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 코인, 2세대 코인 자리를 두고 각축전 전망

[시사매거진=이회두 기획편집국장] 한국은행이 디지털 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CBDC) 발행이 시기상조라고 판단하고 자체연구에만 집중한다는 결정을 내린 가운데, 세계 각국은 오히려 ‘중앙은행 CBDC 발행’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반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에는 미국과 ‘G2 전쟁’을 펼치고 있는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CBDC 관련 행보에 주목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 정부와 마찬가지로 암호화폐에 부정적인 중국이 블록체인(분산원장기술)을 기반으로 한 CBDC 도입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스테이블 코인은 실물경제와 연동돼 전자상거래와 해외송금 및 간편결제 등 온·오프라인 영역에서 활발히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사진출처_뉴시스)

지난 2월 25일 체인파트너스 리서치센터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최근 급부상한 스테이블 코인(법정화폐 기준으로 가격 변동성을 줄인 가치안정 화폐)이 주로 미국의 달러와 연동되는 시장상황에 경계심을 높이고 있다고 한다. 스테이블 코인은 실물경제와 연동돼 전자상거래와 해외송금 및 간편결제 등 온·오프라인 영역에서 활발히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이 때문에 최근 중국 인민은행은 자체 ‘디지털 화폐 연구소’를 통해 디지털 화폐 관련 소프트웨어(SW) 시스템, 암호화 기술 및 보안 모델, 거래 기기 칩 기술 연구개발(R&D)을 진행할 박사급 전문 인력들을 잇달아 충원하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의 블록체인 관련 특허 보유량도 알리바바, IBM, 마스터카드,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 등과 함께 세계 상위권에 속한다.

체인파트너스 리서치센터 기관금융사업팀장인 한대훈 이사는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전 세계 중앙은행의 70%가 CBDC를 연구 중”이라며 “페이팔, 위챗페이, 알리페이 등 전자결제 시스템이 이른바 ‘현금 없는 사회’를 앞당긴 것이 주된 요인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은행은 지난해 1월 구성한 ‘가상통화(암호화폐) 및 CBDC 공동연구 태스크포스(TF)’ 활동을 1년 만에 종료하고, 자체 연구를 지속하겠다는 계획만 발표한 것은 금융시장의 미래에 투자를 준비하는 각 국의 행보와는 동떨어져 보인다.
 

세계적으로 스테이블 코인의 급부상은 기정사실화 되어 가는 것일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암호화폐’ 시장에 빙하기가 찾아왔다. 대장 화폐라 할 수 있는 비트코인마저 2년 전 가격에 비해 80% 정도 떨어진 상황이다. 가격 하락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암호화폐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다. ‘안정성’ 및 ‘보안’과 관련한 문제들이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암호화폐를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시각이 회의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위기가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에게 있어서는 또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암호화폐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스테이블 코인이란 가치의 변동성이 최소화되어 있는 코인을 가리킨다. 기존 암호화폐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달라지는 가치의 변동성으로 인해 상거래용으로 부적합하다는 인식이 높아지면서, 가격 안정성이 보장될 수 있는 코인이 탄생하게 되었다. 시장경제는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되는데, 시장의 수요량과 공급량을 결정하는 기준은 ‘가격’이다. 따라서 화폐의 가치가 수시로 바뀌게 된다면, 상품 가격도 계속 변동될 수밖에 없다. 만약 아침에 1,000원이었던 빵이 오후에 2,000원으로 올랐다가 다음날 아침에 500원으로 떨어진다면, 시장은 일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런 혼란이 현재의 암호화폐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암호화폐를 더 이상 진정한 화폐로 볼 수 없다고 간주하고 있다. 스테이블 코인은 바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등장한 암호화폐로 디지털 자산의 성격을 나타낸다. 직역하자면 ‘가치가 안정된 화폐’ 쯤으로 해석할 수 있는 스테이블 코인은 안정성 때문에 수많은 암호화폐 들 중에서도 ‘기축통화’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기축통화(key currency)란 국제간의 결제나 금융거래의 기본이 화폐로서, 대표적으로는 미국의 달러나 유럽의 유러화 등을 꼽을 수 있다.

블록체인협회 관계자는 “스테이블 코인을 현실의 달러나 파운드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라며 “스테이블 코인은 달러로 고정하여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스테이블 코인을 개발할 때는 ‘1코인=1달러’를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화폐 가치가 달러로 고정되기 때문에,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과 같은 기존의 암호화폐들보다도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기에 유리해지는 것이다.
 

스테이블 코인 어떻게 설계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변동성이 심한 암호화폐 시장에서 어떻게 ‘1코인=1달러’ 시스템을 유지하는 스테이블 코인을 설계할 수 있을까? 암호화폐 업계는 크게 2가지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 모델은 특정한 기관이 달러를 확보한 뒤에 확보한 만큼만 코인을 발행하는 것이다. ‘법정화폐 담보 스테이블 코인(fiat collateralized stablecoin)’이란 명칭의 이 모델은 특정 회사나 기관이 자신들의 계좌에 달러를 보유하는 것으로 사업이 시작된다. 이어서 보유한 금액만큼 코인을 발행하는데, 실제로 이들 코인의 홈페이지에는 ‘코인의 금액만큼 달러를 제공한다’라고 언급되어 있다. 암호화폐 거래 방법 중에서 가장 정확하고 안정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델은 블록체인 기반에서 작동하는 암호화폐의 존재 가치를 송두리째 부정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특정한 기관이 암호화폐에 대한 지배력을 갖게 되고, 암호화폐를 거래하는 고객은 해당 기관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다시 말해 ‘탈중앙화’가 블록체인의 존재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중앙화’가 이루어지게 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암호화폐로 볼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USDT(USD Tether)’라는 암호화폐다. USDT는 테더(Tether)라는 회사가 발행하는 가장 유명한 스테이블 코인인데, 현재 20억 달러가 넘는 규모의 USDT가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다. 따라서 테더는 자신의 계좌에 발행한 암호화폐 규모만큼의 달러를 보유하고 있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의혹을 사고 있다. 투명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만 투자자들은 거래량의 증가에서 신뢰성을 보이는 형국이다.

두 번째 모델은 코인을 발행하고 유지하는 업무를 ‘스마트컨트랙트(smart contract)’, 즉 스마트계약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스마트계약이란 계약 조건을 블록체인에 기록하고 조건이 충족되었을 경우, 자동으로 계약이 실행되도록 설계한 시스템을 의미한다. 금융거래를 포함하여 모든 거래의 계약에 활용할 수 있다. 이 모델 역시 첫 번째 모델과 마찬가지로 기축통화를 담보 자산으로 보유하지만, 어떤 특정 기관이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계약 시스템의 계정에 보관하는 것이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야 하는 만큼, 계정에 보관하는 것은 실제 화폐가 아닌 암호화폐로 저장된다.

스마트계약 모델에 내재한 문제점은 담보로 확보한 자산인 암호화폐의 변동성이 크다는 것이다. 리스크를 햇지하기 위해 스마트계약 모델에서는 ‘초과담보화(over collateralization)’라는 방법을 사용한다. 실제 발행한 스테이블 코인보다 더 많은 양의 담보 자산을 확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00이라는 규모의 이더리움을 담보로 보유하고 있다면, 스테이블 코인을 80 정도만 발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보유한 이더리움의 가치가 떨어지더라도, 스테이블 코인 가치를 유지해줄 수 있다는 것이 두 번째 모델의 핵심 개요다.

몇 년간 꾸준하게 스테이블 코인을 주제로 강연을 해온 필자로서는 이제 알트코인의 1세대는 기술력이나 규모면에서 세계적으로 10개 내외가 자리를 잡았으며, 이제부터는 스테이블 코인이 2세대 코인의 자리를 두고 각축하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현물담보와 결제토큰을 결합하는 융합형이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글로벌 기업들이 전자지갑을 탑재한 폰을 출시하고 자체 코인들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IT강국으로 불리는 우리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력을 통해 코인세계의 기축통화가 탄생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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