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김민수 기자] 이 책의 저자 니알 키시타이니는 전형적인 전문 경제학자와는 다소 다른 길을 갔다. 그는 옥스퍼드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받은 후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고 영국 은행, 유엔, 세계은행 등 다양한 경제 기관 및 단체에서 근무했다. 그 경험을 통해 경제학이 현실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어떤 한계가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경제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싹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며 경제학이 현실의 문제를 더 적절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경제학의 거장들 뿐 아니라 지금은 잊혔거나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다양한 사상가들의 생각도 경청해야 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심지어 일반적으로는 경제학에 포함시키지 않는 과거의 사상가들까지.

이렇게 현실의 문제를 바탕으로 오늘날 곱씹어볼 만한 경제 사상들을 폭넓게 살피는 것도 독특한데, 저자에게는 한 가지 재능이 더 있었다. 맛깔스런 글솜씨다. 이 솜씨를 십분 발휘해 그는 경제학을 쉽게 소개하는 여러 책을 썼고 마침내 예일대학교출판부 눈에 들었다.

예일대학교출판부는 새로운 시대를 위한 쉬우면서도 깊이 있는 교양서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짧은 역사A Little History’ 시리즈를 야심차게 내놓았다. 저자는 각 분야의 저명한 학자들을 섭외했다. 세계사는 한국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에른스트 곰브리치가 썼고, 철학은 나이젤 워버튼이 맡았다. 언어와 인류학은 세계적인 석학인 데이비드 크리스탈과 브라이언 페이건이 집필했다. 그런데 어느 분야보다 저자군이 넓을 경제학의 역사를 빛나는 경제학적 성취를 이룬 학자도 아니고, 대중에게 잘 알려진 저자도 아닌 니알 키시타이니에게 맡겼다. 그만큼 그를 높이 산 것이다.

경제학의 권위가 무너진 시대, 해결해야 할 경제 문제가 더 다양해지고 복잡해진 시대. 경제학은 과연 필요한가? 어떻게 경제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이 책은 경제학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그러나 경제학을 공부하는 방식은 바뀌어야 한다고 답한다.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과거 경제학자들의 통찰은 여전히 살펴볼 가치가 있다. 그러나 경제학의 역사를 스미스에서 주류 경제학까지 좁고 단조롭게 가르치던 관행은 이제 넘어서야 한다. 경제 문제도, 경제학도 그보다 깊고 넓기 때문이다.

니알 키시타이니는 간결하면서도 유머러스한 필체로 독자들을 다채로운 경제학의 세계로 초대한다. 스미스, 마르크스, 케인스와 같은 거장에서부터 아서 루이스나 윌리엄 비크리 같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경제학자까지, 수요, 공급, 성장 같은 전통적인 주제에서부터 빈곤, 불평등, 페미니즘 같이 최근 주목받기 시작한 주제까지 폭넓게 다룬다. 독자는 저자가 차려 놓은 40첩 밥상을 한입씩 맛보는 과정에서 지금의 경제 문제를 생각할 풍부한 자원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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