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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농악’의 무형문화재 박동근 명인농악 본고장 김제의 무형문화재 박동근 명인을 찾아
  • 이관우 기자
  • 승인 2019.03.08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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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1호=이관우 기자] 2019년 3월이면,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지구의 가장 중요한 24절기 중 서너 번째인 경칩(驚蟄)과 춘분(春分)이 다가온다. 상고시대부터 진작된 농경사회의 필요성에 의해 제정된 절기가 현재까지 유효한 것은 아직도 우리나라 전역에서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조선시대 성종이 “우수에는 삼밭을 갈고, 경칩에는 농기구를 정비하며, 춘분에는 올벼를 심는다”고 실록에 적었듯 본격적인 농사를 준비하는 기간이다. 이러한 때 한해 농작의 풍년을 기원함은 물론 농민들의 안녕과 번영을 바라는 국민 가무 ‘농악(農樂)’이 2대 악기인 꽹과리, 설장고를 앞세우고 등장한다. 공동체 의식과 더불어 촌락의 여흥과 각종 기예를 연행하여 즐기는 농악은 놀이문화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통 공연예술 장르로 발전했다. 그리고 지난 2014년 11월27일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 그중 남도 최고의 곡창지대인 김만평야의 농악을 찾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7-3호 김제농악(설장고) 보유자 박동근 명인’을 만나보았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7-3호 김제농악(설장고) 보유자 박동근 명인


농악, 한국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농악(農樂)은 일종의 마을이나 농사를 관장하는 신에게 드리는 제사의 일종이다. 또한 액운을 쫒고 축복을 부르는 공동 가무의 한 가닥이다. 무엇보다 봄가을 풍농과 풍년을 기원하는 농민과 농부들의 희원이 담긴 농경사회의 전통 공연예술이다. 거기에 한국인이 좋아하는 3소박과 혼박, 혼소박 등 불균등 구조의 복잡한 리듬을 가미해 자연의 천둥소리를 표방한 쇳소리의 징과 꽹과리, 사람의 심장 박동소리를 모방한 북과 설장고 등을 혼합해 리드미컬한 협연을 이루어낸 기예놀이다. 특히 농악의 2대 소리는 꽹과리와 설장고다. 두 악기가 주요 리듬을 연주하며 여흥을 돋우면 징과 북은 단순한 리듬으로 음악의 강약을 조절한다.

그중 우두머리 역할은 설장고가 맡는다. 본래 상쇠와 둘이서 놀이판 가운데로 나와 서로 가락을 주고받으며 놀던 것이었으나 6·25전쟁 이후 전라북도 정읍의 김홍집 예인이 혼자 설장고를 치는 형태로 발전시켜 현재는 전국의 모든 농악이 설장고 치는 장고잽이를 우두머리로 한다. 여기에 노랑, 파랑, 초록의 3색 띠를 두른 풍물단원이 각기 제 가진 악기 소리를 내며 여흥을 돋우고 기예를 펼친다.

이렇게 우리나라 전역에서 펼쳐지는 농악은 각각 그 지역의 특색을 담고 있으며 앞치배와 뒤치배의 편성과 구성, 복색이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장단과 추임새, 여흥은 변함없는 한국의 것이다. 특히 연극은 탈을 쓰거나 특별한 옷차림을 한 잡색들에 의해 진행되고, 무동놀이나 버나돌리기와 같은 기예도 함께 연행돼 사람들의 탄성과 호응을 유도해낸다.

이러한 농악은 크게 5개의 문화권으로 나뉘어 있다. 경기·충청권, 강원 영동권, 영남권, 호남좌도, 호남우도 권역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이러한 다양성이 반영되어 현재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농악은 총 6종목으로 진주·삼천포 농악(제11-1호), 평택농악(제11-2호), 이리농악(제11-3호), 강릉농악(제11-4호), 임실필봉농악(제11-5호), 구례잔수농악(제11-6호)이다. 그리고 2014년 11월27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러나 이들 농악의 중심은 역시 1988년 전국예술대전에서 대통령상과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김제농악(설장고 박동근)’이다. 호남 지역의 중심이고, 전국 여러 지역과 서로 연결돼 있어 교통의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는 김제는 역시 농경사회 최고이며 최대인 고대저수지 벽골제를 안고 있는 농수로의 심장부다. 그곳에서 농사신께 올리는 농악, 풍악, 풍물이 발원해야함은 기본 중의 가장 기본이다.

박동진 명인과 그의 수제자 정진욱 씨가 꽹과리와 장고의 협연을 마치고 포즈를 취했다. 박동진 명인은 인터뷰 시종일관 자리를 함께한 그의 수제자 정진욱(51) 씨의 손을 잡는다. 그는 징잽이로서 김제농악에서 차세대 상쇠 노릇을 할 일꾼이라고 귀띔했다.

박동근 명인, 전국예술대전 석권한 김제농악 명맥 잇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7-3호 김제농악(설장고) 보유자 박동근(朴東根·79)’ 명인은 1941년 4월16일 정읍에서 출생했다. 7세 때부터 부친 박수배로부터 농악(풍물)을 배웠고, 10세 때 부친의 친구인 김병섭 선생에게 사사 받았다. 이후 13세 때는 이명섭 선생의 풍물단에 들어가 설장고를 배웠고, 18세 무렵에는 외갓집이 있는 김제로 가서 ‘박판열 명인’의 문하생이 된다. 당시 박판열 선생은 일제강점기 때 사라진 한국의 농악을 되살리려 혼신의 노력을 경주한 예인 중 하나로 손꼽힌다. 1960년경 김제 출신의 ‘현판쇠’라는 쇠잽이(상쇠)가 나타나 김제농악을 활성화시켰는데 이에 힘입어 광복 후에는 김제·정읍·부안 등지의 농악 명인들이 하나의 농악 단체를 만들어 계보를 이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박판열, 안재홍, 김문달 등의 치배들이 등장해 공연을 활성화시켰다.

1990년경 박판열, 이준용 등의 예인이 국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데 이어 2000년경에는 다시 박판열의 수제자인 박동근과 김해순 선생 등이 국가 예능보유자(장고)로 지정되어 김제농악의 맥을 잇게 되었다. 따라서 김제농악의 쇠잽이 계보는 박만풍(정읍)-김도삼(정읍)-현판쇠(김제)-김문달(김제)-이준용(김제)-서판득(김제)으로 이어지고, 그 외 김바우(부안)-박남석(부안)-박보현(김제)등으로 이어지는 계보도 있다.

또한 장고잽이 계보는 김홍집(정읍)-김대근(부안)-이명식(정읍)/안재홍(김제)-박판열(김제)-박동근/김해순(김제) 등으로 이어진다. 그에 따라 박동근 명인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7-3호 김제농악(설장고) 보유자가 된 것이다. 특히 그 분야 사람들은 가장 정통한 김제농악의 원형을 보유한 예인으로 그를 손꼽힌다.

박동근 명인의 연습실에는 노루가죽과 개가죽으로 제작된 각종 장고들이 있다.

무형문화제 박동근 명인이 전수하는 ‘마당밟이 농악’

현재 전승되는 김제농악은 ‘걸립굿/마당밝이 농악’과 ‘판굿/연예농악’이 두 갈래가 있다. 그중 ‘마당밟이 농악’은 박동근 명인이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 마당밟이 농악은 일명 걸립굿으로 첫째 어룸굿, 둘째 청령굿, 셋째 당산굿, 넷째 동네 우물굿, 다섯째 집안굿으로 나뉜다. 농악이 농사신에게 제사하는 의식이듯 각각의 단계마다 우두머리 설장고가 기원과 축복의 바람을 전달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집안굿으로는 문굿-집안 우물굿-조왕굿-철룡굿-곳간굿/노적굿-성주굿-마당굿-인사굿 등의 순서가 있다.

그리고 현재 김제농악의 앞치배는 용당기/큰기, 영기, 농기, 나발, 새납, 꽹과리, 징, 장고, 북, 고깔소고, 채상소고, 열두발상모 등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뒤치배는 대포수, 사대부, 창부, 농구, 조리중, 무동, 양반광대, 각시/할미광대 등으로 따라간다.

박동근 명인은 “과거에는 부락마다 깃발을 가지고 있었다. 용당기, 영기, 농기 3개의 깃발을 뺏는 데서부터 농악의 재미가 시작된다. 그중 농기는 ‘농자천하지대본’이라 새겨져 있는데, 농사가 천하의 큰 근본이라는 뜻으로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농사꾼은 왕이고, 농자는 천하의 근본이라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말이 농민의 사기를 북돋워줘 참으로 의미가 있다”고 들려준다. 이어 그는 “세계 속에 한국의 농악은 한국인에게 매우 큰 자부심을 안겨준다. 그리고 한국의 문화적 역량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것만으로도 그 가치를 충분히 증명한다. 실제 체험하고 있는 것은 세계인이 우리의 풍물소리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쇠, 북, 장구소리가 사람들의 이목을 주목시킨다. 서양 악기에서는 ‘얼씨구’ 하는 추임새가 없지만 우리나라 농악은 여러 사람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장단이 있다. 그것이 강점이다”고 설명한다.

또한 박 명인은 “현재 김제에는 단체 농악단 3곳, 마을 농악단 11곳, 청소년 농악단 1곳이 활동하고 있다. 특히 근래에는 원광대까지 지도하러 가는데,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마음을 비우라는 것이다. 악기가 공명되기 위해서는 속이 텅 비어 있듯 농악을 배우는 사람도 무엇인가 가지려고 하고 채우려고 하면 소리가 맑지 탁해지기에 텅 비워야 한다. 자신의 욕망을 내려놓고 덕을 쌓는 데 정신을 집중하면 좋겠다”고 마무리하며, 인터뷰 시종일관 자리를 함께한 그의 수제자 정진욱(51) 씨의 손을 잡는다. 그는 징잽이로서 김제농악에서 차세대 상쇠 노릇을 할 일꾼이라고 귀띔한다.

“세계 속에 한국의 농악은 한국인에게 매우 큰 자부심을 안겨준다”고 말하는 박동근 명인. 그는 그의 인생과 함께한 농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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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우 기자  sisamagazine1@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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