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동 목사

(시사매거진250호=장경동 칼럼위원) 연애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의 아내인 당시 여자 친구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 사람에게만 여자 친구가 과도하게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그렇게까지 친절하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에요.

당시 저는 전혀 인식하지 못했는데 여자 친구는 여자의 촉으로 자신을 대하는 제 태도가 달라진 것을 느꼈답니다. 제가 자신도 모르게 여자 친구에게 섭섭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여자 친구는 “내 남자 친구도 질투심이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뒤로는 오해 받을 일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 새로운 신자가 등록을 하면 저는 목사로서 당연히 그 집에 심방을 갑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별일도 없이 계속 그 집에만 심방을 간다면 그 자체가 아내에게는 짜증나는 일입니다. 아내는 당연히 화를 냅니다.

그럴 때는 무조건 아내 말을 들어야 합니다. “당신, 그 집에만 너무 많이 가는 것 같아”라고 아내가 말하면 “그래, 알았어. 조심할께”라고 대답해야 옳은 것입니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니까. 내가 손을 잡았어, 뭘 어쨌어?”라고 오히려 짜증스럽게 대답한다면 문제를 키우는 꼴밖에 안 됩니다. 진짜 아무 일도 없었는데 왜 문제가 될까요?

그 일로 인해 상처받는 아내가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살아보면 남편이나 아내의 질투 지수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바람을 피워도 안 들키기만 하면 돼”라고 말하는 배우자가 있다면 상대적으로 질투 지수가 낮은 것입니다. 반면에 “도대체 시선을 왜 그쪽으로 돌리는 거야”라고 지나가는 예쁜 여자에게 고개만 돌려도 뭐라고 하는 배우자의 질투 지수는 상당히 높습니다. 그 질투 수준에 맞춰서 생활하면 부부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가 생기질 않습니다.

흔히 질투는 여자들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밖으로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남자들의 질투 또한 만만 치 않습니다. 여자들처럼 표현하는 질투는 건강합니다. 반면에 남자들처럼 표현하지 않는 질투는 무섭습니다. 그럼 질투가 없으면 좋은 걸까요?

“나는 아내(남편)가 누구를 만나도 괜찮아요.”

이 말은 마음이 넓어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상대방에 대해 이미 포기했다는 뜻입니다. 부부 사이에 건강한 질투는 괜찮습니다. 사랑하면서 질투하는 건 상대방에게도 자극이 되니까요. 하지만 사랑도 하지 않으면서 질투하는 건 스스로를 망치는 겁니다. 자신을 열등감 속으로 밀어 넣으니까요.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그걸 뭐하려고 물어보나요? 다 일다시피 백설 공주가 가장 예뻐요. 그렇지만 백설 공주가 아무리 예뻐도 더 예쁜 사람은 항상 있게 마련이에요. 또한 자신이 아무리 못났어도 더 못난 사람이 있게 마련이에요. 다들 그냥 사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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