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 크기의 할인점 등장 '미니 이마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다점포 전략’에 재래상권 반발 예상
올해부터 면적 350~1,000평 규모의 ‘미니 이마트’가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13일 저녁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마트가 경쟁력을 갖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새 매장을 계속 열어야 한다”며 점포 규모를 다양화하면서 계속 다점포 전략을 펴겠다고 밝혔다. 정 부회장은 “이마트가 작은 규모로 간다면 다른 경쟁 업체들도 같이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며 “내년 1월께 경기도 광명점에 350평 규모의 미니 이마트를 열어 안테나숍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마트가 크기를 줄여 슈퍼마켓 형태로 점포를 낼 경우 동네 슈퍼 등 재래 상권의 반발이 예상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정 부회장은 “재래 상권이 마음에 걸리는 문제이지만 대화로 접점을 찾아나가겠다”며 “광명점의 경우에도 기존 슈퍼가 폐업을 하자 주변 상가 상인들이 상권 활성화를 위해 이마트를 열어달라고 요청해왔다”고 설명했다.
정 부회장은 미니 이마트 수익성에 대해 “일반 대형마트의 비용이 (총매출 대비) 15%라면 미니마트의 경우 20%로 올라간다”면서 “이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자사브랜드(PB)의 확대 등이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구학서 부회장의 업무능력에 대해선 “구 부회장의 업무를 옆에서 지켜보면 넓은 안목에서 냉철한 판단을 내리지만 나는 아직까지 이러한 면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며 “구 부회장은 신세계 역사에서 최고의 업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할일이 많이 있다”고 말해 구 부회장 중심의 전문경영인 체제가 장기간 지속될 것임을 시사했다.
또 지난 9월 단행된 정재은 명예회장의 증여와 관련해 올해 1월 경 국세청으로부터 4,000억원 가량의 세금이 통보될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재계에서 친한 인사로는 경방 김준 부사장, 최재원 SKE&S 부회장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고 있다고 말했다.
‘경영인이 못 됐으면 지금 무얼 하고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 대해 정부회장은 “피아니스트가 됐을 것”이라며 “체르니 40번까지 쳤다”고 말했다.
한편, 정 부회장은 지난 9월 발표한 부친인 정재은 명예회장의 지분 증여 방침에 따라 내년 1월께 국세청으로부터 4천억원의 가량의 세금납부 통보가 올 것으로 예상하고, “이달 초 국세청에 현물(주식)로 납부 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유통시장 판도변화 예상
이마트를 앞세운 대형할인점들이 동네 슈퍼마켓으로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어 지역의 영세상인들과 마찰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가 이미 수년 전부터 수백평대 규모의 슈퍼슈퍼마켓(SSM)시장으로 진출한데 이어 대형마트사업에만 주력해온 업계 1위 신세계이마트도 슈퍼마켓 진출을 시사했다. 게다가 농협하나로클럽과 메가마트 등 중소유통업체들도 슈퍼마켓 부지를 물색하는 등 시장 확장에 가세하고 있다.
정용진 부사장은 “1월경 경기도 광명점에 350평 규모의 미니 ‘이마트’를 열고 안테나숍으로 활용할 계획”이라면서 “어떻게 보면 슈퍼마켓이나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이는 지금까지 100개 이상의 대형마트만 운영해왔던 업계 1위 업체가 슈퍼마켓 업태로의 진출을 공식석상에서 처음으로 언급한 것으로 유통시장 판도에 일대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익스프레스개발사업부를 별도로 꾸려 전국적으로 32개의 SSM점포를 운영하는 등 슈퍼마켓 업태로 진출한 삼성테스코홈플러스는 지난 30일에도 해운대 신시가지에 70평대 슈퍼마켓이 조용히(?)문을 여는 등 아람마트 인수 점포를 합해 지역에서만 10개의 슈퍼마켓 점포를 운영 중이다. 부전동 등지에도 입점을 계획하고 있다.
지난 2004년 롯데레몬사업을 슈퍼로 바꾼 롯데쇼핑도 2005년 11월 다대점을 연데 이어 지난 9월에는 연산점을 열고 본격적인 슈퍼마켓 사업에 뛰어들었다. 현재에도 센텀시티 등 해운대 지역으로의 진출을 모색하며 부지를 물색 중이고 신시가지 안으로의 재입점도 타진하고 있다. 이밖에 농협하나로클럽도 거점이 없는 센텀시티와 수영만일대에 200~400평대 슈퍼마켓 매장을 물색 중이고 메가마트도 추가출점 부지를 찾는 등 중소유통업체들도 시장 확대에 가세했다.
이처럼 대형마트들이 슈퍼마켓 업태로 몰려드는 것은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인해 대형마트 부지를 찾기가 싶지 않은데다 포화상태로 인한 경쟁이 심화되면서 대형마트의 효율성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 여기에 지역민들의 반발이 심해지면서 대형마트 규제 입법이 진행되는 등 기존 방식대로 출점이 어려워진 사정도 원인이 됐다.
그러나 대형마트들이 슈퍼마켓에까지 대거 진출할 경우 지역의 영세상인들과 극한적인 충돌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2005년 삼성테스코 홈플러스는 해운대 신시가지에서 슈퍼마켓이 영업 중인 상가에 출점을 계획했다가 심한 반발에 부딪혀 계획을 접어야 했다. 또 최근에 문을 연 신시가지내 슈퍼 인근에도 이미 수백평대 규모의 슈퍼마켓이 영업을 하고 있는 상황.
재래시장과 슈퍼마켓 등 지역 소상공인들은 시설개선 및 공동물류창고 건립 등 정부 및 지자체의 지원과 자구노력으로 회생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시점에서 대형마트의 중소형마켓 출점이 가속화 될 경우, 재래상권의 회생은 더 이상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관계자는 “대형마트 매출이 10% 이상 떨어지는 등 시장이 한계를 맞으면서 지역 밀착형 슈퍼마켓 상권까지 넘보게 된 상황”이라고 분석한 뒤 “이런 식의 문어발 확장은 지역경제는 물론 유통시장 전체를 고사시킬 수 있으므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한 유통업 전문가는 “기업이 이익을 좇아 새로운 업태를 개발하는 행위를 탓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이미 ‘유통 권력’이 돼 버린 대형 업체들의 무차별적인 출혈 경쟁이 결국에는 지역 경제와 주민 피해로 귀착된다는 점”을 경고했다. 현재 중소 유통업과 지역 상권은 시·군 단위까지 파고든 대형마트에 밀려 고사 직전 단계다. 지난 한해만 봐도 대형마트 매출액은 10% 이상 증가했으나 중소 유통업 매출액은 2조2,500억원이나 줄었다. 이는 재래시장 114개의 매출을 합친 것과 맞먹는 금액이다. 몇 해 전부터 중소 유통업체들은 공동 브랜드 및 물류센터 활용, 재래시장 현대화 사업 등 눈물겨운 생존 투쟁을 벌였다. 만약 크기만 줄인 이마트가 동네 곳곳에 들어서고 다른 대형 업체들도 뒤따른다면 이들의 몰락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는 비단 유통 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형 유통업체에 납품하는 제조업체의 채산성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는 게 현 유통업 관계자들의 설명. 인건비 부담 전가와 단가 후려치기 등 불공정 거래가 관행처럼 굳어진 때문이다. 대형마트의 신규 점포가 창출하는 일자리 수보다 그로 말미암아 일자리를 잃는 이들이 더 많다는 조사(중소기업청)도 있다. ‘동네 이마트’는 이런 대형마트의 부작용을 훨씬 더 급속히 악화시킬 가능성이 짙다. 그러나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조차 허술한 터에 이런 무분별한 업태를 규제할 법적 장치는 전무한 상태다.


상인들 “대형마트 입점 막아!”
대형마트의 재래시장 죽이기는 전국 곳곳에서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형편. 지난해 말에는 경북도내 곳곳에 대형 생필품 판매 점포들이 들어서 재래시장 상인들이 생계를 위협받고 있으나 이를 규제할 방안이 없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었다.
경북도는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지금까지 1,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등 지원에 나서고 있으나 대형 점포에 맞설만한 경쟁력을 키우는 데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경북도에 따르면 도내의 대규모 점포는 이마트와 홈 플러스 등 대형 할인 마트 15개와 의류 전문점 1개, 백화점과 쇼핑센터 각 2개 등 모두 20개에 이르고 있다. 대형 점포들은 포항 7개를 비롯 구미 6개, 김천 2개 등 대부분이 포항과 구미, 경산, 경주, 김천, 안동시 지역에 밀집돼 있다. 특히 구미의 경우 이마트와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이 들어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어 지역 재래시장이 급속히 붕괴된 것은 물론, 인접 지역인 상주와 문경 지역에서도 주민들이 고속도로를 이용해 구미에서 장보기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곳곳마다 대형마트가 추가로 들어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인구 11만여 명인 영주시는 홈플러스와 파머스마켓, 동원마트 등 3개 대형 할인점이 들어설 예정으로 있어 지역 상인들이 생존권 투쟁을 벌이며 각계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호소문을 보내고 있다. 재래시장의 상인 김모(54)씨는 “계속되는 경기 침체로 재래시장 상권이 몰락할 위기에 처한 마당에 대형 할인마트까지 들어온다면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또 이미 6개의 대형마트가 있는 구미도 이마트가 다시 국가산업3단지 지원시설 부지인 임수동에 건물을 신축할 계획으로 있어 영세상인들의 피해를 우려한 구미 경실련 등 구미지역 39개 사회단체들이 ‘이마트 입점 저지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반대에 나섰다. 구미시도 지난 7월 공단에 “대형마트가 입점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며 공식 방침을 정했고, 시의회는 입점 철회를 요구하는 건의문을 채택하기도 했으나 현재로서는 입점 규제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경북도는 대형마트 입점으로 인한 영세상인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올해만 28개 시장에 280억원을 지원한 것을 비롯해 99년부터 지금까지 7년 동안 148개 재래시장에 무려 1,000억원의 돈을 들여 비가림 시설 및 주차장과 화장실 확충 등의 사업을 벌였으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도 관계자는 “대형마트의 경우 법적으로 입점을 규제할 방법이 없어 사실상 대책을 마련치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할인점, 재래시장의 6배 이상 벌어
2005년 전국의 재래시장 1,660곳이 올린 매출은 3조5,000억원 수준이지만 대형 할인점은 약 23조원의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추산됐다. 국회 행정자치위 한나라당 안경률 의원은 중소기업청, 경기도 등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05년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할인점은 전국적으로 288개로 이들이 올린 매출은 23조5,000억원에 이르며 매장당 매출액은 816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됐다고 밝혔다.
반면 전국 1,660개 재래시장의 24만개 점포가 벌어들인 매출은 3조5,000억원 수준에 그쳐, 시장 1개당 매출액은 21억원, 점포 1개당 매출액은 1,450만원에 불과했다고 안 의원은 추산했다.
안 의원은 “한마디로 재래시장 상인들은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재래시장의 이 같은 침체는 경기침체로 인한 내수부진, 소비자 구매패턴 변화와 소비환경 변화를 따르지 못하는 재래시장 상인들의 경영능력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차 추진 중인 재래시장 현대화 사업의 대대적인 발상 전환 시급하다”면서 ‘단순히 노후시설을 개선하는 수준의 (정부) 대책은 예산만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안 의원은 따라서 “이마트 등 대기업이 운영하는 할인점들은 입주 소상공인보다는 서울 소재 대기업이 많은 이윤을 가져가지만 소상공인들이 힘을 합쳐 운영하는 공동대형마트는 이윤을 고루 나눈다는 측면에서 매우 바람직하다”며 공동대형마트의 육성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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