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급류속에 대립과 갈등에서 화해와 협력 일궈내
2003년은 감격과 변화 속에 숨가쁘게 흘러간 한 해였다. 노사모, SOFA 개정운동에 나선 촛불 시위대는 우리 사회가 풀뿌리에서부터 변하고 있음을 예고했다. 정치 통일 외교분야에서 그 어느때보다 변화의 급류를 탔던 해다. 가장 큰 변화는 남북간 분단 50년 벽을 뛰어넘어 대립과 갈등에서 화해와 협력을 이뤄낸 것이다. 금년 한해 독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던 국내 정치계 화제의 뉴스를 돌이켜본다. /편집자주

노무현 국민참여·통합시대 개막
12·19 대통령 선거에서 '새로운 대한민국'의 깃발을 내걸었던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당선됨에 따라 노무현 정부가 2월에 들어섰다. 민주당 당적으로 당선한 노무현 대통령은 단순히 민주당이 재집권에 성공했다는 것 이상의 다각적인 의미를 갖는다.
우선 그의 당선은 우리 사회에 도도한 흐름을 형성해온 변화 욕구가 '국민 참여'란 형태로 일거에 폭발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이나 월드컵 때의 붉은 악마, 최근 반미 촛불시위 등을 관류했던 낡은 질서에 대한 거부, 자발적이며 창의적인 열정 등이 대선 국면을 맞아 '노무현'이라는 상징을 통해 분출된 측면이 짙은 것이다.
선거전 개막 전까지 국회와 지방자치단체를 장악한 것은 물론 자금과 조직 등의 우위로 전통적 의미의 '대세'를 장악했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뜻밖에 패퇴한 점도 이런 변화에 둔감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반면에 노 후보는 국민경선과 국민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 성공에 이어, 국민 모금과 자원봉사에 의존한다는 새로운 선거개념을 제시해 승리를 거머쥐었다. 노 후보가 대변했던 변화의 욕구를 정치적으로 해석한다면 참여 민주주의의 만개 가능성을 예고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참여 민주주의는 김대중 대통령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라는 국정지표로 제시한 바 있으나 대체로 말에 그치고 구체화되진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당선 과정에서부터 철저히 '국민 참여'에 의존한 노대통령은 앞으로 국정 운영에서도 일부 이해관계 집단이나 기득권층 위주가 아닌 참여와 자율의 시대를 전면적으로 열어나갈 것이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한 우리 사회를 짓눌러왔던 냉전적·수구적 이데올로기의 족쇄를 끊고 다양한 이념이 공존하는 '관용의 시대'를 예고한다.
노대통령은 민주당 후보가 되기 이전부터 신문시장의 4분의 3 가량을 장악하고 이념시장의 지배적 공급자 노릇을 해온 몇몇 큰 신문으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왔다. 이에 따라 그는 주변에서 끊임없이 해당 신문들과 타협하거나 노선을 수정하라는 종용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언론은 언론의 길을, 정치는 정치의 길을 가면 그만"이라며 자신의 개혁지향적 정책노선을 고수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대통령의 지위를 토대로 특정 이념만을 국정에 관철하려 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와 관련해 노대통령은 "내가 추구하는 것은 보통 사람들의 공정하게 경쟁할 기회를 가로막는 특권의 철폐일 뿐"이라고 주장해 왔으며, 실제로 그는 이념적 도그마보다는 실용주의적 자세를 보여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노 대통령은 극심한 지역갈등을 해소하고 국민통합을 강조한다. 영남 출신인 그가 전통적으로 호남을 주요 기반으로 삼았던 정당의 후보로 출마해 영남권에서 상당한 득표를 했으며, 실제 선거전 과정에서 지역 대결보다는 세대·정책대결이 부각된 점도 '화합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부풀리는 요인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앞길에는 만만치 않은 난관이 놓여 있다.
무엇보다 대선에선 패배했으나 여전히 국회 과반수 의석을 유지하고 있는 거대 야당과의 관계를 풀어야 할 숙제가 가로놓여 있다. 극단적인 여소야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국정과제들을 제대로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어쨌든 노무현 대통령 시대는 참여민주주의 확대와 국민통합이라는 시대적 과제와 함께, 저항세력들과의 만만치 않은 긴장 요인을 동시에 안고 개막되는 셈이다.

뜨는 정치인 지는 정치인

2003년 정치판에서는 '뜨는 자'와 '지는 자'가 극명하게 갈렸다. 절묘한 시기와 개인적 역량을 바탕으로 낙양의 지가를 올린 정치인이 있는 반면 쇠락의 길을 걷는 이도 속출했다.
◇부(浮)=우리당 정동영 최고위원은 민주당 시절 당정쇄신의 바람을 타고 여권 2인자 권노갑씨를 최고위원에서 퇴진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민주당내 개혁 소장파의 리더로 부상하며 세밑 정국의 뜨는 별로 기록됐다. 대국민 인지도도 대폭 상승해 차기 또는 차차기 유력 대권 주자로 거명되기 시작했다.
우리당 김근태 역시 민주당시절 최고위원 경선 3등의 여세를 몰아 집권당 대표를 거머쥘기회를 엿보고 있다. 당내에서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그는 '기회이자 위기'가 될 수 있는 2004년을 용꿈으로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을 성공적으로 이끌 경우 유력 대권 후보로 자리 잡을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가능성도 적지 않다.
민주당 박상천 대표와 한화갑 위원은 권노갑 전위원의 2선 퇴진 파동을 거쳐 동교동 수장으로 입지를 구축했다. 김영환 대변인도 연말 정국에서 중책을 맡아 뜨는 대열에 합류했다.
한나라당에서는 최병렬 총재가 부동의 스타였다. 총선에서 원내 제1당을 달성했고 압도적 신임을 바탕으로 당 내외로 '대안 부재론'을 광범위하게 확산시켜나가고 있다. 남북관계의 획기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하반기 정국을 주도, 야당 지도자로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쌓았다는 평가다. 박근혜 부총재의 경우 고(故)박정희(朴正熙)전대통령에 대한 영남권 정서를 등에 업고 차기 대권 후보로까지 등장해 있다. 이밖에도 386 세대를 비롯한 여야의 소장파들이 대거 등장했다. 특히 이재정 정범구 이호웅 김성호 의원 등은 당정쇄신을 대통령에게 건의,일정 수준 이상을 관철시킴으로써 몸값을 올렸다.
◇침(沈)=상대적으로 야권에 사상자가 많았다. 한나라당은 한 세대를 풍미했던 거목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일부가 재기를 노리고 있지만 만만한 상황은 아니다. 민주당 권노갑 전최고위원도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한 해를 보냈다. 자민련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도 유쾌하지 못했다. 총선 17석 획득으로 원내 교섭 단체를 구성하지 못해 군소정당으로 전락한데다 정치적 파괴력도 현저하게 떨어진 상태다. 다만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민주당이 합당론 등으로 열렬하게 구애를 하고 있고, 한나라당도 자민련을 계륵(鷄肋)처럼 여기고 있는 정도가 그나마 위안이다.

바람잘 날 없는 舌禍

2003년 한해동안 정치권은 정치인들의 설화(舌禍)로 바람잘 날 없었다. 4· 13 총선이 있기도 했지만 총선 결과 어느 당도 국회 의석 과반수를 점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정쟁이 격화됐기 때문이다.
◇정쟁=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이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대통령과 골프를 같이 친 사실을 과시하며 호가호위하고 있다면서 "집권 초에 사설(私設) 부통령이 탄생했다."면서 대통령을 공격했다 반발을 샀다.
김문수 한나라당 의원은 노 후보의 재산은닉 의혹뿐만 아니라 노건평씨 소유 대지의 형질변경 의혹과 권양숙 여사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제기, 민주당으로부터 '허위사실 유포죄'(선거법 위반)로 검찰에 고발당했다. 작년 대선 당시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폭로전이 치열하게 전개됐는데 이로 인해 고소·고발건수도 수십건에 달했다.
대선이 끝난 직후 민주당은 "대선기간 동안 한나라당에 제기한 고소고발사건들을 일괄 취하하겠다"고 밝혔지만 한나라당은 "국민적 의혹 사안들에 대해서는 시시비비를 가리겠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4강·다자외교 활동 강화
올해 우리 외교는 적잖은 결실을 봤다. 노무현 대통령은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펼치면서 유엔을 비롯한 다자외교무대에서 남북한 상생·탈냉전 외교를 성사시켰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한·미 한·중 등 양자외교에서는 별 성과가 없었다. 중국과의 주한미군지위협정(SOFA)개정 협상, 용산미군기지 이전문제 등 주요 현안들은 해를 넘기게 됐다.
◇남북관련 주변4강외교=미국과 중국, 일본 등 4강과의 관계에서 최소한 남북문제와 관련해서는 우리가 주도적 역할을 했다. 4강외교도 활발히 전개됐다. 노대통령은 빌 클린턴 전미국 대통령 회담을 갖는 등 빈번한 접촉을 가졌으며 한반도 안정이 국제평화에 기여한다는 공감대를 이끌어 냈다.
이같은 노력은 한반도의 변화에 대한 국제적인 지지를 이끌어내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노대통령의 방미 행보는 파격적이었으며 적잖은 충격을 안겨줬다. 이에 대해 보수단체 등은 이례적으로 환영의 박수를 쳤지만, 그동안 노대통령의 당당한 외교노선에 공감한 지지자들은 쓴소리부터 내뱉으며 지지철회를 선언하기도 했다.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이 증대될 경우 한?미 양국이 북한에 대한 '추가적 조치'를 검토하고자 한 공동 성명 내용 역시 논란의 대상이 됐다.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 군사공격을 포함한 모든 선택 방안을 열어놓는 것은 미국의 오랜 정책이며, 한·미 정상이 내놓은 공동성명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구두선에 그칠 수 있는 '북핵 평화해결 원칙'에 집착, 미국의 입장을 모두 추인해주는 외교적 실수를 저질렀다는 비판의 목소리 또한 높다. 과연 철저한 한·미 공조가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종국에는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우리 정부가 한·미 동맹 유지와 남북관계 진척이라는 모순된 현상을 보는 원칙을 분명히 하고 이를 그대로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라크 추가파병 결정 논란

이라크 파병에 대한 찬반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파병에 찬성하는 쪽에서도 나름대로의 논리가 있고, 반대하는 쪽에서도 그 이유가 분명하다. 만약 어느 한쪽의 이유나 명분이 분명하지 않다고 한다면 아마도 이런 논란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울러 이에 따른 이해의 득과 실을 따져야 할 것이고, 이것이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판단과 결정을 신중히 해야한다. 노대통령 지지층에선 파병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지만 유엔의 깃발 아래 파병을 하는 것인 만큼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있게 됐다. 노대통령은 이와 함께 자신의 재신임 문제로 국론이 분열된 상황에서 과감히 이라크 파병 결정을 내림으로써 국면의 반전을 꽤했을 수도 있다.
파병을 조기 결정하는 쪽으로 급선회한 까닭에는 이라크 파병 결정 지연에 따른 워싱턴의 '냉기류'를 전해들은 것도 배경이 될 수 있다. 더 이상 여론의 눈치를 보다가는 파병결정의 타이밍을 놓칠 것이라는 우려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 추가 파병에 대한 일체의 추론을 하지 말라는 함구령을 내린 가운데 청와대의 일부 참모들이 전투병 파병 불가를 주장하거나, 전투병을 파병하면 사퇴할 수도 있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기에 통합신당마저 강도 높은 비판과 징계를 요구하고 나서 여권 내 불협화음이 전면으로 부상하고 있다.
파병 병력으로는 스스로 부대를 방호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종합부대를 편성하는 방안이 유력시된다. 현지 안전문제와 효율적인 작전 수행을 위해 비용이 들더라도 완전히 편재된 1개 사단을 보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폴란드형 사단의 경우 다국적부대로 의사소통에 한계가 있고 지휘 통제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어 한국군 독자 사단을 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내달까지 구성이 완료되는 파병 부대는 12월부터 2개월간 현지 적응훈련을 받을 것으로 보이며 특히 치안유지 임무를 맡게 되는 전투병의 경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대테러 훈련을 집중적으로 받을것으로 보인다.
한국인이 추가 파병될 이라크 내 주둔지로 바그다드 북쪽 400km지점의 무술이 거론되고 있다. 후세인 치하 핵심인물들이 대거 은둔한 곳으로 전후 이라크에서 두 번째로 미군 사망자가 많이 발생한 곳이다. 그러나 10월 1일의 시위 이후 모술은 비교적 차분한 모습이며 한국군이 교전을 치를 상황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인들은 미군과 영국군을 점령군이라고 인식하지만 한국은 좋게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테러조직들은 미국 영국군 이외의 외국군에 대해서도 공격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라크 인들의 민심변화에 따라 외국 주둔이 감당해야 할 위험도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현명한 판단이 정말 필요한 때다.

대북송금특검

'대북송금 의혹사건'에서 특검은 북한에 송금된 돈은 모두 5억달러이며, 현대 쪽이 4억달러, 정부가 1억달러를 지급하기로 정상회담 접촉과정에서 북한에 약속했다고 밝혔다. 관심이 쏠렸던 대북송금의 성격과 관련해 특검은 "현대그룹이 지급한 4억달러는 대북 경제협력 사업의 선투자금 성격을, 정부가 부담하기로 한 1억달러는 정책적 차원의 대북 지원금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검은 "다만, 돈이 정상회담 전에 모두 송금되고, 송금과정에 정부가 적극 개입하였으며, 국민의 이해를 구하지 아니하고 비밀리에 송금함으로써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아니하였던 관계로 정상회담과의 연관성을 부인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성격을 규정했다.
특검은 박지원 전 문화부 장관이 정부가 부담하기로 한 대북 지원금 1억달러를 정몽헌 회장에게 대신 지급해 줄 것을 요청했고, 대신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에 4천억원을 대출해 주도록 압력을 행사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대북송금을 둘러싸고 그동안 제기됐던 주요 의문들, 곧 대북송금 규모와 송금 경로, 정상회담과의 연관성, 현대상선에 대한 대출 외압 등은 특검 차원에서 대체로 진상이 드러났다고 본다. 특검의 수사 내용은 앞으로 사법부 판결에 따라 진위가 가려질 터이다. 특히 정부가 부담하기로 한 1억달러의 성격을 둘러싸고 치열한 법리 다툼이 예상된다.
문제는 당시 상황에서 투명성도 유지하고 합법적으로 국민을 설득하는 게 과연 가능했겠느냐는 점이다. 자칫 여야 간 정쟁에 휩싸이면서 정상회담 개최는커녕 남북관계를 오히려 후퇴시키는 결과가 초래되지 않았겠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번 특검 수사로 대북송금에 관한 진실은 밝혀야 한다는 요구는 어느 정도 충족되었지만, 그 대신 우여곡절을 겪으며 쌓아온 남북관계는 크게 손상됐다. 애초 특검법이 공포될 때 우려했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제 북한 핵 위기로 한반도 정세가 어느 때보다 위험하고 엄혹한 상황에서, 이를 잘 추슬러 초가삼간을 태우지 않도록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갈등 재연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시행을 둘러싼 해묵은 갈등이 급부상했던 한해다. 2004학년도 대학입시에서 NEIS 체제로 입시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요구한 데 이어 서울대와 연세대, 서강대 등 서울 시내 14개 대학도 최근 2004학년도 정시모집부터 학생부 전산자료를 NEIS 형태로만 접수받기로 결정했다.
그간 NEIS 중단을 요구해 온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대학들의 이런 방침에 대해 '월권행위'라며 법적 대응까지 고려하는 등 NEIS 시행에 강하게 반발. 물론 여기에는 NEIS를 강행하기 위해 입시일정 차질을 과대 포장하는 교육부의 묵시적 방조가 한 몫하고 있다는 게 전교조의 분석이었다. 이에 앞서 전교조 서울지부 소속 교사 5300여명은 NEIS 입력 거부를 선언한 바 있다.
올해 3월부터 NEIS 시행을 둘러싸고 야기된 교육부와 전교조 등 시민·사회단체간 갈등은 지난 7월 국무총리 산하 교육정보화위원회(위원장 이세중)가 설립돼 NEIS를 백지상태에서 전면 재검토해 시행 여부를 다시 결정하기로 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교육부와 전교조는 교육정보화위원회를 통해 총 27개 NEIS 입력 항목중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침해 소지 가능성을 제기한 교무·학사, 보건, 입학·진학 등 3개 기본항목을 NEIS에 포함시킬지에 대해 결론을 미룬 채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200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고 다음 달부터 본격화되는 각 대학별 입학 전형에 앞서 다시 부활한NEIS 찬반 논쟁에 교육부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요청이라며 NEIS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교육부는 전국 고교의 96%가 이미 NEIS를 가동중이라 큰 혼란은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전교조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는 NEIS의 인권 침해 요소 및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에 대한 근본적 대안 없이는 NEIS 강행을 묵과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교조 등 시민사회 단체가 NEIS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개별 학교의 정보만을 담고 있는 학교종합정보관리시스템(CS)과 달리 NEIS가 200여 가지가 넘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의 축적된 신상정보를 본인의 동의 없이 통합·관리함으로써 개인정보 유출과 인권 침해의 우려가 높다는 데 있다.
정보화시스템은 이미 우리 사회 모든 부문에서 구축되고 있고 동시에 정보 유출이나 그로 인한 인권침해 문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교육부와 전교조는 NEIS 문제가 이해 관계의 문제가 아닌 학생들의 문제임을 깊이 인식하고 인권침해 부분은 기술적인 해결을 강구하면서 풀어나가야 한다는 게 교육 및 IT분야 전문가들의 일관된 지적이다. 이는 이 프로그램의 수혜자가 돼야 할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피해를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교육부와 전교조가 갈등으로 내달리는 동시에 대학입학을 준비하는 일선 고교의 시름만 깊어 가는 것도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양길승 몰카 '향응' 파문

양길승(梁吉承)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향응 사건은 '청와대 윤리 규정 위반'이라는 본질에서 벗어난 방향으로 전개됐다. 이 사건은 '누가 몰카를 찍었느냐'는 비본질적인 측면이 더 조명 받으면서 비판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양길승 실장의 향응 사건이 처음 알려지게 된 것은 지난 7월 31일 한국일보가 보도하면서부터였다. 이 날 오후까지만 해도 사건을 대하는 청와대의 자세는 '대통령을 곁에서 보좌하는 공직자의 도덕적 해이'라는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같은 날 노 대통령은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전체 사실을 민정수석실에서 재조사해 문제가 있다면 8월 말 인사 때 반영하라"고 말했다. 양 실장도 8월 1일 사표를 제출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보도됐다.
그러나 이 같은 분위기는 같은 날 저녁 8시 서울방송(SBS)이 양길승 실장이 향응 받는 과정을 몰래 비디오 카메라로 찍은 필름, 이른바 '몰래 카메라(몰카)'를 방영하면서 순식간에 바뀌었다. 청와대와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여권은 '함정'이니 '기획 폭로'니 '음모'니 하는 사건의 본질을 희석하는 시각들로 뒤덮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당시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가 "이 사건이 단순한 향응 접대 차원이 아니라 청와대 핵심인사의 행적을 몰래 카메라로 촬영해 언론사에 제공한 배경을 두고 음모론이 불거지는 등 사건이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말한 데서도 알 수 있다. 그 결과는 몰카가 공개되기 전까지만 해도 시간 문제로만 보였던 양길승 실장의 사표 수리가 유보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 실장이 접대 받은 향응 규모는 청와대가 지난 5월에 제정한 '3만원 이상의 향응을 받아선 안된다'는 윤리 규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양 실장의 문제는 단지 윤리 규정을 위반한 데서 그치지 않는다. 당시 양 실장이 청주를 방문하던 날은 공교롭게도 철도 파업으로 인해 정부는 청와대를 중심으로 비상 근무에 돌입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제1부속실장이 대통령에게 보고도 않고 지방에 내려가 향응을 제공 받았다는 것은 공직자로서는 있을 수 없는 도덕적 해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여기에 이번 사건이 언론에 공개되기 전에 이루어진 청와대 민정1비서관실의 처리 과정과 문희상 비서실장의 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다. 민정1비서관실은 지난 7월 10일 양 실장의 청주 방문 사실을 처음 보도한 청주 지역의 인터넷 매체 보도를 계기로 조사에 착수한 이후 양 실장으로부터 향응을 제공 받았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그러나 민정1비서관실은 향응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은 채 구두 경고하는 것으로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고 문 실장도 이를 통보 받고도 징계위원회를 소집하지 않은 것은 물론 대통령에게 보고도 하지 않았다. 기강이 엄정해야 할 청와대 안에서 자기편끼리 감싸주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더욱 비판 받는 것은 노 대통령이 빈번한 측근들의 도덕적 해이와 기강 해이를 탓하기보다는 모든 것이 언론 때문이라는 듯 국정 난맥의 원인을 언론으로 몰아붙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때문에 노 대통령이 민주당의 신당 창당마저 어려워지자 내년 총선을 돌파할 카드로 '언론과의 전쟁'을 선택했다는 분석마저 제기됐다

부안 핵 폐기장 건설논란

"전북 부안군이 7월14일 전국에서 최초로 '원전 수거물 관리시설'을 위도에 설치하겠다는 유치신청서를 공식 제출했다. 부안군의 유치신청서 제출로 1986년부터 과거 4대 정권 17년 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원전 수거물 관리시설 부지선정 사업이 마침내 해결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부안군의 원전 수거물 관리시설 유치신청으로 정부는 한껏 고무됐었다. 산업자원부는 지난 7월14일 보도자료를 내어 안면도·굴업도 등 두 차례 부지지정 실패 이후 장기간 표류해온 원전 수거물 관리시설 부지선정 작업이 지자체 자율유치 신청으로 마무리될 경우 첨예한 현안을 '참여와 자치'의 원칙으로 해소하는 참여정부의 한층 성숙된 국정역량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부안군 현지에서 환경단체와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점차 거세지는 사이, 들뜬 정부는 더욱 발빠르게 움직였고, 정부는 7월18일 "2조1천억원대의 부안군 지원사업을 신속히 시행하기 위해 특별법을 제정할 예정이며, 위도를 포함해 사실상 내륙의 부안 주민에게도 혜택이 가는 종합사업을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장밋빛 전망과는 달리 "섣부른 결론을 내리긴 아직 이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오히려 "정작 문제는 지금부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부지 선정을 마친 뒤 지역 주민의 거센 반발로 물거품이 됐던 두 차례의 쓰라린 경험 때문이다. 한 전문가는 "방폐장 건설 문제는 원자력 발전을 계속할지 여부와 함께 국가 전력 공급체계 전반에 대한 논쟁과 긴밀히 맞물려 있다. 이들 문제에 대한 정부 차원의 일관된 정책 수립 없이는 방폐장 문제도 쉽게 해결될 리 없다"고 지적한다.
방폐장 건설 문제가 쉽게 풀려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보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방폐장 건설의 시급성을 강조하며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내놓은 폐기물 저장시설 용량 포화론에 대한 비판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정부는 방폐장 부지 선정에 나서기 앞서, 2006년 월성원전을 시작으로 울진(2007년), 영광·고리(2008년) 원전의 사용후 핵연료 저장용량이 포화상태에 들어간다고 밝힌 바 있다. "폐기물이 넘쳐나기 전에 처분장을 짓지 못하면 발전소 가동을 멈춰야 하고, 이럴 경우 전력공급에 심각한 타격이 올 것"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와는 전혀 다른 주장이 환경단체와 원자력 학계 일각에서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세계적인 핵 군축·비확산 전문지 <사이언스&글로벌 시큐리티>에 실린 '한국의 사용후 핵연료 추가저장 대안'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보면 △원전 호기간 이동(기존 원자로에서 나온 사용후 핵연료를 나중에 건설된 원자로의 저장시설로 옮기는 것) △밀집저장 등의 방법을 통해 적어도 2027~2030년까지는 사용후 핵연료를 기존 원전 부지 내에 저장할 수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중·저준위 폐기물 영구처리시설과 사용후 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을 같은 부지에 건설한다는 정부의 계획 역시 논란을 부르고 있다. 한 원자력 전문가는 "중·저준위 폐기물과 사용후 핵연료는 방사능 차이가 수백만배에 달한다. 방사능 붕괴로 안정 물질로 변화돼가는 시간이 수백년과 수십만년 차이가 난다. 때문에 전혀 다른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를 한곳에서 보관·처리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원자력계 내부에서조차 이에 대한 논란이 비등했다. 업계 전문지인 <전기신문>은 지난해 8월17일치 기사에서 "방폐장에 중·저준위 폐기물 영구처분장과 사용후 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을 같이 설치하는 현행 정부 정책을 변경해 방폐장 내에는 중저준위 영구 처분장만 설치하고 사용후 핵연료는 그대로 원전 부지 내에 저장하자는 것으로, 원자력 학계를 중심으로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고 전했다.
한 원자력 전문가는 "사용후 핵연료는 현 원전 부지에 그대로 저장하는 게 최선이다. 아직까지 사용후 핵연료의 영구 저장과 관련된 정부의 정책도, 신뢰할 만한 기술도 없는 상태다. 저장 공간도 부족하지 않고, 폐기물을 관리시설로 옮기는 과정에서 위험도만 높이는데 굳이 사용후 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을 지으려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산업자원부와 한수원쪽은 "일부에서 그런 주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사용후 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을 동시에 추진하다가는 중·저준위 폐기물 영구처리시설마저 짓지 못하게 될 것을 우려한 탓이다. 그러나 이제 자율유치가 됐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여기에 지난해 9월 국회 국정감사 때부터 지적돼온 원전사후처리충당금 문제도 새롭게 논란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한수원과 원자력계가 중·저준위 폐기물 영구처분시설과 사용후 핵연료 중간저장시설 건설을 서두르는 배경에는 현실성 없이 낮게 책정된 사후처리충당금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주장이 환경단체와 원자력계 일각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원전사후처리충당금은 원자력발전소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방사성 폐기물 처분 비용과 운영이 끝난 뒤 발전소 해체 및 철거 비용 마련을 위해 발전사업자인 한수원이 적립해야 하는 돈이다. 원자력 발전 원가에 반영돼 전기요금으로 조성된 사후처리충당금은 지난 3월 말 현재 약 4조5천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한수원은 이를 원전 건설 등 차입금으로 사용해 현재 실제 잔고는 남아 있지 않다.
그렇다면 사후처리충당금과 방폐장 건설의 '함수관계'는 대체 뭘까 한 원자력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한수원은 그동안 원전사후처리충당금을 현실성 없이 낮게 책정해왔다. 사후처리충당금이 커지면 전기요금은 높아지게 마련이고, 결국 원자력 발전의 채산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폐기물은 쌓여가고 폐기물 처분 비용은 모자란 상황에 빠졌다. 더구나 그나마 모아놓은 돈마저 모두 신규 원전 건설에 썼다." 이 전문가는 "한수원 입장에선 더 늦기 전에 폐기장을 건설해 원전 부지에서 관리하던 폐기물을 한곳으로 모을 필요가 있다. 이미 양산된 폐기물을 방폐장으로 옮기면서, 폐기물 관리·처분 책임을 새롭게 만들어질 방폐장 관리·운영 주체에게 염가로 떠넘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방폐장 운영을 맡을 '원전수거물 관리센터'를 한수원 자회사로 할 것인지, 별도의 독립법인으로 할 것인지 등 구체적인 부분에 대한 정책도 아직까지 결정된 바 없다.
정부의 계획대로 방폐장이 부안군 위도에 들어설 수 있을지 여부는 아직까지 확신할 수 없다. 부지 선정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 각종 지역발전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폐기물처분장이 건설된 뒤 누가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확정된 것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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