 저술 총 77편을 수록했습니다. 문장ㆍ연설문ㆍ보고서ㆍ담화ㆍ서면지시ㆍ서신ㆍ제사 (題詞) 등이 포함된 문선의 상당 부분은 처음 공개되는 내용입니다.

후야오방 동지의 저술은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 사업,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그의 남다른 기여와 중요한 사상관점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 문선 편집과정에서 일부 원고와 역사적 사실에 대해 약간의 수정을 거쳤고, 일부 연설문과 담화기록에 대해서도 필요한 만큼 정리했음을 밝혀두었습니다. 한편 편집 과 정에서 일부 해제(題解)와 주석을 첨부했는데,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특수한 일은 특수한 방법으로 처리하고, 새로운 일은 새로운 방법으로 처리하며, 입장은 바뀌지 않되 방법은 새로워야 한다.”

- 선전(深圳) 경제 특구를 위한 제사(題詞)

 

후야오방(胡耀邦)

1915년 11월 20일 후난성(湖南省) 류양현(浏阳縣)에서 태어나 1989년 4월 15일 서거했다. 14세에 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 가입했고, 18세 때 중국공산당 당원이 되었다. 중국혁명시기 중국공산당 소비에트 구에서 “꼬마 홍군(红小鬼)”으로 유명세를 떨친 그는 2만 5천리 장정에 참가했고, 그 후 중공 중앙 군사위원회 총정치부 조직부 부장, 제1야전군 정치부 주임 등의 직을 역임했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후에는 중국공산주의청년단 중앙 제1서기, 중공 중앙 조직부 부장, 중공 중앙위원회 비서장 등의 직을 담임했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진리표준(眞理標準)문제에 관한 토론을 조직하고 추진하여, 중공11회3중전회(中共中央委员会第三次全体会议의 약칭)의 중요 이론을 제정하는 준비를 하였다. 즉 문화대혁명 때 잘못된 관료주의 풍토와 지방 관리들의 고의적인 방해[冤假錯案]로 인해 원통한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박해를 받은 간부ㆍ지식분자ㆍ일반 군중에 대해 죄를 경감해 주는 일(平反)을 조직하고 영도하였다.

개혁개방 정책이 시행된 후에는 중공 중앙 주석과 중공중앙 총서기 등 중요 영도직무를 장기간에 걸쳐 담임하면서 개혁개방 사업과 현대화 건설을 추진하는 등 다양한 면에서 중대한 공헌을 한 탁월한 정치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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