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과 의견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이 한국 땅에서 약 20초에 한 명씩 소중한 생명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사라져 가고 있다. 낙태를 요구한 사람이나 이 요구에 응해 생명을 제거하는데 의료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이나 누구에게나 있어야 할 일인 양 이 일을 감행하고 있다. 또한 그 누구도 이 일을 형법에 호소해서 형사 사건으로 처리 한 적이 없다. 낙태를 원하는 임산부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죄책감을 갖고 있고 시술 의사들도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 수술을 감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낙태건수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낙태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태아'와 '낙태 반대 운동가' 뿐이었다. '태아의 절규(성교육 시간에 교재로 널리 사용되는 비디오 제목)'와 달리 '여성의 절규'는 그 어느 곳에서도 거의 들리지 않고 있었다.
이처럼 '침묵의 문화'에 일부가 반기를 들고 나섰다. 20대 영 페미니스트 집단이 만든 웹진 〈언니네〉(www.unninet.co.kr)는 낙태를 경험한 3명의 여성의 대담과 칼럼을 위주로 '공허한 찬반론을 넘어 여성의 삶에 밀착되어있는 낙태'를 다루고 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에서도 '이제 낙태를 말한다'를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20∼30대의 기·미혼 여성 9명이 자신의 낙태 경험을 드러냈다.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은 한결같이 잊히지 않는 경험이라 말을 한다. 살인이라는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었기 때문에 '불쌍한 태아의 인권?'이라고 코웃음치며 임신 중절 수술을받았다는 한 여성(29·직장인)또한 실상은 '문득문득 떠오르는 기억 때문에 몸서리쳤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임신임을 처음 알았을 때의 막막함, 병원을 몰래몰래 찾아다니던 때의 절망감, '지금부터는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솔직하게 나를 드러낼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수술 이후에도 모질게 그녀를 따라다녔던 것이다.
기혼 여성의 경우 낙태에 다른 죄책감이 미혼 여성보다 덜할 것이라는 사회적 통념도 이들에게는 상처가 크다. 두 아이를 키우고 사회에 복귀하려던 때 공교롭게도 임신사실을 알게되어 중절수술을 결심했다는 ㅇ씨(38·아트디렉터)는 '이제 막 난자 정자가 만나 엉긴 흔적같은 미물일지라도, 그것이 자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자식이 된다는 것'을 몸소 느껴 본 어미로 한 아이를 살육한다는 것이 차마 못할 짓이었다고 괴로워한다.

낙태 찬성·반대를 떠난다
낙태 반대론자들은 이 때문에 "태아를 살해했다는 죄책감에 평생을 시달리느니 당장의 불이익을 감수하는 편이 낫다"(김일수 낙태반대운동연합 대표)라고 말한다. 여성주의자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낙태 반대론과 결별한다. "굳이 묻는다면 여성주의자들도 낙태 그 자체에는 반대한다. 그렇지만 낙태 찬성이냐 반대를 묻는 양분법은 이들의 고통을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대신 무엇 때문에 그토록 많은 여성들이 원치않는 임신에 무방비하게 노출되는지를 물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던 이들은 여성이 자기 몸을 통제할 수 없게끔 만들어진 사회구조에 화살을 돌린다. 한국여성민우회 권수현씨(여성과 성 연구소)는 "과연 자기가 원할 때 성관계를 갖고, 자기가 원하는 피임법을 요구하는 여성이 얼마나 되는가. 임신할 시기와 자녀의 수를 자기가 결정하는 여성이 얼마나 되는가"라고 되묻는다.
여성당사자보다 남자친구·부모·남편·시댁이 얼마나 더 큰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며, 국가 또한 산아 제한 따위의 출산 정책 내지는 보수적인 성교육으로 여성의몸을 통제하고 있는 현실에 "여성은 자기 성을 떳떳하게 여기게끔 제대로 훈련받은 적이 없다. 월경·임신·출산 이런 것들을 드러내고 얘기할 수 없었다. 미혼 여성이 피임에 관해 거론하면 '밝히는 여자'로 일단 규정지어지는 것이 사회의 일반적인 시간 아닌가. 이런 것들을 내버려 둔 채 여성에게만 일방적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생명체 살해,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일"

지난해 12월 27일 낙태반대운동연합과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모자보건법 제 14조 폐지 청원서를 국회에 전달했다. 모자보건법 제 14조는 낙태가 가능한 다섯 가지 사유(①태아의 우생학적·유전학적 장애 ②태아의 전염성 질환 ③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한 임신 ④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⑤모체 건강이 위태로울 때)를 규정하고 있다.
낙태반대운동연합(이하 낙반연)은 잘못된 가치관과 세상풍조로 인하여 한국 사회에서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는 낙태에 대한 심각성을 일깨우며 이를 반대하고자 하는 취지 아래, 그 동안 활동해오던 몇몇 단체들과 이 운동을 지지하는 가입단체들이 힘을 모아 낙태반대운동을 하기 위해 연합한 시민단체다.
그 동안 많은 개인과 단체가 낙태문제에 대해 조용히 자기의 몫을 감당해 왔다. 그러나 낙태반대운동의 일을 해 오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점들이 있다면, 낙태를 묵인하고자 하는 힘에 비해 낙태를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의 영향력이 왜소하다는 것과 낙태반대를 위해 필요한 정보와 전문성을 갖추는 데 있어서 개인과 단체가 그것을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낙태를 반대하는 일반시민들도 직접 낙태반대운동에는 참여를 꺼리거나 지연하고 있다는 것 등이었다.
낙반연은 낙태가 인간 생명을 파괴하는 살인행위임을 알리고 더 이상 낙태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는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낙태반대운동을 하는 개인이나 단체를 서로 연결시켜서 그들의 사역을 효과적으로 하게 하며 연합적인 일을 주도하고 있으며 낙태반대의 힘을 모으고 낙태반대에 대한 목소리를 전하는 창구가 되도록 일원화하여 효과적으로 낙태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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