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 없는 방송계에서 200여 편 넘는 드라마 제작

TV방송이나 드라마 또는 영화 촬영에 있어서 카메라와 조명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밀착해 있다. 아름다운 영상의 독특한 분위기는 모두 조명이 담당한다. 예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이나 세련되게 다가오는 현대적 감각은 모두 배우와 사물에 어떤 빛깔의 조명을 비추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무엇보다 탤런트나 배우의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야망과 열망, 신념에 찬 의지와 총기 그리고 영혼을 울리는 생동감은 모두 카메라 포착 이전에 배우의 눈동자에 빛을 더하는 조명의 몫이다. 이를 통해 안방극장 시청자와 영화 관객들은 뭉클 감동에 젖기도 한다.

   
 
지난 1973년 당시, 20세 약관의 나이로 최연소 조명감독에 등극해 지금까지 30년간 200여 편이 넘는 드라마를 촬영하고, 수많은 후진을 양성해낸 김광수 조명감독이 건재해 있다. 그만의 독특한 자존감으로 오는 2015년 3월2일 첫 방송 되는 KBS 2TV 아침 드라마 <그래도 푸르른 날에> 촬영현장에서 조명팀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충남 아산시 외암민속마을에서 촬영 중인 TV소설 <그래도 푸르른 날에>는 195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다. 과거 MBC TV 하이틴 드라마 <마지막 승부>로 종전의 히트를 기록한 김지수 작가가 극본을 쓰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 <산너머 남촌에는> <천상여자> 등을 연출한 어수선 감독이 총연출을 맡았다.
이 아침 드라마는, 처첩이 한 날 동시에 아이를 출산하는 데서 비극이 시작된다. 첩실 김명주(박현숙 역)는 문간방에서, 본처 정애심(윤해영 역)은 안방에서 아이를 낳는다. 그 과정에서 크나큰 설움을 받던 첩실 김명주(박현숙 역)가 자신이 낳은 딸 장은아(정이연 역)와 본처가 낳은 딸 이영희(송하윤 역)를 바꿔치기 한다. 부친이 죽고 없는 본가에서 뒤바뀐 운명을 맞아, 모진 구박과 설움을 받아야 했던 주인공 이영희는 10대 시절부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다가 결국 인생역전을 이룬다. 이렇게 ‘이영희’란 인물은 6.25동란 당시 시대의 굴곡을 헤쳐 나온 ‘한국의 모든 여성’을 표상하며, 삶과 사랑과 성공의 길을 제시한다.
아침드라마 시청률 20%대 도약을 기대하고 있는 김광수 조명감독은 1954년생이라 그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와 배경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다. 그는 “총연출을 맡은 어수선 감독님은 본래 인간미가 녹아나는 휴머니즘 드라마를 제작하는 데 남다른 조예를 가지고 있다. 연출의 귀재다. 따뜻하고 훈훈한 인간미를 잘 살리고, 밀도 있게 인간심리를 이끌어내어 시청자의 공감대를 높이는 데 탁월한 감각이 있다. 뿐만 아니라 시대의 변화와 이해를 통해 추억의 드라마를 선사한다. 여기에 카메라와 조명팀이 호흡을 맞추어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들려준다.
현재 드라마 초반부인 1955년을 배경으로 처첩이 갈등하는 가정사를 야외에서 촬영하고 있다. 지난 12월부터 드라마 제작을 위한 지속적 논의가 이루어졌고, 총연출로 어수선 감독이 내정되었다. 이에 따라 카메라와 조명 등 8개 분야 스태프가 구성되었고, 지난 2월6일부터는 외암마을에서 첫 촬영이 진행되었다. 어수선 연출과 김광수 조명감독 모두 1950년대에 출생해, 파란 많은 한국사 격동기를 살았던 까닭에 시대를 섬세하게 고증하고 극적 분위기를 연출하며 화면영상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최고’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이렇게 정년퇴직 없는 방송제작 현장에서 30여 년 넘게 현역으로 복무(?)해온 김광수 조명감독은 고교시절 영화배우가 되는 게 꿈이었다. 친구의 소개로 ‘연방영화사’에 입사한 그는 1973년 <탄생>이란 영화에서 조명 스태프로 현장 수련을 쌓다가 1980년대 컬러TV 시대가 도래하자 KBS 방송국으로 이직하게 된다. 총 천연색 영상화면을 제작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의해 영화계에서 전문 조명기술을 습득한 김광수 감독은 KBS 방송국 제작단으로 옮겨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 그리고 1975년 <대관령>이란 드라마를 촬영하며 대한민국 최초의 최연소 조명감독으로 등극한다.
이후 KBS 드라마 <첫사랑>을 비롯해 <왕과 비> <명성황우> <바람의 아들> <태양인 이제마> <근초고왕> 등의 대하사극은 물론, 한류의 신기원을 이룩한 <겨울연가> <여름향기> <봄의 왈츠> 등의 제작현장에 참여해 200여 편 넘는 드라마 작품을 완성하게 된다. 
그는 “조명기술을 위해 필요한 라이트를 갖추는 데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후배를 키우는 데도 정성을 쏟았다. 현재 방송계에 진출해 있는 대다수의 조명감독들이 당시 함께 일하던 후배들이다. 일일극이나 주말극인 경우 촬영의 절반은 스튜디오에서, 또 절반은 야외현장에서 진행한다. 그래서 유독 출장이 많은 직업이다. 아침드라마나 미니시리즈의 경우는 한 달에 20일 가량 출장 가는 일이 많다. 대략 6개월간 진행된다”고 작업의 강도를 설명한다.
그중 그가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은 역시 조명이다. “촬영에 들어가기에 앞서 대본을 먼저 분석한다. 이 작품은 어떠한 색깔과 분위기로 가야할지 조율한 후 조명을 갖춘다. 카메라와 함께 호흡을 맞춰야만 좋은 영상을 얻을 수 있다. 특히 연기자의 눈동자에서 발산되는 ‘생기발랄하고 신념에 찬 의지의 빛’을 만들기 위해 섬세하고 민감한 라이트를 쓴다. 여기에 각도가 제일 중요하다. 10년 이상 현장에서 숙련돼야 눈동자에 빛을 줄 수 있는 기술이 생긴다. 그리고 배우의 행동에 따라 조명의 각도와 색깔을 달리하며 밝기를 조절할 줄 알게 된다”고 들려준다. 
특히 조명을 다루는 방송 작업은, 개인이 혼자 진행하는 분야가 아니기에 팀워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같이 일하는 다른 분야의 스태프와 서로 돕는 협동심, 그리고 상호 신뢰하고 믿어주는 의리와 이해심 등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그런 그가 ‘군중 속의 고독’과 같은 방송제작 현장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가장 큰 힘은 역시 ‘시청자의 호응’이라고 귀띔한다.
“제작비 부족과 야외촬영현장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시청률이 30% 이상 올라가면 새 힘이 솟아난다. 그간의 노고나 어려움, 피로나 부진함은 눈 녹듯 사라지고 일에 대한 열정이 생긴다. 그런 맛에 현장을 고수하며 밤샘 작업을 한다”고 들려주는 김광수 조명감독. 지금까지 30여 년간 방송제작 현장을 명예롭게 지켜온 만큼 앞으로 남은 시간도 보람되게 마무리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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