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코드는 한창 때의 몸값이 2,300만 파운드로 무려 우리 돈 2000억 원에 달했지만 27년이란 짧은 역사를 남긴 채 사라졌다.(사진출처_뉴시스)

[시사매거진251호=신혜영 기자] 1969년 3월 2일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개발 한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의 시험비행을 위해 프랑스의 뚤루즈 공항을 이륙했다. 프랑스 남서부의 툴루즈 공항 활주로를 이륙한 콩코드는 29분 동안 프랑스 상공을 난 뒤 무사히 지상으로 돌아왔다. 인류 최초의 초음속 여객기가 비행에 성공했다. 첫 시험비행 성공 이후 2대의 콩코드는 1969년 파리 에어쇼, 1970년 영국의 판보로에어쇼 등에 출품돼 그 위용을 과시했다. 이어 지속적인 시험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콩코드 개발은 미국의 독주를 막고 유럽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영국항공기법인(BAC)과 프랑스 쉬드아비아시옹(Sud-Aviation)사가 1962년 11월 29일 양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초음속 여객기를 개발하기로 결정하면서 시작됐다. 알루미늄 합금으로 제작됐고 가늘고 긴 삼각날개와 4개의 엔진을 지닌 콩코드는 이후 냉각장치 보완 등을 거쳐 7년 뒤인 1976년 상업운항을 시작한다. 영국의 브리티시 에어와 프랑스의 에어 프랑스가 런던∼바레인, 파리∼리우데자네이루, 파리∼워싱턴, 런던∼워싱턴 비행을 시작한 것이다. 평균 시속이 2,000㎞로 대서양을 3시간 만에 돌파했다. 그러나 경제적 부담과 소음 문제 등으로 대서양 횡단 정기편은 오래가지 못하고 런던∼뉴욕, 파리∼뉴욕 구간의 부정기 전세기로만 운항됐다.

하지만 2000년 7월 25일 파리 샤를드골 공항을 출발하던 뉴욕행 콩코드가 이륙 중 갑작스레 폭발해 100명의 승객과 9명의 승무원 전원이 사망했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2001년 9.11테러로 승객 수도 줄어들었다. 이 같은 악재가 계속되자 두 항공사는 엄청난 유지비의 부담을 극복하지 못하고 2003년 10월 24일 콩코드 시대의 막을 내렸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여객기로 정상의 지위를 누리던 초음속 비행기 콩코드는 한창 때의 몸값이 2,300만 파운드로 무려 우리 돈 2000억 원에 달했지만 27년이란 짧은 역사를 남긴 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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