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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반역] 제 7장 1591년 초봄
  • 유광남 작가
  • 승인 2019.01.0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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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자리가 뒤숭숭 하다.
어머님이 손을 잡고 우는 꿈이니 흉몽이리라.
사령이 전하기를 내일이면 한성 땅이란다.
구차하게 살기를 희망하지는 않는다.
역신(逆臣)의 누명을 함거 속에서 내다 본 세상은 적막(寂寞)하다.
국문(鞠問)에 무엇을 묻고 무엇을 대답하랴!
난 오직 조선의 장수(將帥)로 최선을 다하였노라.
어머니의 눈물에 불효(不孝) 자식은 가족들이 그립다.

(이순신의 심중일기(心中日記) 1597년 정유년 3월 3일 계사)
 

사간원이 발칵 뒤집혀 졌다. 종 6품의 지방 현감이던 이순신에게 무려 일곱 계단이나 건너 뛴 정 3품의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란 파격적 임용을 단행하였기 때문이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인사(人事)였다. 관작(官爵)의 남용(濫用)으로 체차(遞差) 시켜야 한다는 상소와 장계가 잇따랐다. 조선의 왕 선조는 그런 신하들의 아우성을 일축했다. 비록 신임하는 유성룡의 천거였다고는 하지만 평소의 선조답지 않았다. 왕이 그를 선택한 것은 확실히 이변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참된 인재를 중용하는구나. 이 나라 조선의 흥복(興復)이로다.”

이순신의 모친 변부인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 사십 대 중반을 넘긴 아들을 사랑스럽게 응시한다. 남보다 한참 늦은 나이에 벼슬길에 올랐으나 아들 이순신의 성정(性情)을 누구보다도 깊이 파악하고 있는 그녀였다.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를 거쳐 오며 오늘에 이르기 까지 이순신의 일거일동은 충분히 비범하였다. 지금 이순신의 주변으로는 모친을 비롯하여 부인과 장남 회, 차남 울과 막내 면까지 온 가족들이 축하를 위해 모여 있어 방안이 비좁을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새삼 당부하네. 나라에서 이런 파격적인 조치를 단행하는 이면에는 분명히 그 원인이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함일세. 이것은 좋은 경사가 아니라 아주 중대한 사명(使命)일 것이야.”

어머니 변부인의 조심스러운 선입견에 이순신 역시 몸가짐을 단정히 하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어머님!”

변부인의 노안에 반가움과 더불어 근심 한 가닥이 스쳐갔다. 비정상적인 승진에는 반드시 후유증이 뒤따를 것이라는 것을 세월의 경륜이 말해준다.

“서애대감의 주청이 있었겠지?”

이순신은 노모의 손을 잡았다. 순신을 비롯한 오남매를 반듯하게 키워낸 손이었다. 세월의 흔적이 주름으로 남아 있는 손이었으나 거긴 언제나 자상함이 배어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상감께옵서 어찌 말직의 관리를 헤아리실 수 있겠습니까.”

노모의 음성은 매우 부드러웠으나 예의 냉철함이 섞여 있었다.

“서애대감이 자네를 눈 여겨 보고 있는 것은 확실하네만 사람에 대하여 확신을 갖기란 쉽지 않은 법일세. 다행히 그분이 사람다운 안목을 가지고 있으니 안심이 되는군.”

이순신은 불현 듯 어머니에게 송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을 믿고 있지만 아직 세상을 염려하는 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런 모자간이었다.

“부족함이 없도록 나라 일을 성심으로 임하겠습니다. 그것만이 위로는 임금님과 조상님들을 섬기는 것이고, 아래로는 만백성들을 위하는 일이라 사료되옵니다.”

노모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감돌았으나 이내 경직되었다.

“자네를 왜 모르겠나? 단지 만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 일이 아닌가? 더욱이 남해는 왜구들이 빈번하게 노략질을 일삼고 있으며 근자에는 난리를 일으킬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감돌고 있지 않은가? 심상치 않으니 걱정일세.”

“그 때문에 저를 수사에 임명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머님, 심려 마십시오. 저들의 침략에 철저히 대비하여 왜구들이 단 한발자국도 조선 땅을 밟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자네를 믿지. 암...믿고말고. 단지 내 말은 어쩌면 내, 외로 자네가 고립되지는 않을까 싶어서 하는 말일세.”

노모는 이순신의 파격 승진에 대한 부담감과 더불어 일본의 침략 조짐에 대해서 상당한 경계심을 지니고 있었다. 내우외환(內憂外患)의 분위기는 먹장구름처럼 이들 모자를 감싸고 있었다. 조용히 대화를 듣고만 있던 이순신의 부인이 모처럼 입을 열었다.

“어머님이 심려 하시는 것은 지난 녹둔도의 둔전관(屯田官)시절에 발생한 사건이나, 거의 10년 전에 발포 만호에서 파직 당한 것들이 마음에 걸리시는 겁니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시고 청렴하게 나랏일에 임하셨지만 결과는 허무하게도......”

부인 방씨의 말을 중도에서 이순신이 끊었다.

“부인, 그건 지나간 일이요. 공연히 들추어서 불안감을 증폭시킬 필요는 없지 않겠소. 이제는 잊으세요.”

그러나 쉽게 잊을 수 있는 사건은 아니었다. 함경도의 조산보만호 겸 둔전관으로 근무하던 중 여진족의 대규모 기습을 받아 병사들이 죽고 군민들이 납치 됐으며 곡식과 말을 약탈당하였다. 이 사건으로 이순신은 패전 책임을 물어 관직을 박탈당하고 백의종군을 하게 되었다. 사실 이것은 매우 억울한 처사였지만 당시로서는 받아 드릴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아버님은 적은 숫자의 병사들로 끝내 여진족을 물리치셨고 또 납치 된 군민들을 구출해 내셨습니다. 절대 아버님의 불찰이 아니었습니다.”

장남인 회가 다소 흥분하여 목청을 높였다. 녹둔도 사건은 그가 이십 대 초반이던 해에 발생 하였기에 분명한 사리판단을 할 수 있었다. 국경 수비를 위해서 부친은 병력 증강을 계속 요청 했었으나 조정에서 묵살 했고 급기야 가을 추수 때 사고가 터진 것이었다.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어엿한 도령의 냄새가 풍기는 막내 면도 응원을 보냈다. 그는 열다섯 살로 이순신과는 달리 골격이 단단했고 키도 훤칠했다. 차남인 울도 빠지지 않았다.

“발포 만호 시절의 파직도 아버님의 잘못이 아니고 청렴한 행동에 대한 보복성 음해가 아니었습니까? 이런 간신배들이 날뛰고 있으니 할머님의 걱정이 태산 이옵니다.”

이순신은 다소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머금었다.

“그때 네 나이가 몇이거늘 그걸 기억 한단 말이냐?”

“소자 열 한 살이었습니다.”

“소자는 다섯 살이었고요.”

막내 면이 십 년 전의 나이를 들먹이며 나서자 가족들 모두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이순신의 모친이 흐뭇한 표정으로 막내의 엉덩이를 두들겨 준다.

“총명도 하시지. 그때를 기억하시는가?”

면은 쑥스러운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살짝 큰 형인 회를 쳐다봤다.

“큰 형님에게 들었습니다. 제가 그때 유일한 기억은 작은 형과 뒷산에 밤을 따러 갔다가 잔뜩 독 오른 밤송이에 이마를 맞아서 대구 울며 돌아왔던 것이 전부입니다.”

“하하하!”

“호홋-- 맞아. 이마가 시뻘겋게 부풀어서......”

“엄청나게 울었지!”

이순신의 가족들은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웃었다. 일가족이 둘러 앉아 웃음꽃을 피워본지도 오래된 터였다.

“정말 좋구나. 우리 수사나리! 감축 드리오.”

모친의 축하에 이순신은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이 모든 게 어머님의 은덕이 아니겠습니까.”

“이 사람아, 어디 나의 공이 있었겠는가. 나라님과 조상님들이 굽어 살피신 것이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네의 능력을 높이 산 것이 아니겠는가.”

“감축 드립니다, 아버님!”

“이제 당상관이십니다. 사실 진작 오르셔야할 관직이었지요.”

“어깨가 무겁습니다.”

부인 방씨가 다소곳한 자세로 입을 떼었다.

“근자에 일본의 동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왜적의 출몰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니 부디 유념(留念) 하소서.”

이순신의 얼굴에 굳은 신념이 어리고 있었다.

“남해 전라좌수의 수사로 임용된 연유를 잘 알고 있소. 서애대감과 상감마마는 철저한 수군의 훈련과 경비를 원하고 계시오. 내 어찌 소홀할 수 있겠소. 낮과 밤으로 수군들을 독려하여 무적의 함대를 구축할 것이요. 그 옛날 해상왕국의 면모를 갖출 것이외다! 내 장부로서 이런 다짐을 어머님과 부인, 아이들 앞에서 하는 것은 내 스스로의 각오를 되새김이요!”

문 밖에서 기침 소리가 들려오더니 굵직한 사내의 활기 찬 목소리가 울려왔다.

“작은 아버님! 완(莞)입니다. 분(芬) 형님과 왔습니다.”

이순신을 측근에서 도와주고 있는 조카 이분(李芬)과 이완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모양이었다. 이분은 곱상한 얼굴에 보통의 체구인데 반해서 이완은 어렸지만 골격이 단단해 보였다. 이순신은 다른 조카들 중에 유독 이들을 챙겼다. 큰 아들 이회 보다 한 살 많은 이분은 학문에 열중하였고, 특히 역학(譯學)에 큰 관심을 보여 그 방면에 출중하였다. 그 때문에 이후 이순신의 막하에서 외교 문서와 통역 업무 등으로 중국과의 관계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감축 드립니다!”

이완은 이순신의 막내아들 면보다도 두 살 어렸지만 배짱이 두둑하고 용기가 남달랐다. 많은 형들 사이에서 주눅 들지 않고 언제나 앞장 서 나가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이순신은 조카 이완을 장군감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순신은 조카들의 방문을 환영했다.

“그래, 어서 오너라!”

조카들은 제일 먼저 할머니인 변부인에게 큰 절을 올렸고 이어서 이순신에게도 넙죽 엎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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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남 작가  sisamagazine1@sisamagazine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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