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0호=유광남 작가) “제가 선친을 대신하여 감사드립니다. 가문의 모든 어려운 짐을 숙부님에게 안겨 드리고 홀로 떠나셨지만 지하에서도 감격해 마지않으실 겁니다. 숙부님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어린 조카들만 남겨두고 고인(故人)이 된 형의 이야기를 꺼내자 변부인은 돌아서서 눈시울을 적셨다. 이순신은 조카 이분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네가 그리 말해주니 고맙구나. 이 모든 은혜가 성상(聖上)과 서애대감에게 있느니라.”

이분은 더욱 공손하게 말했다.

“저도 제법 성장하여 이제는 세속의 물정을 좀 압니다. 더구나 대국 명나라와 교역, 교류 하면서 근래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듣는 바가 많습니다.”

“오호! 그러냐?”

이회가 부친 이순신의 표정을 살피면서 말을 거들었다.

“분형이 사대(事大)의 통역을 아주 능숙하게 합니다. 요즘은 왜(倭)의 말을 연구한다고 들었습니다.”

“장하다! 앞으로 외교의 교린(交隣)에 있어 가장 중시되어야 할 것이 바로 역학이니라. 계속 정진 하여라.”

“명심하겠습니다. 숙부님! 그래서 올리는 말씀입니다만 요즘 왜관(倭館)의 장사치들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들이 쑤군거리는 대화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놀라운 사실이 많습니다.”

이순신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도 역시 여러 경로를 통해서 듣고 있는 소문이었다. 둘째 이울이 재촉했다.

“놀라운 사실이란 게 뭡니까?”

이분은 잠시 말문을 닫았다. 이순신의 신색이 편치 않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혹시나 노모에게 걱정을 끼칠 것이 두려워서 주의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변부인이 이순신을 대신했다.

“수사께서도 이미 알고 있으시다. 왜인들이 난리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아니냐?”

이분은 다소곳하게 인정했다.

“예...할머님. 그래서 왜관의 활동이 점차 위축되고 있으며 일본국에서는 각 영주들에게 군사 동원령을 내렸으며, 한 편으로는 조총을 대량 생산 하고, 또 초석(硝石)을 구입하느라 경황이 없습니다.”

이완이 눈만 껌벅이며 듣고 있다가 물었다.

“초석이 뭐야?"

이회가 조용히 알려줬다.

“화약(火藥)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재료야.”

이완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화약은 또 뭐고?”

이순신은 가족들에게 전란의 징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부담이었다. 그렇지만 노모 변 부인은 요점(要點)을 비켜가지 않았다.

“수사는 깨달아야 할 것이요. 파격 임용의 배경에는 그에 합당한 책임이 존재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순신은 매우 담담한 태도로 노모의 말을 새겼다.

“예...어머님!”

삶의 궤적은 예고가 없기에 언제나 치열하게 달려들었다. 적어도 이순신의 길은 그랬다. 평범한 일상이 그에게서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보이지 않는 운명(運命)의 계시(啓示)와도 같았다. 결코 편안한 일을 원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는데 언제나 그의 선택은 편안하게 마무리 되지 않았다. 어쩌면 이러한 그의 순탄치 않은 삶은 그를 매일매일 단련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때로 이순신은 자신에게 묻고 대답했다. ‘나는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돌아오는 답은 늘 한결 같았다. ‘난 이순신이다’ 그것이 견디기 어려운 중압감으로 환청(幻聽)이 되어 남해 바다를 뒤덮을 때마다 이순신은 신음했다. 그 아픔으로 이순신은 살아 있었다.
 

제 8장 왕과 신하

장군이 드디어 금일 하옥(下獄)되다.
울도 통제영부터 따라와 한성에 입성(入城)하였다.
장군의 억울함이 비통(悲痛)하여 실신(失身)의 지경이다.
서애대감은 여전히 사려(思慮) 깊게 행동한다.
왕의 신임이 절대적인 사대부(士大夫)의 수장(首長)이
깃털처럼 동요하지는 않으리라.
그래서 초조하다.
그들의 고요함이.

(김충선의 난중일기(亂中日記) 1597년 정유년 3월 4일 갑오)
 

“이순신의 나라가 아니오! 이 나라는......!”

선조는 술잔을 기울이며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고요한 별궁이 한차례 폭풍에 휘감기고 있었다. 왕은 어전회의를 간략히 마친 후 영의정 유성룡만을 단독으로 불러냈다.

“신하된 자로서 어찌 내 명을 거역할 수 있단 말이요?”

“전하......”

“영상의 생각을 들어 보고 싶소. 이순신이 대관절 누굴 믿고 있기에 그리 오만방자한 것인지... 백성들의 신망을 받고 있다하여 과인을 무시하는 것이요?”

“전하......”

“그게 아니라면 영상의 권위가 과인을 능가 한다고 믿는 것인가? 그런 거요?”

“망극한 일이옵니다. 전하!”

조선의 왕 선조는 흥분이 가시지 않고 있었다. 그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핏대를 세웠다.

“이순신을 용서할 수는 없소. 그를 국문(鞠問)할 것이오. 헌부의 주청을 받았으며 원균장군의 장계도 도착했소. 그는 마땅히 죽어야하오. 영상을 독대한 것은 그의 구명(救命)을 경고(警告)하기 위함이요. 절대 그를 위해서 입을 열지 마시오. 난 이순신을 버리려 하지만 그대 영상을 잃기는 싫소.”

“신을 벌하소서. 주상전하에게 불충하여 사직을 청하옵니다.”

“쉬이...지금은 말하지 마시오. 그냥 내 술잔을 받기만 하시오.”

“전하......!”

“허, 입을 열지마라 하였소. 그냥 술잔을 비우면 되는 게요.”

임금이 손수 따라주는 술맛도 역시 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유성룡은 단숨에 잔을 비운 후 오늘 밤은 취하도록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지금의 혼란을 잊을 수만 있다 면이야. 선조는 빈 잔에 다시 술을 채웠다.

“내리 석 잔은 마셔야 하오. 이것은 벌주요. 이순신을 천거하여 임진년에 공을 세우게 한 죄! 과인을 번민에 빠뜨린 죄! 그리하여 명장을 죽일 수밖에 없는 고통을 내게 안겨준 죄!”

“아...마마!”

옥으로 만들어진 조그마한 술잔에 술이 철철 넘쳐흐른다. 왕의 고뇌와 감출 수 없는 혼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불현듯 왕에 대한 애잔함이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그랬을 것이다. 왕 선조는 왕실을 보존하기 위한 강박관념(强迫觀念)에 사로잡혀 있었다. 조선의 13대 왕 명종이 후사가 없자 아우인 덕흥대원군의 셋째 아들 하성군 즉 선조를 보위에 올렸다. 따라서 조선의 14대 왕에 오른 선조는 왕위의 세습에 있어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없었기에 더욱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지도 몰랐다.

“그대의 눈에도 과인이 무능하오?”

“그럴 리가 있사옵니까.”

“아니요. 영상의 지혜로운 통찰력을 모르는 바가 아니거늘 어찌 빈 말을 한단 말이요. 과인은 대감의 솔직한 심정을 듣고 싶소.”

유성룡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석 잔의 술이 피로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어찌 잊을 수 있사옵니까? 전대의 명종대왕께서 전하에게 보위를 물려주신 까닭은 당시 왕실의 그 어느 대군들보다도 총명하시고 성덕이 충만하시기에 보위를 물려주신 것이 아니 옵니까.”

“그랬지! 그 때는 그랬지.”

“황공하옵니다. 전하, 비록 난세이기는 하지만 나라와 백성을 위한 임금으로서의 덕목(德目)을 무리 없이 수행 하시었나이다. 다만......”

“다만...? 무엇인가?”

선조의 목마른 다급함이 튀어나왔다. 유성룡은 더욱 신중해졌다. 자칫 여기서 왕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어떤 환란이 발생할지 모를 일이었다. 왕의 싸늘한 시선이 유성룡의 대답을 다구치고 있었다.

“조선은 평화로운 나라이옵니다. 어진 백성에 성군의 나라입니다. 단지 불량한 이웃을 두고 있기에 오늘의 시련을 당하고 있는 것이옵니다.”

“불량한 이웃이라?”

“바다건너 왜적들은 오래 전부터 조선의 문화와 토양을 탐해 왔으며 수시로 우리 바다를 침범했습니다. 대륙으로는 오랑캐들이 끊임없이 도발을 일삼고 있는 것이 부담일 뿐이옵니다.”

“하하핫, 와하하하--”

선조가 통쾌하게 웃었다. 웃으면서 그는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조선의 왕이 웃으면서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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