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이 학생을 유린하다니… 누구를 믿어야 하나

“진실을 결코 개에게나 줄 수 없었다.”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는 신문기사에 점령당해 소설 <도가니>를 쓴 공지영 작가의 변(辯)이다. 학교라는 폐쇄된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처참한 성폭행의 맨살을 참담하게 드러낸 <도가니>는 당시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공분을 샀다. 그런데 이런 학내 성범죄가 국공립학교에서도 버젓이 자행되고 있어 다시 한 번 우리 사회에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8월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그랜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학교 성범죄 근절을 위한 학교문화개선 원탁토론'에 참석,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시사매거진] 지난 7월 서울시교육청 앞으로 하나의 민원이 접수되었다. 서울의 한 공립고등학교 여학생이 특별활동 예체능반을 지도하는 교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이 교사는 학교 성폭력고충처리위원회 책임교사로 알려졌다. 2013년에 개교해 올해로 3년 차에 접어든 이 학교에서 발생한 성범죄는 학교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은폐되며 곪을 대로 곪아있었다. 가해자는 교장을 비롯한 개교 주요 멤버인 50대 선임교사 5명이었고, 피해자는 여학생은 물론 기간제 여교사도 포함돼 있었다. 여기에 이런 성추행과 성희롱이 상습적으로 이뤄진 사실이 추가되면서 파문은 일파만파 확산되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여교사와 여학생이 각각 최소 8명과 20명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성희롱 발언 같은 간접적 피해를 입은 학생도 13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 번이라도 성범죄에 연루되면 해당 교사의 명단을 공개하고 교단에서 퇴출한다는 엄포가 떨어졌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8월 6일 서울시교육청 본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 내 성범죄에 대해 어떤 관용도 없을 것이고 학교 내 성범죄 근절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조 교육감은 이날 “원스트라이크 아웃제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며 “먼저 자격 박탈 문제와 법률적·제도적 문제가 있는데, 법률적·제도적 문제는 교육부에서도 이미 발표한 바 있고, 우리가 법을 고쳐야 하는 문제는 교육부와 힘을 합치겠다. 그리고 징계 혐의자 개인에 대해서는 징계위원회에서 논의해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학내 성범죄 교사 수는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2009년 29명, 2011년 42명, 2013년 55명으로 증가했고, 올 상반기에만 35명이 적발되었다. 이런 추세에는 물론 성범죄 유형이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 등으로 세분화되면서 기존에 대수롭지 않게 행해지던 성 관련 언행들이 ‘범죄’ 범주에 들어가게 된 측면도 있지만 역설적으로는 그만큼 교육현장이 성에 관한 한 ‘구조적으로’ 범죄 유혹에 쉽게 빠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는 논리다.


정은균 군산 영광중학교 교사는 “이런 구조적 시스템 아래서 교육 주체들의 성 관련 의식이 사회 일반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게 되면서 갈수록 낮아지고, 또 그럴수록 집단적 폐쇄 분위기 속에서 성 관련 범죄가 일상적으로 무감각하게 발생하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며 “실제 2009~2015년 상반기까지의 교사 성범죄 피해자가 총 302명에 이르는데, 이중 가해 교사와 같은 학교 학생이 120명(40%)으로 가장 많았다고 한다. 또한 같은 학교 동료교사는 59명으로 두 번째를 차지했다”고 설명한다.


때문에 학내 성범죄에 있어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것은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 보완해야할 것이 많다.


조 교육감은 “현행 법 체계 아래서는 문제된 교원이 기소되어야만 직위해제가 가능하고, 11월 19일부터 바뀔 개정법에 의해서도 수사가 개시되어야만 (직위해제가) 가능하다. 시 교육청은 수사 및 기소 여부와 관계없이 이런 일이 생긴다면 다른 법을 원용해 일단 가해자·피해자 격리와 직위해제를 하겠다. 지금까진 직위해제 상태로만 두었었는데, 현행법에 의하면 특별임무, 특별교육을 부과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제도적 장치를 이용해 격리 조치하겠다”고 밝혔으나 현행 제도 하에서는 확실한 법적근거나 조치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를 비롯한 교육계 대표와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등 교육시민단체 대표들이 8월 1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일련의 학교 내 성범죄에 대해 고개 숙여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정 교사는 학교 시스템의 구조적 요인을 감안할 때, 교원 성범죄는 언제든 불거질 수 있는 ‘잠복’해 있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즉 교원 성범죄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한 개인이 한 순간의 충동을 이기지 못해 저지르는 ‘실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성범죄가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이웃이나 친척, 부모형제, 친구 등이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 즉 가족, 혈연, 인간관계 등과 같은 구조적인 요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넓은 의미의 ‘권력관계’가 작동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 속에서 발생한다고 본다”는 정 교사는 “최근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온 서울의 모 공립고등학교 성폭력 사건도 이른바 ‘입시전문가’로 군림하는 한 교사 주변에 문제의 교사들이 모이면서 그룹화하고, 이들이 그룹의 파워를 이용해 학교 안에서 군림하는 시스템을 작동시키면서 문제가 커지고, 외부로 쉽게 불거지지 못하게 된 것”이라며 “입시에 ‘몰빵’하는 대다수 인문계 고등학교의 특성상, 제왕처럼 군림하는 교장도 입시 전문가 교사를 ‘실세’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 그리고 그런 실세의 ‘문제행동’이 외부로 노출되는 순간 학교 이미지가 추락해 존폐위기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 등이 사건을 은폐하는데 급급했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이어 정 교사는 “교직사회는 표면적으로는 ‘동료교사’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쓰는 수평적인 시스템으로 보이지만 이면에는 상하관계가 철저한 위계서열시스템이 작동하는 관료적인 사회다. 교장, 교감, 부장교사, 평교사로 이어지는 위계 구조는 점수제로 운영되는 현행 승진체제에서 큰 위력을 발휘한다”며 “평교사가 관리자로 승진하려면 거의 만점 가까운 점수를 받아야 한다. 0.1점, 0.01점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니 일찍부터 승진 점수를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교포교사(교장 승진을 포기한 교사)’로 ‘찌질한’ 삶을 살고 싶지 않다면 교장의 수족이 되어 승진 준비를 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은 기간제 교사나 시간제 강사 등 비정규직 교원들에게는 더 가중된다. 승진을 꿈꾸는 교사에게 섬겨야할 ‘제왕’이 교장 하나라면 이들에게는 교감, 실세 부장교사, 동일 교과 교사 등 모두가 ‘제왕’”이라고 역설한다.


때문에 교장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는 현행 교원인사시스템을 고치고 교무회의를 의결기구화 하여 학원 민주주의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정 교사는 말한다.


“수평적이고 협력적인 동료교사 문화는 말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시끄럽고, 귀찮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명실상부한 민주주의 시스템 아래서 토론하고 협의하면서 학교가 굴러갈 때 자발성과 주인의식이 생겨난다고 본다.”


해마다 평균 6만 명 안팎의 학생들이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고 있다. 더욱이 최근 3년간은 그 수치가 20%나 증가해 전국적으로 약 28만여 명의 학생이 학교를 탈출하고 있다. 학교에 대해, 배움에 대해 근원적인 고민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정 교사는 말한다. 흔히 학교는 ‘공부하는 곳’, 교사와 학생은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로 규정된 현 시스템에 대해 거부하는 학생이나 학부모가 늘어나고 있다는 징후가 바로 ‘학교 탈출’현상이라는 것이다.

   
▲ 수능 앞둔 충북 청주 교원대학교 부속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저마다의 소망을 적은 풍선을 파란 하늘로 날려 보내고 있다.

“아직도 많은 수의 교사들이 ‘똑똑한 나는 가르친다. 부족한 너희는 공부해라’는 구태의 틀에 박힌 교수법을 따른다. 그런데 이런 교사의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이들에게 주는 폐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일상적인 관계 형성이 어려워지는 점이야말로 가장 큰 문제다. 1960년대 이후 심각한 문제아들을 위한 대안학교에서 평생을 보낸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 선생님은 ‘아이들은 배움이 아니라 가르침에 저항한다’라는 말을 했다. 학교는 무언가를 배우는 방식을 배우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일방적인 가르침, 획일적인 수업이 아니라 참여, 체험, 소통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덧붙여 “학기 초나 방학 무렵이면 보충수업 문제로 학년회의를 연다. 형편이 어렵지만 공부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위해 수업을 개설해야 한다는 의견과 변해가는 아이들을 볼 때 그럴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맞서곤 하는데, 최근 1~2년 사이 후자 의견이 주류가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는 정 교사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는 중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눈에 보이는 교육, 기존에 생각했던 공부가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과, 교육의 대대적인 전환을 모색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확장하고 있다.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들이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치는 현재의 우리 교육 시스템에는 독일의 의무교육과 이를 이어받은 미국의 공교육, 군국주의 일제의 황국신민화교육, 그리고 독재시대 국민교육 등이 크고 작은 흔적으로 남아 혼재하고 있다. 여기에 국·영·수 중심의 주지교과와 입시 위주의 획일교육을 하면서 미래역량 교육이니 참여소통 수업이니 하는 것들까지 편입시키려 하니 당연히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사회적인 교육 대타협기구 같은 것을 통해 우리만의 시스템을 고민하지 않으면 교원 성범죄, 학교 폭력, 배움을 포기하고 무기력하게 지내는 아이들 등 학교발(發) 문제를 결코 없애지 못할 것이다”고 정 교사는 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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