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분교수'의 피해자는 우리 사회가 낳은 또 다른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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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분교수'의 피해자는 우리 사회가 낳은 또 다른 피해자
  • 김영식 경영이사
  • 승인 2015.08.0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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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분교수'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단어가 연일 매스컴을 오르내리며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쌓은 명성을 제자의 인권을 유린하는데 썼다는 어리석은 자가 저지른 행위는 입 밖으로 거론하기 조차 민망한 지경이다. 여기에 가담한 어린 여제자들도 그저 교수가 시켜서 한 행위치고는 일말의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나마 가혹행위에 덜 적극적이었다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피해자의 고통에 가담한 것은 분명한 범죄행위이다.
그들이 저지른 가혹한 만행은 매질도 모자라 급기야 피해자에게 인분까지 먹일정도로 잔인함의 도를 넘어섰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행위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지른건지 누가 그들에게 그런 권리를 준건지 사건을 들여다 볼 수록 어이가 없을 정도다.
피해자의 순응에 점점 강도를 더해간 도를 지나친 체벌이나 가혹 행위일 뿐 의도적이지는 않았다고 봐주려 해도 구속 후 보여준 '인분교수'의 태도는 재고의 가치조차 없게 만들고 있다. 오죽하면 변호인이 중도에 변호를 거부했을까. 위자료라고 내놓은 돈이 고작 400만원이라니 양심 따위는 애초에 없는 자라는 생각이 든다.
피해자에게는 고작 30만 원의 입금을 지급하고 그 마저도 체불해 온 교수라는 자가 회사 자금을 횡령하고 그 돈으로 여제자의 대학등록금과 오피스텔 임대료를 대주기까지 했다니 인면수심이 바로 그를 일컷는 말인 듯 하다.

왜 피해자는 당하고만 있었나라는 모두의 의문 앞에 놓여진 진실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듯해 씁씁하기까지 하다.
건장한 청년인 피해자가 수년 간 고문에 가까운 학대를 참은 것이 교수라는 꿈을 조금 더 수월하게 이루기 위해서 였다가 나중에는 감금되어 벗어나지 못하는 지경을 도래하게 했다는 점 때문이다.
인맥이 없이는 교수로 자리잡기 힘든 디자인 계통의 생리와 그것을 마다하고 나왔을 때 우리 사회의 청년 실업률은 피해자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을 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위가 점점 도를 지나치고 있었지만 이러한 현실의 벽이 결국 피해자에게 조금만 더 참아보자는 의지 아닌 의지가 생기게 만들었을 것이다.
'열정페이'라는 웃지 못한 말이 생겨난 것도 우리 시대의 청년들의 슬픈 자화상을 대변하고 있다. 법으로 정한 최저임금도 안되는 보수를 제공하면서 '일하면서 배운다'는 그럴싸한 논리로 자기들의 행위를 정당화 시키는 악덕 고용주에게 재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값비싼 노동을 헐값에 제공하는 청년들이 우리 사회에는 부지기수다.
지난해 무더기 고용과 일방적 해고로 논란을 빚었던 한 소셜커머스 업체의 횡포도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청년 고용시장의 구조가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저항할 줄 몰라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 그마저도 놓치게 될까 두려워 참는 것이 청년 노동자들의 현재가 되어버렸고, '열정페이'라는 가당치도 않는 논리를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결국 사회적인 청년고용 문제 해결만이 이 시대 청년들이 더 이상 부당함을 참지 않고 올바른 노동의 댓가를 요구할 수 있게 하는 근본적인 방법이다.
정부가 임금피크제 도입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기업 살리기 등으로 청년 고용을 적극 권장해 청년고용대란을 막겠다는 방침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실업률에 큰 변화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가 노동개혁에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만큼 탁상공론이 아닌 실질적인 청년고용 문제 해결의 답을 기대해 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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