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김민수 기자] 한국인이 사랑하지만 읽지는 않은 책 《자치통감》

세종대왕, 정약용, 김옥균 사이에 책과 얽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자치통감》을 아꼈다는 것이다.

세종은 수시로 《자치통감》을 읽으며 국가 경영에 참고했으며, 경연에서 강講하며 신료들에게도 자주 이 책을 권했다. 나아가 읽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자치통감》을 해설한 《자치통감훈의》를 편찬하는가 하면, 호삼성이 음주를 붙인 판본을 구하기 위해 어명을 내려 전국을 뒤졌을 정도로 《자치통감》을 아꼈다.

정약용 또한 마찬가지다. 황현의 《매천야록》에 따르면 정약용은 《자치통감강목》을 앉은 자리에서 막힘없이 읊을 정도로 탐독했다. 근대에 이르러서도 《자치통감》은 개화사상가 김옥균이 일본에서 홍종우에게 암살당하는 순간 손에 쥐고 있었던 책으로 한국사에 등장한다.

사마광은 신종에게 《자치통감》의 의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신은 국가의 흥망성쇠와 백성들의 애환, 경계해야 하거나 의미 있는 사건들을 골라내 편년체로 정리하고자 했으나, 각각의 사건들에 있어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한 판단은 역량이 부족해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 사마광은 수많은 역사적 사실을 충실하게 전하고자 했을 뿐, 어떤 교훈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역사를 이용하며 그 경중을 따지지는 않았다고 분명히 밝힌 것이다. 따라서 《자치통감》은 리더십에 대한 힌트나 처세에 대한 어떤 교훈을 찾기에 앞서 철저하게 역사 전문가가 엄밀하게 다뤄야 하는 역사책으로서 접근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자치통감: 천년의 이치를 담아낸 제왕의 책》이 한국에 소개되는 데에는 각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 《자치통감》을 지금 여기 감각에 맞춰 쉽게 풀어쓴 시도들을 바라볼 때에는 몇 가지 우려가 생긴다. 첫째, 《자치통감》이라는 유명한 고전의 이름을 빌린 전혀 다른 책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다. 둘째, 방대한 내용을 축약하는 과정에서 그 밀도가 너무 헐거워지지는 않을까 하는 의심이다.

《자치통감: 천년의 이치를 담아낸 제왕의 책》은 《자치통감》을 현대인의 감각에 맞춰 한 권으로 정리하되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켜준다. 오늘날 중국을 대표하는 역사학자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장궈강 칭화대 교수는 역사의 대중화에 힘쓰는 지식인으로 알려졌지만, 그러한 그의 활동은 어디까지나 학문적인 신중함과 엄밀함을 바탕으로 삼아 이뤄진 것이다. 이 책 또한 《자치통감》을 지금 여기의 입말과 감각에 맞춰 소개하면서도 쉽게 요약했다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치통감》이 가진 역사서로서의 의미와 의의를 충실하게 반영해 다름 아닌 옛 사서를 다시 쓴 역사책으로서 밀도 높고 엄격하게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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