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지화, 성공적…국내 시장 한계 넘어서

한류라는 표현이 처음 사용된 것은 1990년대,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에서 인기리에 방송되면서 부터다. 이후 K-pop 스타들과 <겨울연가>, <대장금> 등이 흥행하면서 위세를 키워가던 한류는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 지난해 <상속자들>, <별에서 온 그대>로 다시 불을 지폈다. 인터넷과 모바일 등 새로운 미디어와 결합해 우수한 콘텐츠를 세계 시장에 수출하며 안정기에 접어든 한류. 그 인기는 드라마 속 스타가 먹고 마시는 것, 입고 바르는 것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며 한국 기업의 세계 진출을 견인하고 있다.

   
 
지난해 3월 한국뿐 아니라 중국 대륙이 드라마 한 편으로 들썩거렸다.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을 강타하면서 드라마 속에 등장한 ‘치맥’은 물론 극중 전지현이 입고 나온 패션 스타일까지 큰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한류의 확산이 한국 제품과 한국 기업에 대한 우호적 이미지를 제고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소가 지난 2012년 주요 서비스, 제조분야 300개사를 대상으로 한류의 경제적 효과와 우리기업의 활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83.8%가 ‘한류의 확산으로 한국과 한국 제품에 대한 우호적인 이미지가 높아졌다’고 응답했으며, 실제 ‘한류로 인해 매출이 증가했다’고 답한 기업도 51.9%에 달했다. 특히 서비스 업종인 문화, 관광, 유통 업종의 매출 증대효과가 크게 나타났으며 제조업의 경우 식품, 전자, 화장품, 자동차, 의류 순으로 한류에 따른 매출 상승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장품의 경우 한류 스타를 모델로 기용하면서 중국 및 아시아 지역에서의 매출이 크게 증가해 2000년 이후 꾸준히 수출이 늘었으며 최근 5년간 연평균 30% 가까이 수출액이 증가했다. 이러한 효과는 해외 팬들이 한류 스타를 보면서 그들이 입고 나오는 의상을 유의 깊게 보고, 그들이 사용하는 화장품, 들고 다니는 가방, 휴대폰 등에 관심을 갖는 것에서 비롯된다. 한국 백화점을 찾는 중국인들이 한류 스타의 화보를 가져와 같은 상품을 찾을 정도로 한류 스타들을 모델로 기용한 제품의 매출이 급성장하고 있다.


실제로 화장품 업계는 지난해 유통업계 전반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성장을 거듭했다. 면세점을 중심으로 요우커(중국인 관광객) 특수를 누리면서 성공 가도를 달렸으며 이러한 추세는 올해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또 정부가 서울과 부산, 제주 지역 시내면세점을 신설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중인만큼 면세점 화장품 매출의 고성장 기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중 자유무역협정(FTA)가 체결됨에 따라 향후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화장인구가 1억 명을 넘는 중국의 화장품 시장은 글로벌 브랜드들이 시장을 이끌고 있는 상황으로, 한류 열풍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향후 전망이 밝다는 게 화장품업계의 관측이다. 증권업계도 화장품업을 한중 FTA의 가장 큰 수혜 업종으로 꼽으며, 화장품 업계 중 아모레퍼시픽의 성장성을 가장 밝게 전망했다.
영국의 시장조사기관인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화장품 시장 규모는 442억1900만 달러(약 49조 원)로, 올해에는 472억4000만 달러(약 52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화장품 업계는 중국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1993년 중국 선양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라네즈로 중국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회사 측은 매년 20~30%대의 성장률을 보며 타 글로별 뷰티 기업 대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시장에서 2013년 말 매출 3,387억 원을 달성하며 전년 대비 29.1% 증가율을 보였다.
라네즈의 경우 지난해 해외 매출 비중이 전체 매출의 51.5%를 차지하며 국내 매출을 넘어섰다. 홍콩 최고급백화점에 1호점을 오픈한 라네즈는 현재 홍콩에 이미지샵을 비롯해 24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측은 현재 88개의 이니스프리 매장을 올해 100까지 늘리고, 매장 리뉴얼과 적극적인 마케팅활동을 통해 각 브랜드별로 콘셉트를 강화할 계획이다.
LG생활건강은 최근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기업 알리바바 산하 B2C 해외 직구몰 ‘티몬 글로벌’에 입점해 중국 직구사업 강화에 나섰다. 인기 품목의 VIP 회원 특별 할인행사, 한류스타 마케팅 등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중국 직구 시장을 선점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2006년 중국 시장에 고급 한방화장품 브랜드 ‘후’를 론칭한 LG생활건강은 현재 상해, 북경 등 대도시 최고급 백화점에 70여 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2011년과 2012년 연평균 약 30% 이상, 지난해 88%을 상회하는 신장률을 기록했다. 특히 최근 중국 여성들의 고급화, 고소득화 추세로 인해 고가의 제품을 선호하는 만큼 고급화 전략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에이블씨엔씨의 화장품 브랜드 미샤는 상대적으로 수입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가 높고 가격 저항력이 적은 고소득 소비자층을 주요 타겟으로 삼았다. 이를 위해 중고가 브랜드로 포지셔닝하는 전략을 취하고 백화점 위주의 입점 전략을 펼쳤으며,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백화점 시내 중심지를 위주로 매장을 개설할 방침이다.
네이처리퍼블릭은 중국 시장에서 2013년 온라인 스토어에 1차 입점했으며 올해 말까지 단독 매장을 오픈할 예정이다.


   
 
한류에 힘입어 유통업계도 앞 다퉈 중국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현지화 전략을 통해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기업들의 성공사례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유통업계 강자인 롯데그룹의 롯데백화점은 지난 2011년 국내 기업 최초로 중국 텐진에 단독매장 탄진동마로점을 열었다. 이후 2012년 텐진시 최고 규모의 복합문화단지 ‘문화중심’의 ‘갤럭시 쇼핑센터’에 입점했다. 2013년에는 웨이하이시, 청두 등 중국 서부 내력에까지 진출했다. 지난해에는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에 롯데백화점 해외 7호점인 선양점을 열었다. 이곳은 롯데그룹 계열서 7곳이 참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인 ‘롯데월드 선양’의 1단계 점포로 백화점과 영플라자가 동시 오픈했다. 기존 점포를 통틀어 가장 큰 규모로, 올해에는 마트가, 2016년에는 쇼핑몰과 테마파크가 조성된다. 2017년까지 호텔, 오피스, 아파트가 들어서면 명실상부한 ‘중국판 롯데타운’이 완성돼 거대한 단지를 이루게 된다. 이는 서울 잠실에 조성 중인 제2롯데월드보다 1.4배 큰 규모다.
롯데마트 역시 중국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롯데마트는 2007년 네덜란드계 중국 마크로(Makro)의 8개 점포를 인수하며 중국 시장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이후 칭다오시에 라오산점, 베이징시에 꽁이샤차오점을 신규 오픈했으며 2009년 중국 대형마트 타임스(TIMES) 점포 65개를 인수하면서 규모를 키워왔다. 지속적인 신규 점포 출점을 통해 현재 중국에서만 102개 점포를 운영하는 유통업체로 성장했다.
롯데마트 측은 중국에서 단기간에 많은 점포망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적극적인 신규점포 출점과 인수합병을 병행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중국이 광활한 나라인 만큼 점포망을 확대할 때에도 상대적으로 발전 가능성이 높은 중소도시를 거점으로 출점해 주변 지역으로 점포망을 확대하는 ‘도미넌트 전략’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유통업계의 또 다른 강자인 신세계그룹의 경우 핵심 계열사인 이마트를 중심으로 중국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997년 국내 유통기업 최초로 상하이에 해외 1호점인 취양점을 연 신세계그룹은 이후 10년 동안 10개 점포망을 구축했으며, 2010년 28개 점포를 운영하다가 이후 운영 효율화를 위한 구조조정을 진행해 현재 15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이랜드그룹 역시 중국 진출에 성공한 대표적 사례다. 지난 1994년 상행에 생산지사를 설립하고 1996년 이랜드를 론칭해 중국 패션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철저한 현지화 정책을 통해 중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여 지난해 2조40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랜드는 중국 소비자들의 소비성향을 면밀히 파악하고 분석하는 한편 우리나라와 동일한 디자인이 아닌 현지 적응 전략을 택했다. 빨간색을 선호하는 중국 문화의 특성을 고려해 매장 로고를 빨간색으로 선택했고, 중국인들이 발음하기 쉬운 ‘이리엔’이라는 중국형 명칭을 사용했다. 가격뿐만 아니라 취향과 실용적인 측면을 중시하는 중국인들의 성향을 반영해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을 펼쳤으며, 직원들의 현지화 전략을 위해 언어와 문화, 생활습관 등을 배우는 데 힘썼다.

   
 
식품업계 역시 중국 공략에 활발히 나서고 있다. 오리온은 일찍이 국내 제과 시장의 한계를 인식하고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지난 1993년 북경 사무소를 개설하면서 처음 해외 진출을 시작해, 현재 중국 4곳, 러시아 2곳, 베트남 2곳 등 총 8개의 글로벌 생산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중국 내 오리온 초코파이의 인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초코파이는 중국 초코파이류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85%를 기록하며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2012년 한 해 초코파이 매출이 1,350억 원에 달할 정도. 오리온은 중국인들이 인간관계에 있어서 중시하는 가치가 인(仁)이라는 점에 착안해 2008년 말부터 ‘좋은 친구’라는 의미의 중국어 ‘하오리여우파이’로 제품명을 정하고, 포장지에 인(仁) 자를 반영해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CJ제일제당은 2012년 중국 시장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글로벌 시장 공략을 선포했다. 지난해 3월부터 중국 북경 중심지에 숙취해소음료 ‘컨디션’ 판매에 돌입했으며 기존에 없던 차별화된 숙취해소음료로 중국 내 새로운 음주문화를 만들어간다는 계획이다. 또 CJ푸드빌은 중국 베이징 텐안먼에 복합외식 공간인 ‘CJ푸드월드’를 오픈하고 오는 2017년까지 중국 내 CJ외식사업장을 3,500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별에서 온 그대>로 치킨과 맥주를 함께 먹는 ‘치맥’이 크게 인기를 끌자 하이트진로는 ‘한국 치킨하면 한국 맥주’, ‘한국 대표 맥주는 하이트’라는 점을 강조해 마케팅하고 있다. 지난 2007년 11월 중국 정부의 인가를 받아 2008년 영업을 개시한 하이트진로 중국법인은 현재 맥주와 소주, 위스키, 샘물 등 70여 개 브랜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아직 100% 수입 판매를 하고 있지만, 향후 현지 생산을 위해 공장을 설립할 계획이다.


<별에서 온 그대>와 <상속자들> 등 높아진 한국 드라마에 대한 관심은 다른 드라마로 이어졌다. SBS 드라마 <쓰리데이즈>의 판권이 기존 드라마 평균 판매 금액의 8배에 달하는 금액에 팔렸으며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피노키오> 등의 판권은 <별에서 온 그대>가 기록한 회당 3만5000달러에서 28만 달러까지 치솟았다.
다른 TV프로그램의 수출도 활발하다. MBC는 중국 강소위성TV에 <우리 결혼했어요>의 포맷을 수출하고, 프로그램의 방향과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방송 내용과 기술적 지원 등 종합적인 제작 자문을 맡았다. MBC는 PD, 작가 등을 현지로 파견해 방송 동안 프로그램 제작 노하우를 전수할 예정이며, 앞서 <나는 가수다>와 <아빠 어디가> 등의 포맷을 중국 후난위성TV에 수출한 바 있다.
영화계도 예외가 아니다. 영화 <수상한 그녀>의 중국판 리메이크 영화 <20세여 다시 한 번>가 지난 1월 개봉 9일 만에 역대 한중 합작 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20세여 다시 한 번>은 영화 투자, 배급을 맡은 CJ E&M이 중국시장을 겨냥해 <수상한 그녀>를 기획하면서 공동 기획했으며, 한중합작영화 흥행 최고 기록을 지키고 있던 <이별계약>의 1억9300만 위안을 돌파했다.
<별에서 온 그대>의 감독 장태유 PD는 중국에서 영화감독으로 데뷔할 예정이다. 지난해 별그대 이후 중국에서 러브콜을 받아온 장 PD는 SBS에 2년 간 휴직을 신청하고, 현재 중국에서 활동하며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류 열풍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삼성경제연구소의 ‘新 한류 지속발전을 위한 6대 전략’ 보고서는 세계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한류의 미래를 낙관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태동 15년 만에 최고조에 달한 한류지만, 콘텐츠 질의 저하, 대중문화 편중 등의 문제로 인해 향후 지속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또 외부적으로 ‘반한류 기류의 확산’도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 한류의 주 소비층인 중국과 일본 등에서 일방적인 한국문화 전파로 자국문화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면서 반한류의 정서도 확대되고 있다. 중국의 경우 황금시간대에 외국 드라마 방영을 금지한 바 있고, 일본에서는 독도 문제와 맞물려 한류 스타의 퇴출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한류의 인기는 문화 콘텐츠의 수출을 넘어서 국내 기업의 중국 시장 진출에도 큰 몫을 하고 있다. 한류가 일시적인 열풍을 넘어서 글로벌 사회의 주류 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새로운 전략을 만들어 내야할 것이다. K-pop이나 드라마 위주에서 벗어나 순수예술, 생활문화 등 콘텐츠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사진_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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