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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한계와 형식을 무너뜨린 압도적 자전소설 '서머타임'
  • 김민수 기자
  • 승인 2019.03.1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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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김민수 기자] 노벨문학상 수상, 부커상 2회 수상에 빛나는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영어권 작가’이자 ‘존재의 중추신경을 건드리는 작가’ J. M. 쿳시의 자전소설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J. M. 쿳시 자전소설 3부작은 ‘우리 시대 가장 과묵한 작가’로 불릴 만큼 자신의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기로 유명한 쿳시의 삶과 사랑, 예술, 철학을 잔인할 만큼 솔직한 서술로 풀어낸 회고록이자 소설이다. 이 3부작을 통해 작가 존 쿳시의 삶은 또 한 편의 예술로 재탄생한다.

3부작 중 마지막인 『서머타임』은 그중에서도 획기적이고 파격적이다. 쿳시가 작가로서 발을 내딛기 시작하던 1970년대를 다룬 이 작품은 2009년 맨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2006년 쿳시가 사망했다는 가정하에 전기작가 빈센트가 쿳시의 삶을 추적해나간다. 쿳시가 적은 메모와 그가 생전에 깊은 관계를 맺은 사람들과 연인들의 인터뷰가 이어지고, 그 모든 기억과 기록을 통해 쿳시의 입체적 초상이 완성된다. 그가 처한 심리적, 물리적 현실은 물론 그의 은밀한 사생활, 사랑과 예술에 대한 그의 철학, 정치관이 거침없이 폭로된다. 모든 한계와 형식을 무너뜨리고 개인과 예술, 작가와 작품 사이의 관계를 치밀하게 파헤치며 타고난 이야기꾼이자 진실과 진리의 구도자로서 쿳시의 진가를 확실히 보여준다.

소설로, 오직 소설로만 말하는 작가, 존 쿳시

2003년 10월, 스웨덴 한림원은 존 쿳시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한다. 수많은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지만 그는 전혀 응하지 않았다. 그는 세계적 명성과 관심에 비해 언론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작가였고, 일상에서도 과묵함으로 무장한 비밀스런 사람이었다. 부커상을 세계 최초로 두 번나 수상했음에도, 언론과 대중의 상업적 관심이 부담스러워 시상식장에 나타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였기에 노벨문학상 시상식에 모습을 나타냈을 때,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귀를 기울였다.

쿳시는 뻣뻣하게 단상에 올라 준비해온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그것은 흔히 생각하는 수상 연설이 아니었다. 감사 인사도 없었고 자기 인생에 대한 이야기나 문학과 예술과 시대에 대한 감동적인 호소도 없었다. 그것은 ‘He and His Man’이라는 제목의 소설 한 편이었다. 그러나 그 소설은 수상 연설을 대신하기에 충분했다. 쿳시는 그런 작가였다. 무엇이든 소설로, 오직 소설로만 말하는 작가.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기로 거의 전설적인 쿳시가 자신의 삶을 소재로 소설을 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가 진실을 사유하는 방식, 진리를 말하는 방식은 오직 소설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신에 대한 것이더라도 말이다.

포스트모던시대의 자서전, 포스트모던시대의 걸작

쿳시의 메모와 그에 대한 인터뷰들이 하나하나 모여, 작가 존 쿳시의 초상이 완성된다. 다양한 시점과 각도에서 본 이야기들이 서로 맞물리고 부딪치며 그려진 그의 초상은 입체적이다. 또한 잔인할 만큼 적나라하다. 그러나 이 모든 기억과 기록을 모으던 전기작가 빈센트는 이런 의문에 봉착한다. 쿳시의 메모는 과연 얼마나 진실한가? 소설가인 쿳시가 그 모든 걸 꾸며냈을 가능성은 없을까? 오래전 과거의 기억에 의존한 인터뷰는 과연 믿을 만한가? 그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쿳시의 죽음, 전기작가 빈센트, 쿳시의 사촌 마르곳, 그의 연인이었던 줄리아와 아드리아나와 소피, 그리고 직장 동료 마틴. 이 모든 설정과 등장인물은 모두 허구다. 『서머타임』을 쓴 사람은 빈센트가 아니라 쿳시 자신이고, 쿳시는 영국 유학중에 결혼해 이후 아이 둘을 둔 아버지가 되었으므로 『서머타임』 속 설정과도 맞지 않다. 그렇다고 모든 내용이 사실과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대중적이지 않은 작가’ 혹은 ‘냉정한 지식인’ 같은 쿳시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물론 그가 처한 현실에 대한 묘사 중 실제와 맞아떨어지는 부분도 상당하다.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자리에서 존 쿳시에 대한 진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소설 속 인터뷰에서 드러난 쿳시의 모습이 가지각색이었던 것처럼, 독자들의 마음속에 그려진 쿳시의 초상도 다채로울 것이다. 최종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독자들 각자의 최종적인 초상이 더해짐으로써 『서머타임』은 작가와 작품뿐 아니라 작가-작품-독자 간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기존의 형식과 한계를 무너뜨리고 진실과 거짓, 현실과 허구 삶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작품은 가히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걸작이라 할 만하다.

김민수 기자  dikigirl200@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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