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킹은 수도 워싱턴에 모인 10만이 넘는 군중 앞에서 ‘내게도 꿈이 있다(I have a dream)’는 연설을 했다. 그 후 킹과 케네디는 전부 암살됐지만 오히려 민권법 개선을 위한 여론은 높아져 존슨대통령이 결국 승인했다. (사진출처_뉴시스)

[시사매거진251=신혜영 기자] 미국의 흑인민권운동은 1955년 12월, 알라배마 주의 몽고메리라는 도시에서 하루 일을 마친 재봉사 Rosa Park가 버스를 타면서 시작된다. 그때 당시의 버스는 앞좌석은 백인, 뒷자석은 흑인이 탈 수 있도록 하는 ‘Jim Crow’ 법이 있었는데 그날따라 백인이 앉을 자리가 모자라자 버스 운전사는 흑인들에게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한다, 다른 흑인들은 순순히 말을 들었지만 로자 파크는 끝까지 자리에 남고 나중에는 체포까지 되게 된다.

이 사건이 일어나자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를 중심으로 흑인 지도자들은 차별을 종식시켜야 한다며 집단으로 버스타기 거부하는 등의 시위를 벌였고 이는 흑인민권운동의 시작이 됐다. 이들은 흑인 이용이 금지된 해변을 비롯해 식당, 기타 시설 등에 흑인들과 백인 운동가들이 같이 들어가는 시위를 시작했다.

전국적인 흑인민권 지도자로 부각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흑인 유권자들을 정식으로 투표권리자로 등록 작업을 시작했으며 흑인과 백인의 공공장소 격리가 폐지되기 시작했다. 또 흑인 학생들이 백인 대학에 입학이 가능해졌고 케네디 대통령은 민권법을 통과시켰다.

마틴 루터킹은 수도 워싱턴에 모인 10만이 넘는 군중 앞에서 ‘내게도 꿈이 있다(I have a dream)’는 연설을 했다. 그 후 킹과 케네디는 전부 암살됐지만 오히려 민권법 개선을 위한 여론은 높아져 존슨대통령이 결국 승인했다.

이로 인해 백인과 흑인을 차별하는 건 이제 법적으로는 불가능해졌다. 이 시기 이후부터 비로소 인종차별이 지탄받을 만한 사회적 행위가 되었다. 흑인도 백인 위주의 주류사회로 뛰어들 수 있게 되었으며 아시아계 이민자에 대한 제한 숫자 또한 철폐되어 많은 한국교민들이 이민갈 수 있게 되었다. 이 운동은 20세기의 인권운동 중에서도 중요한 것으로써 미국의 치부인 인종차별문제를 상당히 해결하며 흑인들의 열등감을 해소하는데도 공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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