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송한 성관계 무죄 판결에 청소년·여성 단체의 거센 반발


청소년과 성관계를 갖은 사람은 무죄인가? 유죄인가?
과연 그 처벌의 잣대는 무엇이며, 기준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10대 한 소녀와 성관계를 갖고 기소된 남성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나면서 청소년·여성계는 물론이고 법조계 내에서까지 시끄럽다.
청소년보호위원회를 비롯한 여성·청소년 단체들은 법원의 무죄 판정이 청소년보호법의 입법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반면 변호사 등 법조계 인사들은 "입법 취지가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판사가 형사상의 처벌 규정을 확대 해석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판결을 지지하고 나섰다. 그런가 하면 이번 기회에 관련 법 조항에 대한 수정이나 보완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섰다.
논쟁의 불씨가 된 것은 지난 7월 6일 서울지법 형사4단독 윤남근 판사가 내린 한 판결이었다. 윤 판사는 채팅을 통해 만난 가출 소녀 안모(15)양과 성관계를 맺은 뒤 잠자리를 제공하고 현금 2000~1만4000원을 준 혐의로 각각 기소된 홍모(26)씨 등 20대 남성 5명에 대해 모두 무죄 선고를 내렸다. 이들이 안양에게 제공한 편의나 돈의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아 청소년 성매매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현행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 성매매를 청소년에게 금품 기타 재산상 이익이나 직무·편의 제공 등 대가를 제공하거나 이를 약속하고 성교 등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윤 판사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이 안양과 성관계를 갖고 잠자리와 밥값, 차비 등을 제공한 점은 인정되지만 안양이 돈을 미끼로 성관계를 제의한 사람들과는 상대하지 않았다"며 "우리나라에서 연장자가 비용을 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안양에게 제공된 금품은 함께 지내는 동안 발생한 비용인 만큼 성관계 대가로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윤 판사는 "상대방 이성의 호감을 얻기 위해 금전적 편의를 제공하는 것까지 법이 관여하면 사생활이나 애정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다"며 "이들이 성관계에 대한 기대를 가졌을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성관계에 대한 단순한 기대를 품고 만나 함께 지내는데 드는 비용 정도를 지불한 사건을 청소년 성매매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무죄 판결에 대한 거센 반발
윤 판사는 지난 8월 31일에도 유사한 사건에 대해 비슷한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청소년 성매매 혐의로 기소된 20대 고시 준비생에게 역시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 선고를 내린 것이다. 이번 사안은 좀더 미묘했다. 고시 준비생 강모(27)씨는 지난 5월 인터넷 화상채팅으로 알게 된 가출 소녀 최모(17)양을 자신의 자취방으로 데려가 성관계를 가졌다. 강씨는 다음날 최양에게 현금 5만원과 고시원 식당 식권 6장을 건넸고, 나중에 강씨는 청소년 성매매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강씨는 재판 과정에서 "최양이 먼저 잘곳을 제공해 달라며 전화로 요청해 만났고, 건네준 돈은 생활비에 보태 쓰라는 의미였을 뿐"이라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청소년 성범죄 관련 재판으로 이례적으로 법정 증인대에 서기까지 한 최양 역시 "화면상으로 보니 잘 생긴 남자여서 별다른 목적 없이 만났다"며 성매매 사실을 기인했던 검찰 진술을 번복했다.
윤 판사는 "강씨가 가출한 최양의 재워달라는 부탁을 처음엔 거절했다가 다음날 전화를 걸어온 최양을 자취방으로 오게 한 뒤 하룻밤을 재워주며 두 차례의 성관계를 맺고 현금과 식권을 건네준 사실은 인정된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최양의 진술 등을 미루어 볼 때 성관계를 맺기 전에 묵시적으로 대가를 약속한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윤 판사는 이와 함께 "문제가 된 식사비와 택시비, 여관비 등의 자금이나 잠자리 제공은 함께 즐기며 지내는 동안 발생한 부대비용이며, 차비 명목의 금품 또한 묵시적으로라도 사전에 성교의 대가로 약속된 것이 아닌 이상 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로 문제삼을 수 없다"며 "성관계의 대가성을 너무 폭넓게 인정하게 되면 사생활과 애정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무죄 판결'에 대해 청소년·여성 단체들은 거센 반발하고 나섰다. 법원이 성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나 판단력이 미약한 청소년들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많고 성인 중심의 시각에서 법을 편협하게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청소년성보호법의 입법 취지가 미성년자의 성보호에 있는 만큼 대가성이라는 개념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성인과 미성년 사이의 사회적·경제적 권력의 차이로 발생하는 성적착취구조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YMCA청소년성교육상담실 이명화 실장은 "청소년 대상 성범죄를 줄이기 위해 범죄자의 신상 공개까지 시도하는 마당에 법원이 성인 중심의 보수적 관점에서 판결을 내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청소년보호위원장을 지낸 강지원 서울고검 검사 역시 "성인 남자들이 가출소녀를 재워주겠다며 저녁에 집으로 불러들인 것은 성관계를 전제로 편의 제공을 했다고 봐야한다"며 "성관계 뒤 차비를 주거나 좀 잘해 줬을 뿐"이란 남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청소년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법을 손질해야 한다

이같은 단체들의 반발과는 달리 법조계 일각에서는 법원의 무죄 판결을 옹호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들은 무엇보다 법원이 죄형법정주의에 충실한 결과 내려진 판결인 만큼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법원은 법률에 정해진 경우에 한해 증거에 의해 확정된 사실관계에 따라서만 처벌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율사들의 논리는 명료하다. 청소년 성매매로 벌을 주려면 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가 있어야 하는데 이는 대가관계를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주 적은 금액이라도 성관계의 대가로 준 것이라면 처벌 대상이 되지만, 아무리 많은 돈이라도 대가라고 인정할 만한 사정이 없다면 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지법의 한 판사는 "현행법으로는 대가성 여부가 처벌 근거가 되다 보니 청소년이 성인에 의해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금품이 오가지 않았다면 법적으로 제재할 수 없다"면서 "이는 이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의견을 나타냈다.
이 때문에 미성년자 의제 강간죄의 기준 연령을 지금의 13세에서 좀더 상향조정해야 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현재 국내법상 13세 미만의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가졌을 경우에는 당사자의 동의나 대가성 여부를 떠나 무조건 처벌받게 돼있지만 13~18세 청소년과의 성관계는 성매매가 인정될 경우에 한해 처벌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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