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휘둘리지 않을 ‘을’이 되려면

   
 
“모든 이해는 오해다.” 철학자 니체의 말이다. <도서관 옆 철학카페>의 저자인 ‘임상 철학자 안광복’은 어떤 책을 읽건, 지은이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헤아리기 전에 지금 이 순간 눈앞에 놓인 문제에 철학이 어떤 도움을 주는가를 먼저 생각한다. “나에게 철학은 현실의 문제를 싸워 이기게 하는 ‘무기’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철학 교사의 독법은 독특할 수밖에 없다. ‘하얀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이는 좋은 의도로 책의 내용을 '오해(?)'하며 읽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에게 절실한 ‘철학 처방전’을 내려 삶의 위안을 안겨주기 위해서란다.

     
 
본래 그는 서강대 철학과 동 대학원에서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로써 박사학위를 받은 임상 철학자다. 그리고 인터넷 공간 ‘네이버캐스트’에 연재한 ‘성장을 위한 철학노트’ 원고를 새롭게 다듬어 한 권의 단행본으로 엮었다. 그런 그의 책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죽은 지 몇 백 년이 지난 ‘철학자 세네카’부터 동시대 ‘심리학자 알랭 드 보통’에 이르기까지 철학적 조언을 전혀 고루하지 않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철학의 효용성’과 ‘임상 철학’에 대해 다시 한 번 인식하는 계기를 부여한다. 특히 ‘철학이 현실 문제를 싸워 이기게 하는 무기’라는 것! 결국 사람은 자신이 옳다고 믿고 의지하는 철학적 신념을 바탕으로 ‘인생을 밀고 나가게’ 되어 있기에 그의 그런 조언과 귀띔은 현대인에게 도움이 된다.
과거 한때나마 ‘철학 카페(cafe-philo)’가 세계적으로 유행한 적이 있다. 일반인이 철학 문제를 놓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운동이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며 주입식으로 길들여진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생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래서 ‘그저 단순히 생각하는 사람’에서 ‘보다 심오하게 사색하는 인간’으로 긍정적 진화를 하기 위해 '성장통'을 겪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이 유용하다.
이번에 홍대 입구 허브카페에서 임상 철학자 안광복이 ‘세상에 휘둘리지 않을 을이 되려면’이란 주제로 강연회를 열었다. 그는 현대인은 대부분 가늘고 모질게 ‘을’로 살아야 할 운명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갑’이 나를 일터에서 내친다고 해보라. 나는 나락으로 추락해버릴 것이다. 그러니 어찌 아득바득 일하고 공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안정적인 삶을 살려면 갑이 되거나, 적어도 갑에 휘둘리지 않을 ‘슈퍼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 상황에서 사람들의 삶은 두 갈래로 나뉜다. 죽도록 일해야 하는 몇몇 사람과 일거리를 얻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 그리고 이들이 꾸려가는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다. 한쪽은 엄청난 노동 강도에 비명을 지르고, 다른 한쪽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신산스러운 노력을 이어간다. 만약 튼실한 일자리를 포기하면 어떨까? 프리터(freeter)처럼 욕심을 버리고 최소한의 생계에 만족한다면 근근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철학자 러셀은 이는 무척 어려운 꿈이라고 말한다. 사회의 복지 수준이 형편없어서가 아니다. 문제는 현대인에게 남는 시간을 버텨낼 능력이 없다는 데 있다.
따라서 일자리로 ‘우리’를 쥐고 흔드는 갑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스스로 자신의 자유 시간을 가꿀 능력을 길러야 한다. 여가는 ‘소비’하는 게 아니라 ‘가꾸는 것’이다. 삶을 즐기는 능력을 갖추는 데도 노력이 필요하다. 현대인들은 심지어 모여서 놀 줄도 모른다. TV 속 연예인들이 ‘대신 놀아주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사람을 만나고 여행을 가는 대신, 화면 속에서 남들이 대신 수다를 떨어주고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한다. 이렇듯 오늘날 많은 이들은 여가를 소비할 뿐, 이를 가꿀 능력이 없다.
인류 역사 전체의 관점에서 자신이 놓친 사건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떠올려보라. 지금 자신이 겪는 심각한 갈등이, 과거 영웅들이 벌였던 투쟁만큼이나 가치 있을까? 이렇듯 혜안을 갖춘 사람의 삶은 훨씬 여유롭고 느긋하다.
   
 
“필요한 것은 이것이나 저것이냐 하는 특정한 정보가 아니라 전체의 시각에서 본 인생의 목적에 관한 지식이다. 여기에는 예술, 역사, 영웅적인 사람들의 인생 접하기, 우주 차원에서 볼 때 인간은 한심할 정도로 우연적이고 하루살이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 등이 포함된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의 행복과 디오게네스의 행복’을 비교하며 ‘게으름’을 제대로 누릴 줄 아는 삶을 살도록 조언해 준다. 느긋하게 좋아하는 일을 할수록 영혼은 강하고 튼실해지는 까닭이다. 이를 위해 미식가의 혀를 갖출 때만큼이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세상에 휘둘리지 않는 을이 되는 데에도 성실한 수양이 있어야 한다. ‘갑을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온 세상을 손에 넣어야 행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거지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햇빛 한 줌만으로도 느긋하게 편안할 수 있었다. 세상의 갑들은 현대인에게 알렉산드로스의 야망을 품으라고 외친다. 그러나 견실한 행복을 누리고 싶은 을이라면 디오게네스의 자세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안광복 임상 철학자가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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