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 의혹 vs 비위 공무원의 ‘개인적 일탈’

(사진_뉴시스)

[시사매거진 249호=박희윤 기자]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특별감찰반이 불법 민간인 사찰 의혹에 휩싸였다. 전직 특감반원 김태우 씨가 몇몇 언론과 야권에 제공 한 자료를 통해서다. 청와대는 김 씨의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일축했지만 사실로 드러날 경우 치명타가 불가피해 보인다. 김 씨 개인 비위로 촉발된 사태가 이제는 자칫 정권의 명운까지 좌우할 수도 있는 국면으로 접어든 셈이다. 청와대가 사태 수습을 위 한 총력전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청와대의 바람과는 달리 이미 이 사건은 정쟁화 되었고, ‘민간 사찰’인지 아니면 ‘개인적 일탈’인지 실체적 진실을 가리는 링에 올랐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발표

청와대는 지난달 14일 민정수석실 산하 반부패비서관실 소속 특별감 찰반 사태와 관련 권위적 어감의 ‘특별감찰반’ 명칭을 ‘공직감찰반’으로 변경하고, 감찰반 내부 상호 견제 강화를 위해 파견기관을 다양화하기로 하는 내용의 쇄신안을 발표했다.

조 수석은 “정치권과 언론의 의혹제기 등 예상되는 정무적 부담을 감 수하면서, 향후 공직감찰의 기강을 재정립하기 위해 특감반원에 대한 청와대 차원의 정식감찰, 징계청구, 그리고 전원교체라는 유례없는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또 “‘공직감찰반’의 구성을 검찰·경찰·감사원· 국세청 등 조사권한을 보유한 여러 기관출신으로 다양화하고, 또 하나의 기관이 전체 구성의 1/3을 넘지 않도록 하여 내부 상호견제가 강화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조 수석은 “민정수석 이하 민정수석실 구성원 모두는 일부 특감반원의 비위행위로 인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하여 깊이 자성하고 있다”면서 “정치권과 언론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면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심기일전해 더욱 엄정한 자세로 향후 청와대 안팎 공직 사회의 비위근절과 기강확립에 매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직 청와대 특감반원의 폭로

조국 민정수석의 발표가 있은 이날 저녁 SBS는 ‘8시 뉴스’에서 김태우 씨가 SBS에 보냈다는 이메일 내용을 소개했다.

김 씨는 이메일에서 “우윤근 주러 대사가 채용 청탁을 받고 1000만 원을 수수했다는 보고서를 지난해 9월 만들어 특감반장,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조국 민정수석, 임종석 비서실장에게 순차적으로 보고했다” 며 “임 실장이 녹음파일을 듣고 ‘사실로 판단되니 대비책을 마련하겠다’고 발언했다는 얘기를 특감반장에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박 비서관이 보안유지를 요청했지만 그 후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며 “여권인사 비위 첩보를 생산한 것이 (내가) 청와대 쫓겨난 진짜 이유”라고 주장했다. 앞서 김 씨는 경찰청에 자신의 지인이 연루된 비리사건의 수사 정보를 캐묻는 등 비위 의혹이 드러나 검찰로 복귀한 상태다. 김 씨는 박근혜·이명박 정권 때도 청와대 특감반원으로 일했다.

김의겸 대변인이 지난달 17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전 특별감찰반원 김태우 수사관이 자신의 비위 혐의를 덮기 위해서 일방적으로 주장한 내용을 언론이 여과 없이 보도하는 상황에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며 오늘 법무부에 추가로 징계요청서를 발송했다”고 밝히고 있다.(사진_뉴시스)

청와대의 반박

전 특별감찰반원 김태우 씨가 우윤근 주러시아대사의 비위 첩보를 상부에 보고한 것이 청와대에서 쫓겨난 배경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 청와대가 지난달 15일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공식 반박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지난해 8월 김 수사관이 공직 후보에 오른 인물(우 대사)에 대한 첩보를 올린 적이 있다”며 “보고를 받은 청 와대 반부패비서관은 국회 사무총장이 특별감찰반의 감찰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감찰을 진행하지 않았다”고 이같이 밝혔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도 이날 출입기자들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내 “궁지에 몰린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온통 흐리고 있다”면서 “곧 불순물은 가라앉을 것이고 진실은 명료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청와대는 지난달 17일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인 김태우 씨가 자신이 생산한 첩보 문서를 특정 언론사에 제공한 것과 관련해 “비위 혐의로 현재 감찰이 진행 중이고 수사로 전환된 전직 특감반원이 자신의 비위 혐의를 덮기 위해 일방적으로 주장한 내용을 언론이 여과 없이 보도한 상황에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청와대 특감반 진상조사단 긴급브리핑에 앞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사진_뉴시스)

야권의 비판

김병준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오전 국회 비상대책위원회 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은 ‘박관천 사건’당시 비서실의 국기 문란이라고 주장했고, 후보 시절에는 불법사찰을 막겠다고 했다. 이번 정부 출범하면서 적폐청산을 강도 높게 수사하겠다고도 했다”라며 “앞에서는 칼을 들이댔지만 뒤로는 청와대 감찰반이 민간인 사찰을 하면서 새로운 적폐를 쌓아가는데 ‘내로남불’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김도읍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특별감찰반 정권 실세 사찰 보고 묵살 및 불법사찰 의혹 진상조사단’을 구성하는 등 당 차원에서 적극 대응을 시작했다.

바른미래당은 청와대 특별감찰관 임명을 서둘러 줄 것을 요구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김관영 원내대표는 같은 날 오전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최근 의혹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을 보면 의혹 덮기, 제 식구 감싸기 등 사실상 내부직원들에 대한 감시기능이 거의 마비됐다”라고 진단했다. 이어 “이와 관련해 26개월째 공석인 특별감찰관을 서둘러 임명할 것을 촉구한다”라며 “법으로 임명하도록 돼 있는 의무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명백한 위법사항이 계속 진행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첩보 목록 공개

지난달 19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김태우 씨가 작성한 첩보 목록을 공개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코리아나 호텔 배우자 이 아무개 씨 자살 관련 동향 ▲한국자산관리공사 비상임이사 송 아무개 씨, 홍준표 대선자금 모금 시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최경환 비위 관련 첩보성 동향 ▲방통위 고 아무개 상임위원, 김현미 국토부 장관과 갈등 ▲주 러시아 대사 내정자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 금품수수 관련 동향 ▲고건 전 총리 장남 고 아무개 씨 비트코인 사업 활동 ▲박근혜 친분 사업자, 부정사업 통한 공공기관 예산 수령 ▲조선일보, BH(청와대)의 홍 아무개 회장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 검토 여부 취재 중 ▲조선일보, 유 아무개 의원 재판거래 혐의 ▲MB정부, 방통위 황금주파수 경매 관련 SK 측에 8000억 특혜 제공 ▲진보교수 전 아무개 씨, 사감으로 VIP 비난 등의 제목이다.

논란이 커지자 김 씨 직속상관이었던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은 기자간담회를 자청, 자유한국당이 불법사찰로 주장한 11건에 대해 일일이 해명했다.

자유한국당 김도읍(가운데) 조사단장이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청와대 특감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직무유기 고발장 접수에 앞서 포토라인에 서있다. 왼쪽부터 자유한국당 강효상, 김도읍, 전희경 의원(사진_뉴시스)

계속되는 공방

자유한국당은 지난달 2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이인걸 특감반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또 자유한국당은 21일 전 김태우 수사관이 작성한 첩보 보고서의 새로운 내용을 공개했다. 김상균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이 과거 직원들에게 500만~1000만 원씩 수차례에 걸쳐 금품을 갈취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국당은 주장했다.

한국당은 비위 첩보가 있음에도 청와대가 이를 묵살하고 김 이사장을 임명한 것 아니나며 청와대의 해명을 요구했다. 다만, 한국당은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저촉될 수 있다며 첩보 문건 자체를 공개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한국당의 ‘비위 묵살’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청와대는 “인사검증 절차에서 금품상납 내용 등을 검증했다”며 의혹에 대한 목격자와 증거가 모두 없어 임명절차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허위정보를 흘리는 범죄자의 말에 야당이 춤을 추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사건의 핵심은 청와대가 민간사찰을 했는지 안했는지가 핵심 사안이다. 이에 대해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달 18일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마치 민간 불법 사찰에 대해 문 대통령이 지난 2012년 이명박 정부에서 문제가 된 불법사찰 사건 목록의 80%는 전 정부인 노무현 정부 때 이뤄진 것이라고 하자 트위터에 올린 글과 데자뷔 되는 말이다.

당시 문대통령은 “불법사찰 문건에 대한 청와대 주장, 어이없군요. 참여정부에선 불법사찰 민간인 사찰, 상상도 못했습니다”라며 “불법사찰 전체 문건, 한 장도 남김없이 다 공개하십시오. 어떻게 뒷감당할지 보겠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청와대는 사찰 의혹을 극구 부인하지만, 의문스러운 부분이 한둘 아니다. 국민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사실 여부가 명확히 가려져야 할 것이다. “한 장도 남김없이 다 공개”하고 오해를 풀기 위해서라도 청와대는 진실 규명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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