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이 시대 어르신이자 원로

늘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며 성취하는 삶을 산다는 신세대 ‘어번그래니(urban granny)’ 김의신 회장. ‘지지 않는 해’라는 뜻의 ‘백야(白夜)’라는 호도 이런 도전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신에게 직접 내린 호칭이란다. 하지만 이 시대 원로이자 어르신으로서,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와 선행에도 솔선수범하는 실천하는 삶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민속문화예술특구인 진도군에서 태어난 김의신(63) 회장은 쉼 없는 자기계발과 도전의 삶을 살아왔다. 해마다 연말이면 다음 해 소비 트렌드에 대한 예측을 내놓는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펴낸 ‘트렌드 코리아 2015’는 일명 ‘신세대 할머니’로 불리는 도회적이고 세련된 5060세대를 ‘어번그래니(urban granny)’로 칭하며 이들이 올해 소비시장의 큰 고객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베이비부머세대로 본격적인 산업화의 풍요를 경험하며 살아온 어번그래니들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까지 갖추어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일원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추세에 발 맞춰 김 회장 역시도 컴퓨터는 물론 포토샵까지 섭렵하고 있다. 현재는 천자문 서예에 푹 빠져 2만자가 넘는 천자문을 썼을 정도다. 뿐만 아니라 자비를 들여 천자문 해설본을 만들어 많은 이들과 공유할 정도로 열정도 있다. 늘 목표를 두고 도전하며 성취해내는 삶을 살아온 어번그래니 김 회장의 제2의 리즈스토리를 들어본다.
 

서예와 미술로 건강과 취미 챙기는 ‘한국기로미술협회’

   
 

급격한 노령화사회로 접어들면서 노년층이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주체로 부각하는 가운데 서예와 미술에 일가견이 있는 5060세대들이 미술대전을 열어 화제를 모았다. (사)한국기로미술협회 회원들이 함께한 이 행사의 취지는 급증하는 노년층의 취미생활은 물론 디지털시대 출처조차 불분명한 온갖 신조어에 둘러싸인 젊은이들에게 전통예술인 서예와 미술을 촉진시키기 위한 목적이다. 더불어 산업화의 역군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을 일군 주역에서 사회의 뒷전으로 밀려난 노년층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함도 한 이유다.
“60세 이상 노인인구의 폭발적 증가와 물질적 빈곤으로 예술에 대한 자신의 실력을 검증받기 어려웠던 기로들이 이렇게 큰 행사를 개최해 새로운 활력을 되찾고, 역사적인 전문 문화예술에 대한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는 김 회장은 “때문에 어려운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접수비와 최고급 양장 도록을 무료로 증정하는 본 협회에 가입하여 예술 활동을 하기를 소망하는 노년층이 많다. 현재 본 협회는 6천여 명의 회원과 250여 명의 임원이 참가하고 있으며 39개 전국 지회와 지부, 그리고 60여 명의 운영위원이 자원봉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어 “최소 2016년까지는 3만여 명의 회원과 3천여 명의 임원을 구성해 대중문화예술은 물론 전통예술 복원과 계승·발전에 기여하는 선두주자로 그 역할을 감당해 나갈 것을 확신한다”는 김 회장은 “세계 여러 나라와도 인간문화 교류를 통해 국가와 민족문화예술의 우수성을 널리 알려 나갈 방침이다”라고 포부를 밝힌다.
 

지역사회 이끌어가는 진정한 ‘기로(耆老)’

   
 

본래 ‘기로’라는 단어는 고려왕 신종 때 문화사랑을 지낸 최당을 중심으로 한 고위관직 퇴임자들의 모임에서 유래한다. 최선, 장백목, 고영종 같은 문인들이 모여 친목을 도모하고 문화예술을 즐기던 모임체가 ‘기로회’였으며, 이후 조선 태조 때 ‘기로소’ 또는 ‘기로회’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당시에 있었던 정치원로회나 평은통자문회의 같은 역할을 담당하며 숙종 때와 영조 때까지 왕성한 활동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더불어 태조 4년에는 ‘기영회’라는 명칭으로 국가 원로들을 모아 기로연을 베풀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처럼 기로라는 이름에는 국가와 나라의 당당한 어른으로서, 국가의 안녕과 나라의 번영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당대 원로들에 대한 존중의 뜻이 담겨있다”며 “조상들의 이와 같은 얼을 받들어 노년들의 예술잔치를 풍성히 베풀어 새로운 도전의식을 고취하고 예술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예술의 혼을 전승하는 기회가 되는 동시에 새로운 서예미술 문화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자 한다”고 김 회장은 말한다.
‘백야(白夜)’라는 자신의 호에서도 알 수 있듯 김 회장의 일상은 언제나 해가지지 않는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마음 편하고 좋다는 그는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에도 열심이다. 교통사고를 당한 지역민을 위해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가 하면, 향우회까지 칭찬이 자자할 정도로 봉사와 선행이 몸에 배었다. 이 모든 것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값진 유산이라고 김 회장은 귀띔한다.

“교직에 근무하던 부친께서 6·25사변 후 국민대학교 법대에 진학해 경찰공무원을 하시며 진도군 소재 지산중학교 육성회장을 역임하였다. 2남5녀 중 차녀로 태어난 나는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 시골에서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며 4H연합회 활동과 봉사에 참여하였다. 아마도 이때의 경험이 초석이 된 것 같다”고 김 회장은 소회한다.

만학도로 김포전문대학교를 졸업하고 부천대학교에 편입·졸업한 김 회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수원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해 학위를 수여하는 등 끊임없이 자기계발에 매진하였다. 이런 도전정신은 고스란히 자녀들에게도 전해져 온 집안이 배움의 열정으로 똘똘 뭉쳤다고 김 회장은 웃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늘 곁에서 응원해준 남편 김현재(68) 씨의 외조 덕택이라며 늘 자신을 지지하고 격려해준 남편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저작권자 © 시사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