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실내건축가협회 김경숙 회장, “마지막 봉사라는 마음으로 협회의 실질적 성장 이끌 것”

복잡한 퍼즐조각으로 한 폭의 멋진 그림을 만들 때, 퍼즐조각은 꼭 있어야 할 자신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작품이 완성된다. 자신이 잘났다고 퍼즐 판을 독차지 할 수 없고 남의 자리에 앉아서도 안 된다. 이러한 퍼즐의 원칙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기도 하다. 실내건축가협회 또한 업계의 내로라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지만, 각기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아름다운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김경숙 회장 또한 지난 22년의 세월동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협회 발전을 위한 시간을 보냈고, 켜켜이 쌓인 시간만큼 애정도 깊어갔다. 이제는 지난 시간동안 쌓아온 자양분으로 탐스러운 열매를 거둬들일 때이다.  

 
실질적인 현안 해결로 회원들에게 도움 줄 것

제19대 한국실내건축가협회장 취임과 함께 한양대학교 디자인대학 학과장을 맡은 김경숙 회장은 요즘 하루가 24시간인 것이 아쉽기만 하다. 단 한 시간도 허투루 보낼 틈 없이 바쁘지만 협회에 대한 남다른 열정은 그 시간조차 비껴간다.


김경숙 회장은 “그동안 협회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모두 접목해 회원들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펼칠 계획”이라며 “22년 동안 협회와 동고동락했고, 이번이 마지막 봉사라는 마음으로 협회를 이끌어가겠다. 겉으로 드러나는 업적이 아닌 회원들의 실질적인 현안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댈 것이고, 업계에 만연해 있는 불합리한 문제점들을 순차적으로 풀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회장은 이를 위해 회원 간의 소통과 신뢰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난 1979년에 설립된 한국실내건축가협회는 그야말로 ‘한 걸음씩’의 노력이었다. 회원 한 명 한 명의 힘이 모여 매 순간 한 걸음씩 나아가다보니, 오늘날 업계를 대표하는 협회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는 회원들의 진정성이 저변에 깔려있지 않으면 안 된다.


김경숙 회장은 이러한 회원들의 진정성을 등에 업고 협회의 비전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추동력을 발휘할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회원들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 그들의 현안과제를 조속히 해결해 주고, 외부적으로는 대의명분에 맞게 공익을 위해 봉사하고 올바른 존재로서의 가치를 추구하고자 한다.


또한 회원들의 소속감과 자부심을 더해주고 늘 나오고 싶은 협회로 만들기 위해 회원들의 취미활동 모임을 활성화시키고자 한다. 자주 만나서 소통하고 정보를 공유하다보면 그 속에서 정도 쌓이는 법. 회원들의 소소한 행복이 향후 협회의 가장 중요한 버팀목이 될 것이라는 게 김 회장의 생각이다. 협회는 이들이 상생할 수 있는 커뮤니티의 장을 만들어주고 울타리를 쳐 서 회원 모두가 협회 공동체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대학 강의가 산소 같은 휴식이었다”

 
우리가 김경숙 회장의 삶을 조명해 보는 것은 비단 그녀가 한국실내건축가협회의 수장이 되어서가 아니다. 사실상 디자이너와 교수의 최접점에서 경제와 교육을 넘나드는 그녀의 삶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들이 잊고 있었던 순수함과 열정 등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1970년대 우리나라에는 실내디자인학과가 거의 없어, 김경숙 회장은 건축계 지인의 도움으로 
독일 비스바덴 국립조형대학 실내디자인학과로 유학길에 올랐다. 그녀는 이곳에서 선진화된 건축과 실내디자인을 함께 공부할 수 있었고, 학사와 석사(디플롬 엔지니어)를 취득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이었다.
어린 나이에 독일에서의 유학생활이 녹록치 않았지만, 그때 유럽생활과 여행을 통해 체득한 경험이 창조적 디자인에 물꼬를 터주고 그녀를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들었다. 오늘날 김경숙을 만든 것은 학교에서 배운 지식보다 그때의 잔상이 더 짙은 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졸업 후 독일 에쎈(Essen)에서 3년 동안 디자이너 생활을 통해 실무를 익힌 뒤, 1992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론을 공부하고 실무를 익혀 당당히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여성의 꼼꼼함과 세심함에 긍정적인 성격, 다양한 경험까지 더해 탄탄대로를 달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실무를 할수록 독일과는 또 다른 한국의 특성을 간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충분한 설계기간을 두고 완벽한 시공이 이루어질 때까지 여유롭게 기다려주는 독일에 비해 우리나라는 ‘빨리, 튼튼하게, 예쁘게’ 시공이 되기를 바랐다. 이 어려운 과제에 적응하기까지 조금의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그녀는 주거, 오피스, 상업공간, 전시관, 리테일, 예술회관 등의 다채로운 디자인 분야를 섭렵하며 디자이너로서의 입지를 굳혀갔다.


그렇게 5년여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오로지 일에만 집중했다. ‘김경숙’이라는 조금씩 알려지자  물밀 듯 밀려오는 프로젝트에 심신이 지쳐가기 시작했다. 풍요 속에서도 고달픈 삶의 편린은 곳곳에 숨어 있다는 말이 실감났다.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때쯤 그녀에게 대학 강의가 들어왔다. 그녀는 첫 강의 때를 다음과 같이 기억했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강의에 몰두하는 학생들을 보고 있으니 저절로 에너지가 충전되는 듯했고, 강의시간이 내게는 산소 같은 휴식처럼 느껴졌다.”


이후 김경숙 회장은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성공하느냐 후학양성에 집중하느냐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다 실내디자인 전공과 해외에서의 실무경력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그들을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키우는 것도 아주 보람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세상에 디자인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김경숙 회장이 한국으로 돌아온 1992년부터 그녀는 한국실내건축가협회에 참여했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한국 실내건축의 발전을 견인하기 위해서는 콘트롤타워가 필요했고, 한국실내건축가협회가 그 역할을 해 낼 것이라 믿은 그녀는 오늘날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협회의 문을 들어서고 있다. 소중함과 애정… 이러한 단어로는 표현이 안 될 만큼 한국실내건축가협회는 그녀에게 있어 고향과 같은 존재다. 이곳에서 ‘화합과 교류를 앞세운 책임과 봉사의 정신’으로 회원들을 통섭해 모두가 상생하자는 것이 김 회장의 복안이다.


“향후 인테리어디자인 분야는 디자인으로 삶의 터전을 개선하는 선도자의 역할을 할 것”이라며 장밋빛 비전을 밝히는 그녀는 “순수함을 잃지 않는 창의적 디자인이야말로 창조경제의 제1요소”라고 말했다. 더불어 그녀는 “한국실내건축가협회는 소통과 단합을 통해 회원들의 권익신장과 능력향상을 이끌 것이며, 실내디자인학회와 실내건축공사협의회와의 협력관계도 더욱 공고히 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것”이라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라이선스 제도 역시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빅토르 위고는 ‘사람에게 부족한 것은 강인함이 아니라 의지력’이라고 했다. 김경숙 회장이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의지력으로 하나하나 자신의 파이를 넓혀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녀는 협회에서도 그렇게 간절한 의지력을 바탕으로, 회원들에게는 포근한 울타리가 되어 주고 외부적으로는 한국실내건축의 경쟁력 강화와 세계화를 이끌어 갈 것으로 기대된다.


왜냐하면 김경숙 회장은 “세상에 디자인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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