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왕(치우)장군을 모시는 아라소도 김라운 원장

[시사매거진251호=김민건 기자] 한국의 무속은 오래 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함께 해 온 민간신앙이다. 무(巫)는 태고적부터 우리 민족의 토착신앙으로 전반적인 면에서 우리의 삶을 지배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대를 거치면서 갖은 박해와 탄압을 받았고, 근대화 또는 서구화라는 명목아래 전통문화와 종교적인 측면까지 도외시(度外視) 당하기도 했다. 뒤늦게 무당과 무(巫)는 전통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아 학문의 대상으로 정립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에 대한 세인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전근대적’이고 ‘미신의 전형’으로 생각해 온 무(巫)에 대한 종교적인 이해와 예술성을 이해하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천왕장군 대신별상’의 아라소도 김라운 원장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나라의 큰 행사를 비롯해 집안의 대소사에 이르기까지 굿을 통해 앞일을 가늠하고 대비하고자 했다. 신비한 능력을 신으로부터 받은 반성인적(半聖人的) 존재인 무속인은 인간의 뜻을 신에게 전달하고 소원을 성취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녀, 인간의 능력으로는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신을 통하여 판단하는 길흉점복(吉凶占卜)의 예언자 역할을 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신령, 무당, 굿’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방문을 꺼려하거나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있지만, 이런 선입견에서 벗어나 무속인의 직업을 즐기고 있는 김라운 원장은 보이지 않는 영혼의 세계는 존재하며 인간의 모든 화복(禍福)은 신의 뜻에 따라 좌우되므로 재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속인을 통해 신과 접촉하여 재난을 미리 탐지하고 방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충남 천안시 ‘천왕장군 대신별상’의 아라소도 김라운 원장을 만나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숙명처럼 다가온 무속인의 삶..’ 신을 모시게 된 상황은 

신을 모시게 된지는 7년째(2013년) 접어 들었다. 그 이전부터 항상 몸이 좋지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몇 년 동안 병원을 다녀도 병명조차 나오지 않았었다. 이대로는 죽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러다 주변 지인의 권유로 점집을 한번 가보자고 했지만 당시 기독교인이었던 나는 당연히 거부를 했었다. 그러다가 결국 마지못해 가보게 됐는데, 점집에 들어서는 순간 심장이 막 울리면서 열이 올라오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지나왔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치면서 뭔가 모를 복받침이 올라왔던 것 같다.

사실 지나왔던 과거를 잘못 살았다기 보다는 행복했던 적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 무당께서 말씀하시길 신이 눈앞에 다 왔다고 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역시 그 말을 부정하고 돌아갔었다. 지속되는 육체적 고통과 정식적 아픔은 삶을 포기할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결국 하늘에 대고 무작정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시느냐고.. 우리 모녀 인생 도합 100년 가까이 이러는 이유가 뭔지, 미안하지도 않느냐고.. 내가 정말 필요한 곳이 있으시면.. 활인공덕 구제중생을 떠나 정말 내가 쓰일 곳이 있으면 가져다 쓰시라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신내림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천신을 모신다고 들었다. 독자들에게 설명을 부탁한다 

처음 신을 받을 때를 표현하자면 그냥 빛으로 오셨다. 말 그대로 틴들 현상(Tyndall phenomenon)이었다. 단군치우천왕의 모습이시기에 나는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청동검과 거울 그리고 청동방울을 내려주셨다. 어려운 얘기지만 정의를 내리긴 어렵다. 신명에는 급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자면 높은 신명이 와도 가르쳐주는 말은 못 알아들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하늘의 달을 접시물에 비춰 보이는것과 우물에 비춰 보이는 것이 다르듯, 신명은 사람의 그릇이나 지식의 차이로 온다. 

내가 모시는 할아버지는 때론 미륵으로 때론 해수관음으로도 오신다. 그 분들은 내게 어떤 장면들을 찰나의 시간으로 보여주신다. 그 장면은 머지 않은 시간에 곧 현실로 나타난다. 실 예로 모든 신들이 예지력을 내려줄 수는 없다. 예언을 보여줄 수 있는 신은 극히 한정적이다. 

‘천왕장군 대신별상’의 아라소도 김라운 원장

신을 받고 나서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던 숙제를 하나 풀었다는 느낌이다. 항상 아팠던 몸이 낫고 웃게 됐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음이 비워지면서 집착이 사라지고 욕구에 대한 부분이 다 내려가게 됐다. 

이전에는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기분이다. 그리고 내가 점점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기대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점사를 볼 때 책이나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사실인가 

그렇다. 전혀 없다. 일반적으로 동전이나, 쌀점, 산통, 방울 등을 도구로 사용하시는 무속인 분들이 많이 있다. 개개인의 공부에 따라 편차가 있겠지만 저는 풀이가 아닌 그저 보이는 그대로, 들리는 그대로 말을 전한다. 물론 사주를 받아 풀이할 수는 있다. 하지만 먼저 혜안으로 말을 전하고 잘 믿지 못하는 분들에게는 그 뒤에 사주를 넣어 보여주면 모두 맞아 떨어진다. 

 

개인 블로그에 올려놓은 예언들을 봤다. 때문에 예지력에 관한 질문을 빼놓을 수 없다. 정말 미래를 보는가 

당연히 본다. 그건 할아버지께서 분명 옳은 일에 쓰라고 주신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가슴 아픈 얘기지만 2014년 4월에 세월호 사건이 터졌었다. 그걸 3월부터 한 달여간 봤었다. 물에 빠진 듯 몸은 계속 춥고 대천문에서부터 안구까지 터질듯 고통을 느껴 잠을 못 이뤘었다. 유람선 같은 배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 잠수부의 모습, 촛불을 들고 집회를 하는 모습들이 계속 매일같이 보여졌다. 

사실 돌이켜보면 그 전에도 이런식의 장면들이 수도 없이 보였지만, 세월호 사건 이전에는 그저 ‘이런게 왜 보이지?’라고 생각했지, 미래를 본다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었다. 정확히 신을 받고 2013년부터 순간순간 수도 없는 장면들이 보였지만 그때만 해도 뉴스를 찾아볼 생각도 못했고 집에 TV도 없었다. 세월호 당시에도 모르긴 매한가지였다. 너무 아파서 그저 매일 4번씩 108배만 올리고 있었다. 사건이 터지고 큰언니가 전화가 왔었다. 그리고 그동안 미래를 보아왔던 걸 자각했다. 그 일 이후 내가 봤던 장면들을 노트에 그리고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6월부터 블로그에 남기게 됐다. 

세월호 당시에도 모르긴 매한가지였다. 너무 아파서 그저 매일 4번씩 108배만 올리고 있었다. 사건이 터지고 큰언니가 전화가 왔었다. 그리고 그동안 미래를 보아왔던 걸 자각했다. 그일 이후 내가 봤던 장면들을 노트에 그리고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6월부터 블로그에 남기게 됐다.

그렇다면 재난과 같은 사건 사고만 보이는가. 그리고 기간을 알 수 있나 

아니다. 일상적인 것도 본다. 때문에 보여지고 나서 기억하는 장면을 빠르게 적는다. 표현을 하자면 마치 파노라마처럼 잘려진 필름이 장면장면 빠르게 지나간다. 해운대나 호미곶처럼 그 장면의 배경이 내가 가본 곳이거나 알고있는 유명한 곳이면 자세히 묘사할 수 있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이렇게 보여진 장면을 기억해서 적어두면 크고 작은 이슈들로 실시간 검색에 올라 반증이 된다. 보통 일상적인 사회적 이슈는 가까운 시일내에 보여지고, 큰 사건이나 사고, 재난 등은 시일을 알 수 없다. 단 그 시일이 가까워지면 흑백에 가까운 장면이 좀 더 자세한 색깔을 띄고 보여진다. 지금으로서는 그렇다.

 

최근에 미리 보게 된 큰 사건이 있나 

지진과 해일이다. 도심지에서 생기는 지진. 도심야경이 보이는(일본으로 보여지는) 아시아 국가이다. 어두운 밤이고 아스팔트가 일어나는 모습, 건물이 무너지는 모습이다. 그리고 해일이 덮치는 모습을 계속 보여 준다. 또 화산에서 흘러내리는 용암이 도로를 덮치고 열차가 보여졌었다. 이 외에도 역대 대통령 중 인물에 대해 보여지는 모습이나 누구나 아는 대기업의 건물도 보여지지만 인터뷰에서 언급하기는 굉장히 조심스러워지는게 사실이다. 이 부분은 언급을 하지 않는게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본인 스스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 

개개인의 운명도 무시는 못하지만 어떤 사고에 휘말려 억울하게 죽어나가는 이들을 최소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신을 받을 때 이렇게 얘기했다. 정말 내가 너무 아프니 날 죽이시려면 죽이시고, 살리시려면 정말 필요한 곳에 써달라고. 그렇게 내려 받은 혜안은 나 개인의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느 한 사람 혹은 가정, 혹은 집단에서 진정 억울하지 않은 곳에 쓰여야 한다고 믿고 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그 길을 오롯이 걸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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