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 한 발 먼저 느끼고 싶다면, 이곳으로

봄이 오고 있음을 가장 먼저 알리는 ‘매화’는 이른 봄, 눈이 채 녹기도 전에 꽃망울을 터뜨린다. 해마다 섬진강변에서는 남녘의 봄소식을 알리는 매화축제가 전국에서 가장 먼저 개최된다. 아직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도시가 너무 차갑게 느껴진다면, 광양과 하동으로 이어지는 섬진강을 따라 떠나보자. 향긋한 매화꽃 향기와 따듯한 봄기운을 한 발 먼저 만날 수 있다.

 
꽃길따라 물길따라 ‘매화 여행’

섬진강은 지리산 자락에서 흘러드는 물줄기를 모아 남해로 흘려보낸다.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의 애환을 담고 흘러온 섬진강을 남해에서 바라보면 물줄기 왼쪽으로 전남 광양이, 오른쪽으로 경남 하동이 닿는다. 섬진강변을 따라 광양과 하동을 여행하다보면 어느새 봄이 코앞에 다가와 있다.

우리나라에서 매화로 가장 이름난 곳은 섬진강변이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매화축제가 펼쳐지는데, 80년 전 섬진강변에 심기 시작한 매화가 군락지로 형성되면서, 처음에는 지역민들이 자율적으로 개최해 온 매화축제가 어느덧 18년차를 맞이했다. 축제가 열리는 광양 다압면 섬진마을은 매화가 하도 많아 흔히 ‘매화마을’이라 불린다.

‘광양국제매화축제’는 매년 축제 기간 동안 70만 명, 매화 개화 시기인 한 달 동안 110만 명이 찾는 전국적인 축제다. 매화향 그윽한 ‘매실의 고장 광양’에서 올해에는 ‘봄 매화, 여름 매실로 우리 함께 힐링합시다’라는 주제로 3월14일부터 9일간 축제가 열린다. 특히 지난해 성공적으로 개최한 국제 축제 원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 전통예술 공연과 문화 교류 행사로 광양만의 독특한 맛과 멋이 있는 축제로 치러질 예정이다.

축제시기와 만개시기를 딱 맞추기는 어렵지만,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는 섬진강과 양지 바른 곳에 터를 잡은 매화들의 꽃잎만으로도 볼거리는 충분하다.

먼저 매화마을부터 한 바퀴 돌아보면, 매화마을 초입에서 ‘광양국제매화문화축제’ 안내책자를 챙기는 것이 먼저다. 초입 안내에는 더 자세한 트래킹 지도가 준비되어 있다. 축제 기간이 아니라면 안내판으로 대신하면 된다.

‘낭만으로’, ‘사랑으로’, ‘소망으로’, ‘추억으로’ 등의 산책로는 모두 15분에서 30분 정도면 걸어볼 수 있다. 대부분의 코스가 매화마을의 원점으로 꼽히는 청매실농원과 닿는다. 청매실농원 뒤로 자리한 대숲을 지나 만나는 전망대는 절대 놓치지 말아야할 포인트. 청매실농원에 자리한 수천 개의 장독대와 함께 매화 그리고 섬진강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 ‘뷰포인트’다.

매화마을 곳곳에 영화나 드라마 촬영장소로 선택된 공간이 제법 있다. 드라마 ‘다모’의 초막, 영화 ‘취화선’의 왕대숲을 기억해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매화마을을 꼼꼼히 둘러보려면 두어 시간이 걸린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손꼽히는 곳은 청매실농원이다.

매화마을에서는 청매실농원을, 청매실농원하면 흥쌍리 여사를 빼놓을 수 없다. ‘매실박사’라 불리는 흥쌍리 여사는 지금의 매화마을 농원을 만든 장본인이다. 농원 마당은 장독대로 가득 차 있는데, 매화 뿐 아니라 매화나무 열매인 매실 역시 귀하신 몸이다. 꽃이 피고 지면 5월 말에서 6월 중순 매실이 익는다.

중국이 원산지로 알려진 매실은 삼국시대 때 우리나라에 전해져 고려시대부터 약재로 사용됐다고 전해진다. 이곳에서는 술이나 장아찌, 음료수로 맛볼 수 있다.

 

시골정취 물씬 느껴지는 ‘도선국사마을’

광양에서 또 가볼만한 곳이 있다면 ‘도선국사마을’이다. 광양읍에서 백운산자연휴양림을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도선국사마을은 우리네 시골 풍경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농촌전통 테마마을이다.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따뜻한 봄바람이 관광객들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우선 오래된 약수터인 사또약수터에서 시원하게 약수 한 모금을 마시고 나면, 먼 길을 오느라 허기진 관광객들에게 더없이 반가운 전통 순두부집이 바로 옆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곳에서는 큼지막하게 잘라져 나온 순두부와 도토리묵을 동동주 한 사발과 함께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도선국사마을에는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민박집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고, 마을 곳곳에는 오래된 우물터와 옛집 담장이 있어 옛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시골의 정취와 함께 다양한 농촌체험도 즐길 수 있다. 우선 계곡의 맑은 물과 풍부한 일조량으로 맛과 향이 뛰어난 백운산 야생녹차(도선선차) 만들기와 다도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통일신라 말 뛰어난 고승이자 한국풍수지리의 대가인 선각국사 도선이 마을 건너편 자락인 백계산 옥룡사에서 35년간 머무르면서 동백꽃과 더불어 야생차를 심었다. 그 이후 명맥을 이어온 야생녹차를 이용해 일반인들에게 다도체험의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다.

관광객들에게는 야생녹차 밭에서 찻잎을 따고 체험장에서 수제 차를 만들어 다도를 배우는 체험을 통해 심신을 충전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도자기 만들기, 전통 순두부 만들기, 고로쇠 된장 만들기 체험 등 가족끼리 오순도순 즐길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체험을 마치고 인근의 백운산 자연휴양림에 찾아가면 맑은 공기를 마시고 황톳길을 걸으며 자연과 하나 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또 3월초에는 ‘백운산 고로쇠 약수제’도 열려 볼거리를 더한다. 이 행사는 예로부터 신비의 약수로 인기가 높은 백운산 고로쇠 약수를 소재로 1981년부터 시작됐다.

백운산 산신에게 올리는 제례와 축하행사가 열리며 식전 전통의식 행사, 약수제례, 식후 공개행사 등 관광객들과 시민을 위한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

백운산 고로 약수의 유례는 통일 신라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선국사가 백운산에서 오랜 참선 끝에 일어서려 하였으나 무릎이 펴지지 않자, 곁에 있는 나무를 잡고 일어서다 나무에서 흐르는 수액을 받아먹고 곧장 무릎이 펴졌다 하여, 뼈에 이로운 물이라는 의미로 ‘골리수’라 불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 삼국시대에 적군에게 쫓긴 백제 병사들이 백운산을 넘어 목말라 하던 중에 고로쇠 나무에서 흐르는 약수물을 마시고 원기를 회복해 적군을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약수제례는 남도의 영산인 백운산 산신에게 고장의 안녕과 발전, 고로쇠 약수가 풍성하게 나오기를 기원하는 전통제례로 술 대신 고로쇠 약수를 제단에 올린다.

실제로 고로쇠 약수는 마그네슘, 칼슘, 자당 등 다양한 미네랄 성분이 함유돼 이뇨, 변비, 위장병, 신경통, 습진 등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봄기운이 더욱 완연해지면 인근 옥룡사지 동백림을 찾아가는 것도 좋다. 만개한 동백꽃을 감상하며 연인과 사랑을 속삭여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모두 둘러본 후 배가 고프다면 광양의 대표적인 향토음식 ‘광양숯불고기’를 먹어야 한다. 참나무 숯을 이용해 구워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별미다.

 

 
봄이 짙어질수록 더 빛나는 ‘하동’

전남 광양과 마주하고 있는 경남 하동은 봄에 특별히 빛나는 곳이다. 아직 겨울바람이 남아있는 3월이지만, 다음 달부터는 ‘화개십리벚꽃길’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흩날리고, 5월에는 푸르른 차밭에서 야생차 향기가 날아들 것이다. 하동은 다가올 찬란한 봄을 준비하고 있다.

하동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섬진교쪽으로 15분 정도 걸으면 키 큰 소나무들이 보기 좋게 우거진 하동송림이 나온다. 옆으로는 섬진강이 흐르고, 강 하나를 건너면 광양 땅이다.

하동송림은 지역주민이 섬진강의 강바람과 모래로 피해를 보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성된 소나무 숲으로, 송림 옆으로는 자전거 도로가 닦아져 있어 강바람과 솔나무 향을 맡으며 휴식을 취하기에 제격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하동하면 ‘쌍계사’와 ‘차’, ‘청학동’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조금 더 조용하고 이색적인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청학동 마을과 인접한 삼성궁을 둘러보자. 삼성궁 입구에서 산길을 걸어 올라가면 돌무더기로 된 작은 문이 나타나고, 징을 세 번 치고 기다리면 도인이 나와 길을 안내한다. 작은 문으로 들어가 짧은 나무 터널을 통과하면 눈앞에 신기한 광경이 펼쳐진다. 족히 천여 개가 되어 보이는 크고 작은 돌탑들과 여기저기 서 있는 장승들, 돌로 쌓여진 기단 위에 환인, 황웅, 단군을 모신 전각이 있고 더 길을 따라 가면 청학루, 성지순례길을 지나 삼성궁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

한편 쌍계사는 화개면 운수리에 위치해 있다. 화개에서 쌍계사로 들어가는 길은 3월보다 4월과 5월에 더욱 아름답다. 4월에는 벚꽃으로 명성이 자자하고 5월에는 연둣빛 이파리가 청량하다. 9층 석탑과 진감선사 대공탑비, 소박하게 한 구석에 위치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마애불은 쌍계사의 빼놓을 수 없는 문화재다. 대웅전까지 둘러보고 시간이 남는다면 금당과 국사암, 불일폭포까지 여유 있게 등산하는 것이 좋다. 1시간 반 정도 산길을 걸으면 지리산 10경 중 하나로 꼽히는 ‘불일폭포’를 만날 수 있다.

 

다도해 물들이는 ‘금오산 일출’

일출을 바라보며 새해 다짐을 한지 벌써 두어 달이 지났다. 기왕 하동을 찾았다면, 금오산 정상에서 다도해의 일출을 바라보며 신년 다짐을 되새기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아직 사람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금오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장쾌한 풍경은 동해의 여느 일출 명소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

금오산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군사시설이 들어서 있던 곳이라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웠다. 지금은 군사시설이 대부분 이전해 통제가 없어졌지만 일부 등산 애호가나 지역민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찾는 이들이 드물어 여유롭다.

금오산 정상은 해발 849m로 북한산 백운대 836.5m보다 높다. 결코 낮은 산이 아니지만 주변에 1,000m가 넘는 봉우리가 첩첩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금오산의 정상에 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동군 청소년수련원을 들머리로 왕복 4시간가량 걸리는 등산로를 이용하거나 정상까지 차량으로 바로 오르는 것이다. 차량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금오산 일출여행의 큰 장점이자 매력이다. 금오산 정상에는 송신탑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바로 아래 헬기장 옆에 정상석을 세웠다. 정상석에는 두 개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금오산과 소오산이다. 옛날에는 곡식을 쌓아둔 노적가리처럼 생겼다 해서 ‘소오산’이라 불렀다 전해진다.

일출은 전망데크에서 보는 것이 좋다. 금오산의 3월 일출은 6시 30분에서 7시 무렵이다. 방아섬, 굴섬, 솔섬 등 수많은 섬들이 적당한 간격으로 올망졸망 정답고 멀리 창선대교도 눈에 들어온다. 헬기장에서는 지리산 천왕봉과 반야봉, 노고단도 볼 수 있다.

일출을 보고난 후에는 하동포구공원, 평사리, 화개장터 등 19번 국도를 타고 섬진강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코스를 따라가는 것도 괜찮다.

특히 화개장터 인근의 하동군 악양면에는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의 고장이 있다. 바로 ‘평사리 마을’인데, 소설 배경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최 참판 댁’이 단장을 하고 여행객을 맞이하고 있다. 최 참판 댁 뒤로는 고소산성 군립공원이 있어 섬진강 굽이를 내려다보기에 더 없이 좋다. 이곳 악양면 일대는 한 눈에 보아도 평온함과 복스러움이 가득한 땅임을 알 수 있다. 산자락에 약간 올라 앉아 시원한 조망을 선사하는 마을 위치에서 동화 속 ‘평화로운 마을’이 이런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산과 강 사이에 드넓게 자리 잡은 들판을 안고 있는 까달게 예부터 넉넉한 살림이었음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 되면서 평사리마을과 마을 앞 편의 넓은 대지가 내려다보이는 터에 한옥이 여러 동 자리했다. 최 참판 댁 입구에서 갈라진 도로를 따라 동네 뒷산에 오르면 한산사라는 사찰을 지나, 산성에 올라서게 된다.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이곳 산성은 높이 3~4m의 성벽이 산자락에 빙 둘러쳐져 있고, 그 성벽 위를 오를 수 있다. 성벽위에 올라서면 돌틈 사이를 비집고 소나무 한 그루가 홀연히 서 있어 신비로운 기운마저 풍긴다. 발아래 펼쳐진 섬진강과 평사리의 풍광도 쉬이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한다. 고소산성은 하동의 여느 관광지보다 덜 알려진 편이지만, 섬진강변을 구경하는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아름다운 산세에 폭 안긴 ‘청학동’

단정하게 도포를 입고 머리를 길게 땋은 훈장 선생님을 떠올리게 하는 청학동. 시간이 멈춘 듯 한 이곳에서는 미성년 남녀가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길게 땋아 늘어뜨리며, 성인남자는 갓을 쓰고 다닌다. 청학동은 해발 800m의 지리산 중턱에 위치해 사뭇 섬진강변의 분위기와는 다르다. 특히 겨울철 눈발이라도 날리면 산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 고운 최치원 선생이 은거하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하동호화와 묵계저수지를 지나 청학동 계곡을 따라 가다 보면 아름다운 산세를 자랑하는 청학동이 있다. 이곳은 유, 불, 선 세 가지 종교와 사상을 한데 모은 종교를 믿는 마을이다. 댕기머리를 떠올리게 하는 청학동이지만, 최근에는 그 옛날의 정취를 그대로 느끼기에는 조금 아쉬움이 있다. 주민 대부분이 민박과 식당, 도시 아이들의 예절 교육 장소로 새롭게 모습을 갖춘 서당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서당에서는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온다. 그냥 휙 둘러보기에는 아쉬움이 남을 수 있으니, 마을 어른들의 몇 마디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여행의 의미를 더하는 방법이다.

지리산 자락에 둘러 싸여, 섬진강 물이 유유히 흐르는 하동과 광양에서 새봄을 맞이하는 여행을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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