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공개변론후 12명 대법관들 '유책주의'에 무게

   
▲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6월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혼외자 남편의 이혼 청구 소송의 공개변론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대법원이 혼외자 이혼청구소송 공개변론을 실시한 후 양승태 대법원장 등 12명의 대법관들 사이에선 유책 배우자는 이혼을 요구할 수 없다는 ‘유책주의(有責主義)’ 기류가 더 강해진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따라 사실상 혼인관계가 파탄난 경우 부부 중 어느 한쪽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이혼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파탄주의(破綻主義)’로 판례를 변경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법원 고위 관계자는 3일 "지난달 하순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 사건 공개변론을 한 후 대법관들이 어쩌면 아직은 시기상조일 수 있겠다는 쪽으로 의견이 많이 기울었다"며 "더 아이러니한 것은 대법관들이 원고 측 참고인의 설명을 듣고 그 같은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당시 원고측 참고인 이화숙 연세대 명예교수는 "파탄주의로 전환할 수 있는 여건이 성숙되어 있다"며 원고 측 주장의 타당성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파탄주의 도입을 위해선 "약자 보호 장치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유책 배우자에 대한 제재가 없어지고 혼인 의무를 지킨 배우자가 보상 받을 길이 요원해지는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이 교수의 논거였다.

따라서 이 교수는 당장 입법을 통해 보완장치를 마련할 수 없다면 판결문에서 파탄주의의 역기능을 막을 수 있는 기준이나 원칙을 제시해주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이상훈 대법관은 '(그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이라고 질문했고, 이에 대해 이 교수는 "그런 보완장치 없이 파탄주의로 가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대법관들이 이 순간 고개를 끄덕이며 파탄주의로 판례를 변경하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후문이다.

당초 대법원은 간통죄가 폐지되는 등 달라진 시대 흐름에 따라 유책주의에서 파탄주의로 판례를 변경하기에 적합한 사건을 1년간 찾았었다. 그러다 비록 혼외자를 낳은 유책 배우자이긴 하지만, 15년간 별거생활 중 자녀들의 학비를 부담하고 매월 생활비 100만원을 지급해온 사건을 찾아 공개변론을 열었다.

다른 대법원 고위 관계자는 "부양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은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 사건을 1년만에 찾은 후 공개변론까지 열었던 것은 사실 판례 변경을 위한 과정으로 봐야 하는데 오히려 공개변론이 판례 변경을 어렵게 만든 상황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고위 관계자는 특히 "지난번 헌법재판소가 성매매특별법 공개변론을 열었을 때 해당 법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원고 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김강자 전 총경이 공개변론에서 '성매매특별법을 위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고, 헌재는 이후 합헌 결정을 내리지 않았느냐"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법원 내에선 대법관들이 한창 물밑 조율을 하고 있는 만큼 판례 변경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교수가 주장한 것처럼 파탄주의 역기능을 보완하는 안전장치를 판결문에 제시해서 판례를 변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최종 판단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 기류는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며 "차분히 기다리면 곧 정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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