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적 ‘미투 제품’ 출시…엎치락뒤치락

국밥집에도 원조 논란이 있듯 제과업계들도 원조 따라잡기에 여념이 없다. 지난해부터 열풍을 넘어서 광풍을 불러일으킨 ‘허니버터칩’ 이야기다. 원조 제품은 초기에는 미투 제품보다 판매율이 앞서고 인기를 유지하지만, 가끔은 미투 제품에 1위 자리를 내주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허니버터칩이 출시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허니버터칩을 손에 쥐기는 여전히 하늘의 별따기다. 대형마트를 찾아도 이미 품절사태. 과자 진열대에 들어서 허니버터칩인 줄 알고 재빨리 달려가 제품을 짚어들어도 알고 보니 허니버터칩과 비슷한 미투 제품인 경우가 많다. 얼핏 보면 똑같은 제품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표와 내용이 다르다. 경쟁사 뿐 아니라 원조 기업도 비슷한 미투 제품을 시장에 내놓으며 뜨겁게 경쟁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출시된 허니버터칩은 ‘다양성’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최근 트렌드를 반영해 기존 감자칩에서 볼 수 없었던 달콤함을 가미했고, 10월 이후 4개월째 생산되는 제품이 즉시 품절되면서 매월 75억 원가량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해태제과가 허니버터칩의 품귀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올해 초 출시한 허니통통도 1월 한 달 동안 38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허니버터칩과 허니통통으로 한 달간 110억 원의 매출을 달성한 것이다. 통상 월 매출 10억 원 이상이면 히트한 것으로 보는 업계에 따르면 허니버터칩과 허니통통은 초대박상품이다.
이처럼 ‘허니’ 강풍이 과자업계를 뒤흔들면서 ‘허니’ 베끼기가 도를 넘고 있다. 경쟁사의 히트 상품을 따라서 출시하는 ‘미투(Me too)’ 마케팅이 단순한 마케팅을 넘어서 베끼기 수준으로 변질되면서 과자업계 전체로 퍼져나갔다. 유통업계에서는 이미 미투 마케팅이 관행처럼 굳어지고 있다.

최근 해태제과의 허니버터칩이 대박을 터뜨리자, 농심 등 경쟁사들이 일제히 유사 제품을 출시하면서 미투 논란에 불씨를 지피고 있다. 원조제품은 초기에는 미투 제품보다 먼저 인기를 끌고 높은 판매율을 보이지만, 가끔은 미투 제품에 1위 자리를 뺏기기도 한다. 허니버터칩도 농심의 수미칩 허니머스타드 공세에 주춤하는 모양새다. 제과업계 1위인 롯데제과도 당초 미투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 없다고 못 박았지만 꿀을 넣은 달콤한 맛의 ‘꿀 먹은 감자칩’을 출시하고 간판제품인 고깔콘의 ‘허니버터맛’도 내놓았다.
감자칩 시장의 50%를 점유하고 있는 오리온도 포카칩 스위치즈 맛을 선보였고 대형마트인 이마트와 홈플러스도 각각 피코크 프리미엄 포테토칩과 케틀칩을 내놓았다. 이에 ‘허니’의 원조인 해태는 허니통통, 자가비 허니마일드 등 허니버터칩의 자매품을 연달아 내놓으며 맞불작전을 펼치고 있다.
이처럼 제과업계가 미투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신제품 출시를 위한 초기 시장 분석과 연구 개발비, 조사비용 등 투자금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선두업체가 넓혀 놓은 시장에 뛰어들어 경쟁사보다 적은 자금을 통해 금방 수익을 얻고 시장 진입이 용이해, ‘손 안대고 코 푸는’ 격이다.

   
 

다양한 미투 제품의 경쟁 속에 달콤한 감자칩이 과자 시장을 이끌고 있다. 제과업체간 순위 쟁탈전도 치열하다. 신제품 출시에 따라 선두가 뒤바뀌는 양상이다.
A대형마트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스낵 판매 순위 1위였던 허니버터칩은 같은 해 12월 4위, 올해 1월 3위로 추락했다. 농심이 허니버터칩 인기를 쫓기 위해 4년 만에 새롭게 출시한 수미칩 허니머스타드는 즉시 1위 자리를 꿰찼다. 농심의 안정적인 공급량을 바탕으로 출시 한 달 만에 86억 원 가량의 매출을 올렸고, 지난달에도 선두자리를 지켰다.
또 오리온이 지난해 7월 출시한 포카칩 스윗치즈는 지난해 12월에 이어올 1월에도 2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수미칩 허니머스타드가 3위로 내려앉고 포카칩 스윗치즈가 새롭게 1위를 차지했다. 오리온 측은 포카칩 스윗치즈를 비롯해 포카칩의 지난 12월 매출과 판매량이 109억 원, 900만 봉지에 이른다고 밝혔다. 또 해태에서 내놓은 허니통통이 2위에 등극한 후 허니버터칩은 4위로 떨어졌다.
과거에도 선도업체가 막대한 자금을 들여 신제품을 만들었지만 경쟁사들이 미투 제품을 내놔 원조 업계를 추월한 사례도 많다.
1974년 오리온이 초코파이를 내놓자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고 5년 뒤 경쟁업체에서 잇달아 미투 제품을 출시했다. 현재 초코파이 상표권을 놓고 혈투를 벌였던 오리온과 롯데제과는 해외에서 1위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이다. 1984년에는 코카콜라가 암바사를 내놓았으나 롯데칠성이 5년 후인 1989년 밀키스를 선보이면서 1위 자리를 뺏겼다. 이후 밀키스는 우유 탄산음료 시장에서 줄곧 1위를 지켰다.
삼양식품은 지난 2012년 출시한 ‘불닭볶음면’을 팔도가 베껴 ‘불낙볶음면’을 출시했다며 판매중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 매일유업은 과거 서울우유가 커피음료인 ‘바리스타즈 카페라떼’를 출시하자 상표권 침해라며 1억 원의 소송을 제기했다.


제과 업계뿐만 아니라 화장품 업계도 미투 제품 논란이 끊임없다. 특정 제품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 가격만 다를 뿐 콘셉트나 효과가 비슷한 화장품들이 우후죽순 나타난다.
쿠션제품이 대표적이다. 아모레퍼시픽은 현재 로레알 그룹 ‘랑콤’의 쿠션제품이 자사 제품과 유사하다고 판단해, 특허권 침해 여부를 심사하고 있다. 쿠션제품은 아모레퍼시픽이 최초로 개발했으며 기존 제품과 달리 파운데이션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쿠션 크림을 퍼프로 찍어 바르는 형태라 크게 인기를 끌었다. 지난 2008년 아이오페 에어쿠션이 처음 출시됐다. 랑콤은 지난달부터 프랑스 일부 매장에서 쿠션파운데이션 ‘미라클 쿠션’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아모레퍼시픽은 국내에서도 미투 쿠션제품과 싸우고 있다. 지난 2012년 LG생활건강이 아모레퍼시픽을 상대로 특허등록무효소송을 내면서 시작됐다. 아모레퍼시픽은 1심에서는 졌으나 2심에서는 승소했다. 현재 LG생활건강이 항소해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패션업계에도 예외가 아니다. 영국 브랜드 버버리가 국내 업체 쌍방울 TRY의 남성 속옷이 버버리 고유의 체크무늬를 도용했다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상표권 침해금지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지나달 말 “체크무늬는 버버리것이 맞다”며 버버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경쟁사 제품을 베끼는 것보다 양질의 제품을 개발하려는 업체가 장기적으로는 브랜드와 제품의 신뢰도를 높일 것”이라며 “미투 전략이 시장을 넓히는 효과도 있지만 도 넘은 베끼기 경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어 업계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허니버터칩으로 시작된 바람이 반짝하고 끝날 줄 알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반응이다. 기존의 짠 맛 위주의 감자칩이 서구적인 입맛에 맞춘 것이라면, 달콤한 맛을 더한 감자칩은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것은 물론 나트륨 섭취를 줄이려는 최근 추세와 맞물려 달콤한 감자칩의 인기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갈수록 업체간 신경전이 심화되는 가운데, 어떤 회사가 감자칩 시장어세 우위를 점할지는 원재료, 제품의 수급능력, 소비자들의 선호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기존 감자칩의 일률적인 맛에 식상함을 느끼던 소비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면서 젊은층의 ‘it 아이템’으로 떠오른 허니버터칩의 인기가 한시적으로 끝이 날지,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할지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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