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에도 피어난 아름다움 향한 도전

   
 

‘아름다움’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가 추구해온 중요한 가치이자 욕망이다. 우리가 예쁘고 아름다운 사람을 보고 ‘눈이 즐겁다’고 느끼는 것도 본능적으로 아름다움에 끌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예로부터 미인은 경국지색(傾國之色), 절세가인(絶世佳人)이라 불리며 칭송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 당대의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선발하기 시작한 것은 1953년부터다. 현재 미인대회의 대표 격인 ‘미스코리아’ 대회의 전신인 ‘여성경염대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체계적인 미인대회로서 부산의 중앙신문사가 주최했다. 당시 전쟁으로 인한 암울한 사회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시작한 ‘여성경염대회’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겨룬다는 의미다.
여성경염대회의 심사 기준은 미혼, 신장 150cm 가량, 키에 맞게 마르거나 뚱뚱하지 않은 체형, 하얗고 반듯한 치아, 동그랗고 복스러운 얼굴, 현모양처의 품위를 갖춘 여성이었다. 당시 신문기사에 따르면 본선 진출자는 10명으로, 전원이 수영복으로 등장해 백옥같이 빛나는 흰 살결과 오동포동 탄력 있는 육체를 자랑했고, 또 다시 전원이 퇴장했다가 개개인이 나와서 풍만한 육체를 자랑했다. 현재 미인의 기준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1953년 미의 기준에 맞는 우리나라 최고의 미인은 숙명여대생이던 강귀희였다.
이후 중앙신문사가 몇 회에 걸쳐 대회를 운영하다가 1957년부터 한국일보사가 국제대회 본부사무국과 계약을 맺고 미스코리아 대회를 새롭게 개최하기 시작했다. 1957년 5월 서울 명동 시립극장에서 첫 미스코리아 대회가 열렸으며 박현옥이 초대 미스코리아 진을 차지했다. 박현옥에게는 상금 30만 원, 목걸이, 은수저, 치마저고리 등의 부상이 주어졌다.
이외에도 미스 캘린더 선발대회(1963), 미스 아이(eye) 선발대회(1967), 미스 각선미 선발대회(1968), 미스 수영복 선발대회(1971) 등 각종 미인대회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미스코리아 대회의 가장 큰 목적은 미국에서 개최되는 미스유니버스 대회에 내보낼 한국 대표를 뽑는 것이었다. 국제대회 참가를 전제로 한 미스코리아 대회의 운영은 심사, 선발 기준이 처음부터 서구적일 수밖에 없었다.
당대의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선발하는 미스코리아의 평균 키는 1960년대 156cm, 1970년대 166.4cm, 1980년대 168.3cm, 1990년대 172.9cm,로 점점 커졌고, 최근에는 큰 키에 외적인 아름다움뿐 아니라 지적인 아름다움까지 갖춰야 미스코리아에 선발될 수 있다.
역대 미스코리아의 얼굴을 시대별로 살펴보면 1950~70년대에는 달걀형 얼굴에 눈, 코, 입이 고르게 발달돼 있고 볼에 살이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1980~90년대에는 콧망울이 둥글면서 눈꼬리가 살짝 올라간 스타일이 미인으로 각광받았다. 눈꼬리가 살짝 올라간 여성이 경쟁력과 순발력이 있어 보이기 때문에 대표적인 미인형으로 곱혔다.
이후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눈 밑 애교살이 도드라지며 전체적인 귀여운 이미지의 동안이 미인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특히 미스코리아 중에서 2000년도 수상자인 박시연의 얼굴과 1989년도 수상자인 고현정을 비교했을 때 박시연이 상대적으로 턱 길이가 짧아 어려보이는 인상을 지녔다.
역대 미스코리아 중 가장 뛰어난 브레인의 소유자는 2002년 미스코리아 진 금나나였다. 금나나는 2010년 하버드대와 존스홉킨스대 대학원 3대 박사과정에 전액 장학생으로 합격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미에 대한 관심만큼 미스코리아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커졌고 1980년대만 해도 미스코리아 대회는 TV로 생중계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미스코리아 대회가 열릴 때면 온가족이 TV에 둘러 앉아 파란색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맵시를 뽐내는 미녀들을 보는 것이 흔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여성의 신체 치수를 재서 점수를 매기는 등 여성의 성 상품화, 미의 기준의 획일화, 외모지상 주의 조장 등의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 같은 비판은 1950년대부터 있어왔으며 1990년대 여성 운동이 활발해 지면서 심화됐다.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고 안티미스코리아 운동까지 시작되기도 했다.
결국 2001년을 끝으로 TV 중계가 중단됐으며, 현재 매년 대회가 열리고 있지만 케이블 TV로만 중계되고 있다.
   
 
국민의 많은 사랑을 받는 이벤트였던 미스코리아 대회가 예전의 명성을 잃었지만, 다양한 기준으로 심사하는 미인대회나 슈퍼모델 대회 등이 꾸준히 열리며,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이벤트 행사로 미인대회의 명목을 이어가고 있다.

미스코리아 대회보다 더 오랜 역사를 지닌 미인대회가 있다. 남원 춘향제 기간에 열리는 행사 중 하나인 ‘전국 춘향이선발대회’다. 1950년 제20회 춘향제 때부터 시작되어 올해로 85회를 맞이한 이 대회의 초대 춘향은 당시 23살이던 김옥순이었다.
수많은 전국의 전통 축제 중 가장 정통성과 연륜을 지닌 남원 춘향제의 핵심행사로서 KBS전주 총국이 지역의 문화 축제인 춘향제를 계승, 발전시키자는 취지로 개최해오고 있다. ‘
한국 최고의 품위와 맵시를 갖춘 신여성상을 추구하며 전국의 정절과 부덕의 표상인 춘향의 얼을 되살리는데 기여할 진, 선, 미, 정, 숙, 현의 여섯 춘향을 선발한다.
8일 동안의 합숙 기간을 갖는 후보들안 전통적인 미인의 맵시 선보이기, 전통 문화예술 공연, 조별 장기자랑 등을 통해 자신의 끼와 재능을 선발한다. KBS는 자체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합수 과정과 대회 등을 방영하고 있다.
선발된 춘향들은 지역 및 KBS 대내외 홍보사절로 활동하며 국내외 관광객 확보는 물론, 지역 이미지 제고 및 지역 문화축제의 전국화와 세계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선발된 300여 명의 춘향이들은 한국의 전통 미인으로 선발돼 활동하고 있으며, 역대 춘향 출신의 연예인으로는 박지영, 오정해, 윤손하, 장신영, 이다해 등이 있다
춘향이들의 연예계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매년 열리는 대회에 300여 명의 도전자가 지원할 정도로 높은 인지도를 유지하고 있다.
[사진_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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