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김민수 기자] 세상의 모든 ‘유사-비정상 겸 확실한 소수자’들에게 보내는 강력한 리스펙트

“태어났을 때부터 힙합을 좋아하진 않았다. 태어났을 땐 분유를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은 분유보다 힙합을 더 좋아한다. (…) 나는 햇수로 14년째 한국에서 힙합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힙합에 대한 책을 쓰고 힙합영화제를 처음으로 만드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무가치하거나 미련한 짓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전에 없던 새로운 길을 앞장서서 개척하며 깃발을 꽂는 일이다. 힙합을 다루며 힙합과 닮은 삶을 사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_175~177쪽 〈우리 닮았나요〉

래퍼 딥플로우는 힙합 저널리스트 김봉현에 대해 “래퍼가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자기만의 방식으로 힙합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국내 힙합 신에서 김봉현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 않다. 힙합과 관련된 책만 벌써 열세 권을 출간하며 국내 유일무이한 힙합 전문 저널리스트로 자리매김했다. 어쩌면 가장 많은 오해와 편견을 받고 있는 음악 장르를 변함없이 ‘사수’하고 새롭게 해석해내면서, 힙합 창작자와 리스너, 독자들까지 그의 의견에 귀 기울이게 만들어왔다.

저널리스트로서 그의 힘은 그러나 선택한 길을 흔들림 없이 파고든 전문성에만 있지 않다. 낯선 영역은 쉽고 평이한 문장으로, 민감한 이슈는 치우치지 않은 균형감으로, 현상을 대할 때는 유머가 배인 따뜻함으로, 그 글쓰기만으로도 적지 않은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다. “결국은 좋은 문장을 쓰던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그가, 첫 산문집 《오늘도 나에게 리스펙트》에서 침대 밑에 모아둔 사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처음으로 꺼내놓는다.

 

“그러나 나는, ‘내 것’ 역시 존중받기를 원한다

대세와 어긋날지라도“

작가는 내 것이 아닌 타인의 기준으로 나를 재단하는 모든 행위를 끊임없이 경계한다.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최소한의 고민 없이,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타인을 단죄하는 이분법도 신뢰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아 서로를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거리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를 통해 비로소 타인의 삶 또한 온전히 존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고 믿는다. “누구에게도 100%의 온전한 나를 이해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평생 자잘한 오해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87쪽) 이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이해와 위로, 리스펙트를 보낸다.

 

유머와 진지함이 절묘한 비율로 섞인,

그의 문장은 읽어본 사람만이 안다

“미안하지만 난 유머 왕이다. 대중성과 확장성이 떨어진다는 약점이 있지만, 대신에 소수 마니아의 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나의 유머 철학을 지면에 온전히 담기는 어렵다. 그래도 간단히 말하자면 주로 시사/예술 레퍼런스가 존재하는 유머, 혹은 두 번 이상 생각해야 웃을 수 있는 유머를 즐겨 구사하는 편이다. 때문에 나의 유머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교수, 지식인, 청와대 행정비서관, 프랑스 미술관 큐레이터 등이 주를 이룬다. 실제로 ‘굿유머 갱’이라는 크루를 만들어 활동한 적도 있다. (…) 사실관계에 자신 있으니 팩트체크 하길 바란다.” _15~16쪽 〈유머 프로페셔널〉

남이 무얼 하든 자기 잣대로만 판단하지 말 것. 어떠한 삶을 살든 스스로가 삶의 주인이라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러나 작가는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기 위해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 서로에게 더 차가워져야 함을 뜻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리스펙트’라는 삶의 태도는 결국 좋은 사람들과 오래도록 함께하고, 세상과 더 많이 연대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그는 관계와 일상에 늘 농담을 동반하는 여유가 필수라고 생각한다. 연남동 카페에서 원고를 쓰던 그는 때로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산책자로, 집 가까운 슈퍼마켓과 서점의 단골손님으로, 옛 여자친구의 옛 남자친구로, 발라드를 부르던 윤종신의 팬으로, 스쳐 지나가는 일상을 유머러스하면서도 따뜻하게 포착해낸다.

“예상대로 멋지게 사는 것 같지만 이상한 드립은 여전하더라”는 첫사랑의 갑작스런 전화에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내가 구사하는 일급유머를 구사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농담을 건넨다. 이승환의 노랫말 “너무 많은 이해심은 무관심일 수도 있지”를 듣다가 “나에게 늘 친절하고 예의바른 여자들을 내가 별로 안 좋아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깨달음을 얻는다. 세월호 사고일을 와이파이 비밀번호로 쓰는 연남동 ‘카페 인홀릭’에서는 커피와 함께 ‘연대’도 마신다. 무엇보다 옛 연인과의 지나간 연애를 재해석한 〈100% 지어낸 여자 이야기〉를 읽는다면, 농담과 진실이 절묘한 비율로 섞인 그의 유머에 진지하게 웃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책으로 묶은 글들은 그가 살아온 삶의 태도와 다르지 않다. 내가 당신의 것도 존중하듯이 당신도 나의 것을 존중해주기를, 그래서 우리가 서로 친구가 된다면 서로 더 많은 유머로 더 많이 웃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작가는 글 쓰는 삶과 소소한 일상, 드라마와 영화, 만화책의 주인공들, 친구와 애인, 동료와 업무 담당자들, 흘러가는 유행가와 고전이 된 음악들 모두에게 섬세하고 따뜻한 눈길을 보내며, 이 모든 것이 온전히 이해받고 존중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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