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판 연좌제인가, 도의적 책임인가

(시사매거진249호=김민건 기자)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음주, 폭행, 성차별 등 수많은 이슈로 논란이 끊이질 않은 채 정신없는 한 해를 보냈다. 그 중 ‘미투 운동’을 시작으로 ‘빚투’까지 번진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빚투’란 “나도 당했다”는 의미의 ‘미투(Me too)’운동에서 파생된 말로 유명 연예인의 가족에게 채무 불이행을 당했다며 이를 사회에 폭로하는 운동으로 퍼져나간 것을 일컫는 신조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공인이라는 유명세를 이용한 폭로라는 의견과 동시에 ‘미투’때와 마찬가지로 본질적인 의미에서 변질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과연 ‘빚투’가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의미와 그들의 진실공방에 앞서 작년 초 대한민국 사회에 빠른 속도로 확산된 ‘미투’운동에 대해 먼저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래퍼 마이크로닷의 모습. 마닷의 부모는 20여년 전 지인들로부터 20억 가량의 돈을 빌린 후 뉴질랜드로 도피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진출처_채널A 방송 도시어부 캡쳐]

‘미투(Me too)’ 운동 

미투 캠페인으로도 불리는 미투 운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성범죄 피해 사실을 밝히며 심각성을 알리는 캠페인으로, 2017년 10월 영화배우 알리사 밀라노의 제안으로 시작돼 전 세계로 확산됐다고 정의한다.

국내에서는 2018년 1월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가 안태근 전 법무부 국장의 성추행을 폭로한 것을 계기로 정치계, 연예계 등으로까지 번지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미투운동이 퍼지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고,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고 피해자 간 연대를 위해 진행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미투 운동을 악용하여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돈을 요구하는 등의 허위사실 유포로 인해 미투의 본질을 해하는 부작용이 곳곳에서 발생하기도 했다.

 

나도 떼였다 ‘ 빚투’의 등장 

이처럼 ‘미투’로 인해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 및 우려를 낳았던 2018년도 마무리 될 무렵, ‘미투’에 이은 ‘빚투’의 등장으로 인해 다시 한 번 사회가 시끌시끌했다. 이른바 “나도 떼였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빚투’는 유명인들의 가족이 과거에 진 채무의 변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을 두고 벌어지고 있다.

이같은 ‘빚투’의 발단은 유명 래퍼 ‘마이크로닷’(이하 마닷)의 부모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한 인터넷 게시글에서부터 시작됐다. 글의 내용은 마닷의 부모가 20여년 전 지인들로부터 20억 가량의 돈을 빌린 후 뉴질랜드로 도피해 이민을 갔다는 주장이다.

사건 이후 마닷의 소속사측은 “모두 허위사실”이라며 “전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며 법적 대응하겠다”고 사건을 부인하였다. 하지만 마닷의 부모가 사기 혐의로 피소된 것은 사실로 드러나면서 사건은 일파만파 퍼지며 대중들로 하여금 많은 공분을 샀다.

피해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마닷의 부모는 처음부터 야반도주를 계획한 것으로 보이며, 자택에 뉴질랜드와 사이판 관련 책들이 많았고, 아이들이 복용할 약을 대량으로 구매한 흔적도 확인된걸로 나타났다. 또한 마닷의 부모는 오클랜드에서 2개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영어 이름을 3차례나 개명한 사실도 밝혀졌다.

한 매체에 따르면 확인한 피해 목장만 10여 곳에 달했고, 그 중 4곳이 파산했으며 피해자들 중 투병 끝에 목숨을 잃기도 했다고 밝혀졌다.

사건 이후 마닷은 출연하고 있던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현재는 어떠한 움직임도 보여주지 않아 ‘일가족 잠적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인터폴은 현재 뉴질랜드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진 마닷의 부모 신모씨 부부에게 대한적색수배령을 내린 상태다. 앞서 경찰은 인터폴에 신씨 부부에 대한 적색수배를 신청한 바 있다. 적색수배자가 되면 일단 제3국으로의 도피는 힘들어지지만, 뉴질랜드 시민권자인 신씨 부부를 강제로 국내에 소환하기는 힘들다.

또 다른 인기 래퍼인 ‘도끼’ 역시 ‘빚투’에 휩싸였다. 내용은 과거 도끼의 어머니 A씨가 본인의 중학교 동창생인 지인 B씨에게 5백만 원씩 2번, 총 1천만 원을 빌린 후 연락이 닿지 않은 채 잠적했다고 알려졌다. B씨는 빌려준 돈 1천만 원에 대해 2002년 대구 지방법원에 민사소송을 냈고, 이듬해에 승소했지만 돈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도끼는 본인의 SNS 라이브 방송을 통해 해명 영상을 찍었는데 해명하는 과정에서 “1천 만 원… 내 한 달 밥값밖에 안 되는 돈인데 그걸 빌리고 잠적해서 우리 삶이 나아졌겠어요”라며 “직접 와서 얘기하라. 갚아드리겠다”고 발언하여 논란을 키우기도 했다.

래퍼 도끼가 모친 사기 논란 과정에서 태도 논란을 일으킨 가운데 신곡 ‘말조심’을 발표했다. 신곡의 가사를 살펴보면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인성을 논한다며 불쾌감을 드러냈고 자신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보단 팬들에게만 집중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또 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연좌제 책임? ‘빚투’의 변질 

한편 “죄는 부모가 지었는데 왜 자식이 감당해야 하나?”라는 목소리도 커지게 된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배우 차예련은 ‘빚투’ 사건에 거론되자 수 년간 아버지의 빚 10억 원을 대신 갚아왔다며 호소했다. 사건은 자신이 피해자의 딸이라고 밝힌 여성이 한 매체에 차예련의 실명을 폭로하는 제보 메일을 보내면서 시작됐다.

이에 차예련은 관련 사실을 인정하는 동시에 “19살 이후 15년간 아버지를 보지 못하며 살아왔고, 10년간 빚을 갚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왔다”며 가정사를 고백했다. 앞서 차예련의 아버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은 사실이 있다. 그는 당시 신인배우였던 본인의 딸 차예련의 이름을 언급하며 피해자에게 접근하고 피해자 소유의 경기도 파주에 있는 토지를 10억 원에 매입하기로 결정, 토지를 담보로 쌀을 사고 되팔아 약 7억 5천만 원을 챙긴 사기 행각을 벌였다.

차예련은 이후 배우로서 본인의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자 촬영장이나 소속사 사무실로 모르는 사람들이 찾아와 돈을 갚을 것을 요구했고, 폭행을 가하는 분들도 있었다며 호소했다.

또 다른 사례로 인기그룹 마마무 멤버인 휘인이 있다.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마마무 멤버의 아버지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글이 게재됐다. “유명 걸그룹 멤버 중 한 명의 아버지가 우리 집안을 풍비박산 내놓았습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이 게시되자 이후 일부 누리꾼으로부터 마마무 멤버 휘인이 지목됐다. 이에 휘인은 ‘부모님 사기’ 논란에 대해 곧바로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다.

내용은 “어려서부터 친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친아버지는 가정에 무관심했고 가장으로서의 역할도 등한시했다. 때문에 가족들은 예기치 못한 빚에 시달리는 등 가정은 늘 위태로웠다”고 본인의 가정사를 털어놓았다. 이어 “부모님은 2012년 이혼을 했지만 어머니는 몇 개월 전까지 신용불량자로 살아야 했다. 이혼 후 아버지와 떨어져 살았지만 그 이전까지의 많은 피해를 어머니와 내가 감당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이후 몇 차례 자신에게 걸려온 친아버지 전화를 모두 무시했으며, 친아버지와의 어떠한 교류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이재만 변호사는 “채무자의 가족은 채무자가 아니므로 빚의 변제 책임이 없다. 채무자도 채권의 소멸시효 10년이 지나면 법적으로 변제책임이 벗어나게 된다. 결국 채권자는 채무자에게 정식으로 소송을 재기할 수도 없게 되자 소송 외적인 방법으로 채무자의 가족이 유명 연예인인 관계로 연예인에게 빚 독촉을 공개적으로 하여 압박하는 빚투 파문이 일고 있다. 이는 모두 불법 추심죄와 명예훼손죄에 해당될 수 있고 채무자 아닌 사람에게 채무를 강요하는 강요죄가 성립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예인의 실명이 거론되면서 부모의 죄가 자식인 연예인들의 죄처럼 인식되어 책임을 연예인에게 묻는 케이스라 볼 수 있다. 

‘빚투’가 이같은 연좌제 성격을 띄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 행태로 볼 수 있다.

최초 ‘마닷 사건’과 관련해 언론은 “부모가 사기를 저질렀으니 마닷이 책임을 져야 하나”라는 방향으로 몰고 가는 형국으로 이어졌고,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차예련이나 휘인 같은 경우는 해명하는 과정에서 본인의 가정사를 털어놓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법적으로 가족이 채무를 대신 갚아야 하는 의무가 생길 때도 있다. 부모가 돈을 빌릴 때 자식을 연대보증인으로 세웠거나 한정승인 또는 상속 포기를 하지 않고 재산을 물려받을 경우 변제 의무가 생긴다. 하지만 현재까지 지목된 연예인 중에 연대보증을 섰다거나 빚까지 상속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는 없다.

허윤 법무법인 예율 대표 변호사는 “연예인의 유명세를 이용하면 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빚투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채무 당사자가 아닌 그 자식이 돈을 갚겠다고 공언해도 소멸시효(10년)가 다시 시작 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국제개발협력 미투 기자회견에서 국제개발협력 미투운동모임 활동가들이 ‘미투, 위드유’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출처_뉴시스]

‘미투’와 ‘빚투’ 

‘미투 운동’에 빗대어 생긴 ‘빚투’는 과연 올바른 단어일까? 일각에서는 ‘빚투’라는 표현이 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며 ‘빚투’라는 명칭 자체가 ‘미투 운동’에 대한 폄하라고 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미투’는 사회 운동 차원이었지만, ‘빚투’는 개인 비리를 폭로하는 차원이어서 ‘미투’와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또한 ‘미투 운동’은 그간 피해 생존자들에게 가해진 묵시적 압박이 존재한다. 단순 개별 폭로의 연쇄가 아니라, 하나하나의 고백이 다른 이들로 하여금 용기를 낼 수 있게 만드는 연대의 고리가 ‘미투 운동’의 본질이라는 점에서 ‘빚투’와는 차이를 보인다.

‘미투’에서 말하는 “나도”와 ‘빚투’의 “나도”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미투’의 경우 억압적인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목소리를 내기 위한 용기였다. 사회 구조의 근본적인 해결점을 찾는 공유의 시작이었다. 반면 ‘빚투’의 경우 불합리한 사회구조에 반하는 것이 아닌 개인과 개인간의 채무 불이행에 따른 계약 파기만 존재한다. 때문에 ‘미투’에 기대어 표현을 하는 것이 아닌 개인간의 합의점을 통한 해결이 절실히 필요하다.

‘빚투’의 피해자라 주장하는 이들은 십 수년 전 많은 금전적 피해와 더불어 마음의 상처로 오랜 시간을 힘겹게 보냈을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임은 틀림없다. 허나 이러한 것들을 채무자의 자식이 연예인이라는 점을 이용해 연좌제라는 단어까지 거론하며 책임을 묻는 것 역시 바람직하진 않다.

‘빚투’의 진실공방을 펼치는 이들에게 있어 필요한 것은 사회적 이슈거리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 개인과 개인으로서 충분한 협의 및 진심 어린 적극적인 대응을 통하는 것이 또 다른 선의의 피해를 막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저작권자 © 시사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