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접대’가 기업의 접대문화를 바꾼다
건전한 접대문화의 확산과 문화산업 활성화 등 긍정적 기대 높아
기업의 접대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술과 골프 대신 전시회나 공연 관람 등의 ‘문화접대’가 기업들 사이에서 새로운 접대방식의 하나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이러한 움직임은 지난해 말 정부가 발표한 ‘서비스 경쟁력 강화 종합대책’에 기업의 문화접대비 제도가 포함되면서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음주·유흥 등 향응으로 대표되던 기업의 접대문화가 보다 건전한 방향으로 자리 잡길 바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말 대학로의 한 공연장에 다국적 제약사에서 초대한 기자들이 단체로 관람을 즐겼다. 새로운 사장 취임과 송년모임을 겸한 자리에 뮤지컬 공연 단체관람을 기획한 것. 지금까지 무수히 겪어온 형식적인 인사치례와는 다른, 준비된 초대가 신선한 느낌으로 업체를 인식케 한 자리였다. 일부 고급예술에만 한정돼 있던 기업의 문화접대가 이제 폭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문화접대’ 확산, 사회적 관심이 우선
그동안 고급 룸살롱이나 골프장 등지에서 이뤄지던 기업의 접대문화가 이렇듯 문화의 광장에 진입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향응의 대표주자로 인식되던 접대라는 달갑지 않은 이름이 문화적으로 거듭나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전에 기업의 문화접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기업들은 사회 기여와 브랜드 제고 차원에서 각종 공연을 후원하는 등 문화예술계에 지원하고 있었다. 여기에 지난 2004년, 국세청이 문화·예술 관람권 등을 통한 문화접대는 현물접대의 하나로 여겨 ‘접대비 총액 50만원 이상 실명제’에서 예외로 함으로써 클래식, 오페라, 발레 등 고급예술에는 기업의 문화접대가 끊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간의 문화접대와 관련된 기업 활동은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이상의 업체들에서만 부분적으로 이루어져 왔을 뿐이다.
이에 대해 기업체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소비·향락성 접대가 실속 있는 문화 접대로 바뀌길 기대하면서도, 접대 활동이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상, 받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며 “룸살롱과 골프장 등에서의 접대가 아직은 효과적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문화접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인식 확대가 먼저 선행돼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또 일부에서는 문화접대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이러한 기업들의 지적을 반영하듯 앞으로 문화접대비를 손비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문화산업 활성화 위해 문화접대비제 도입
지난해 12월15일, 정부는 전경련, 무역협회 등 주요 경제단체, 지자체 및 소관부처와 함께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정부가 발표한 종합대책에 따르면, 향후 서비스산업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이는 문화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문화예술분야에 대한 수요기반 확대가 필요하므로 기업의 문화비 지출에 대한 인센티브 측면에서 문화접대비 제도를 도입한다는 것. 정부가 밝힌 문화접대비 도입 이유는 대부분의 문화예술단체가 비영리단체로서 세부담이 크지 않고 문화예술시장 규모도 크지 않아 결손법인이 많은 상황에서 이들 단체에 대한 직접적인 조세감면보다는 문화예술단체가 활발한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수요를 진작시킬 수 있는 기업의 지출에 대해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문화접대비 제도란, 연극·오페라·전시회·운동경기 등 공연관람권으로 지출하는 문화관련 접대비가 일정기준(총 접대비의 5%)을 초가 하는 경우, 추가로 접대비 한도액의 10%까지 손비 인정하는 내용이다. 즉, 문화접대비를 추가로 손비 인정받기 위해서는 총 접대비 지출액의 5% 이상을 문화비로 사용해야 한다. 문화접대비가 기준금액(총 접대비의 5%)에 미달할 경우 한도가 늘어나지 않는다.

기업의 문화접대비 추가로 손비 인정
일례로 A기업이 연간 총 접대비로 1억원, 문화접대비에 1,000만원을 사용했고, 접대비 한도는 8,000만원이라고 하면, 이 기업은 문화접대비를 10% 사용했기 때문에 문화접대비가 적용된다. 문화접대비 중 기준금액 초과분이 500만원이기 때문에 이 기업의 접대비 손비인정금액은 8,500만원(8,000만원+500만원)이 된다.
총 접대비가 2억원, 문화접대비 3,000만원, 기존 손비인정 접대비 한도액이 1억5,000만원인 B기업의 경우, 총 접대비의 15%를 문화접대비로 사용했으므로 ‘문화접대비’ 규정을 적용받을 수 있으며, 문화접대비 중 전체 접대비의 5%를 초과하는 금액인 2,000만원 중 1,500만원(기존 손비인정 접대비 한도액의 10%)이 추가 손비로 인정된다. 그 결과 이 기업의 손비인정 접대비 한도액은 최종적으로 1억6,500만원(1억5,000만원+1,500만원)이 된다.
반면 접대비한도가 2억5,000만원인 C기업이 연간 총 3억원을 접대비로 사용했는데, 문화접대비가 300만원(총 접대비의 1%)에 불과하다면 문화접대비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같은 기업의 문화접대비 제도 도입은 이르면 올 상반기 중 시행이 가능할 전망이다. 단, 처음으로 도입되는 제도이므로 시행성과를 평가한 후 연장여부를 판단할 필요가 있어 2년간 한시적으로 적용할 계획이라는 것. 재경부 법인세제과 박영로 사무관은 “기업의 접대비 중 연극·전시회·운동경기 등 문화비 지출에 대해 추가 손비로 인정하는 방안은 현재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법안소위 계류 중에 있습니다”라며 “종합대책이 발표되기는 했지만, 시행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가급적 빨리 입법이 이뤄져 연내 시행이 가능하도록 최대한 지원할 방침입니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기업의 문화접대가 보다 활성화되고 중소규모의 기업에 까지 확대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대학로의 작은 공연에도 기업 관심 필요
이미 오래 전부터 기업의 문화접대에 관심을 기울여 오던 대형 공연장과 문화예술단체들은 기업의 문화접대 활성화에 높은 기대를 나타내며,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모습이다. 세종문화회관 공연기획팀 관계자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문화마케팅을 하는 상황이라 먼저 문의해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별히 준비된 혜택이나 홍보 보다는 기업의 담당자와 상의를 통해 원하는 형태의 서비스를 마련하는 편입니다”라며 “대관 공연의 경우 해당 공연 기획사에서 기업들을 상대로 단체 할인 등의 혜택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해 공연된 미스사이공의 경우 하나은행과 국민은행 등에서 전석을 예매하기도 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공연장 비즈니스를 위한 ‘문화접대’ 공간으로 사랑을 받던 ‘메세나27’을 보다 격조 높은 접대가 가능하도록 관람석을 27석에서 15석으로 줄여 쾌적한 공간으로 리뉴얼을 마치고 1월말 새롭게 오픈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세종문화회관은 한국메세나협의회 소속 기업들을 대상으로 공연 홍보 등의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예술의 전당의 경우 이미 오래전부터 오페라 극장 200석 이상 구입 기업에게 30여명이 이용할 수 있는 VIP룸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기업 홍보실에 공연 안내 책자를 보내 단체 관람을 유도하고 있으며 수신 기업의 범위를 지속적으로 넓혀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명도 높은 공연에 한정돼 있는 기업 고객이 다양한 공연을 찾게 하기 위해 좋은 공연을 유치하는 일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문화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의 문화접대는 기업 이미지를 높이고, 사원과 고객에게 만족감을 줄 뿐만 아니라, 어려움을 겪는 순수 예술계에도 도움을 준다는 측면에서 ‘WIN-WIN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기업들의 문화접대 관련 장르가 너무 적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아무리 기업들이 문화접대에 관심을 가져도 ‘떡고물’ 조차 챙길 수 없는 공연장이 수두룩하다는 것. 대학로 공연 티켓 수십 장을 주는 것보다 폼 나는 공연 티켓 한두 장 주는 게 효과가 높다고 여기는 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대형 공연장에서도 이러한 지적은 제기되고 있다. 기업들의 문화접대가 유명 뮤지컬에 너무 한정돼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또 다른 문화계 관계자는 “시대적 대세로 자리 잡은 ‘문화접대’가 ‘문화예술 활성화 기여’라는 사회적 요구를 제대로 수용하며, 건전한 접대문화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공연 기획 단계부터 연계 프로그램을 만들고 기업들도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라며 “대학로의 연극 같은 작은 공연에도 기업의 관심이필요한 시점입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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