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엔터테인먼트
중국 개혁개방의 숨은 선도자 시종쉰의 일대기 '사진으로 읽는 시종쉰 전기'
  • 김민수 기자
  • 승인 2019.03.12 10:55
  • 댓글 0

[시사매거진=김민수 기자] 

“시종쉰(習仲勳)은 섬감변구(陝甘邊區) 혁명근거지를 창건한 인물 중의 한사람이다.”

시종쉰(習仲勳)은 원칙을 견지하고 자신의 입장을 견지 하였으며, 관점은 명확하게 당의 이익을 우선순위에 놓았다. 그는 나라를 위해 마지막 날까지 자신의 힘을 다하였다.

1. 단촌(淡村)고원의 농촌 소년

중국 역사에서 관중(關中)의 대지는 너무나도 많은 찬란함과 무거움을 담고 있다. 진(秦), 한(漢), 수(隋), 당(唐) 등 13개에 달하는 왕조가 이곳에다 도읍을 정할 정도로 왕기(王旗)가 펄럭였지만, 한편으로는 일월(日月)이 늘 상 뒤바뀌곤 했던 곳이었다. 이에 시성 두보(杜甫)마저 걸음을 멈추고 “진중(秦中)은 자고로 제왕의 주(州)라네”라 읊으며 감개무량해 했었다.

산시(陕西)의 중부에 있는 푸핑(富平)은 자고로 “관중의 유명한 고을”이라는 명성을 갖고 있던 지역인데, 북쪽으로는 차오산(橋山)에 인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위수(渭水)와 손잡고 있으며, 황토고원의 웅장함과 800리 친저우(秦州)의 광활함을 겸유(兼有)하고 있어 “가히 사방의 형세를 파악할 수 있는, 관푸(關輔)의 으뜸 고을”로서 명성이 자자했다. 푸핑은 진려공공(秦厲共公)1) 11년(기원전 456년)에 현이 설치되고서부터 지금까지 무려 2,400여 년이나 지속되어 오고 있다.

푸핑(富平)이라는 이름은 부유하고 태평스럽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고향에 대한 선인들의 소박하고 경건한 이상을 엿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남녀노소가 다 아는 노래가 있다.

“문관으로는 양작(楊爵)이 있고, 무관으로는 왕전(王翦)이 있다네. 효자로는 양열(梁悅)이 있고, 충신으로는 장담(張紞)이 있다네. 태보(太保)로는 손비양(孫丕揚)이 있고, 위징(魏徵)은 꿈속에서 용왕의 목을 베었다네.” 천백년 이래 나라와 민족을 위한 뜻을 세우고 기여했던 뛰어난 인물들을 기리는 마음과 아름다운 신화가 어우러진 노래이다.

근현대에 들어서는 또 장칭윈(張靑云), 자오즈징(焦子敬), 장이안(張義安), 후징이(胡景翼) 등 영웅호걸들이 등장하여 나라와 민족을 구하는 길에 앞장서기도 했다. 바로 이런 곳에서 1913년 10월 15일(음력으로 계축년 9월 16일) 한 농가에서 시종쉰(習仲勛)이 태어났다. 시 씨 가문과 푸핑현 서부의 단촌고원(지금은 단촌진 중허[中合]촌 중허조[中合組]에 속함)과의 인연은 19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쌍의 아들딸을 지게에 짊어지고 허난(河南) 덩저우(鄧州)로부터 서쪽을 향해 떠돌이 생활을 하던 시종쉰의 조부 시용성(習永盛)과 아내 장(張)씨는 1885년(광서(光緖) 11년) 초에 단촌고원의 더우촌천(都村川)에 자리를 잡음으로써 수 년 동안의 떠돌이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이들은 남의 머슴살이를 하며, 한편으로는 땅 몇 무(畝)를 소작 맡아 경작하면서 생활을 꾸려나갔다.

- 중 략 -

시종쉰은 산간변구 혁명근거지의 주요 창건자이며, 지도자의 한사람일 뿐만 아니라, 중국 개혁개방 사업의 주요한 개척자이며, 추진자의 한사람으로, 그의 위대한 정신은 바로 실사구시의 정신이다.

2005년 5월 24일 시종쉰 서거 3주년이 되는 해에 그의 유골은 베이징 바바오산(八宝山) 혁명 공동묘지로 부터 고향인 산시 푸핑현에 안치되었다.

관중의 대지는 그가 혁명을 시작한 곳이며, 일생동안 심사숙고하며 지키려하던 지방이다. 그날 수많은 어르신들과 마을 사람들은 사면팔방에서 푸핑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도로 양변에 숙연하게 서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시종쉰의 영령을 맞이하였다. 수 년 후 사람들은 중국 중앙텔레비전 방송국의 다큐멘터리『시종쉰』에서 이런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시종쉰의 영구차 대열이 푸핑에 들어설 때, 당시 중국공산당 저장성(浙江省) 성위원회 서기였던 시진핑은 중국공산당 당기가 덮인 아버지의 유골이 담겨 있는 유골함을 안고 있었다. 시진핑은 차안에서 묵묵히 도로 양변에 숙연히 서있는 고향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면이 클로즈업되면서 사람들은 시진핑과 친척들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볼 수가 있었다.

인기리에 방영된 다큐멘터리와 함께 시종쉰의 영령이 고향에 들어서는 이 장면은 오랫동안 중국 인민들의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왜 나의 눈가에 항상 눈물이 맺혀 있는가 묻는다면 그건 내가 이 땅에 대한 깊은 사랑 때문이오!(爲什麽我的眼裏常含泪水, 因爲我對這土地愛得深沉)” 아이칭(艾靑)의 이 시는 중국인들이 선혈들에 대한 경모와 딛고 있는 땅에 대한 위대한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푸른 측백나무가 둘러져 있고, 사계절 푸른 묘지에 시종쉰의 조각 상이 우뚝 솟아 있다. 조각상의 뒷면에는 시종쉰의 부인이 친필로 쓴 “일생동안 투쟁하고, 일생동안 유쾌하였으며, 매일 분투하고, 매일 행복했다.(戰斗一生,快樂一生;天天奮斗,天天快樂)”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것은 시종쉰의 좌우명이며 그가 후세에 남겨준 소중한 정신적 재산이다.

- 본문 중에서

시사매거진, SISAMAGAZINE

김민수 기자  dikigirl200@sisamagazine.co.kr

<저작권자 © 시사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민수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