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 “매우 유감” VS 새정치 "성역없는 수사해야"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때 국가정보원 심리전단의 인터넷 댓글과 트위터 활동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서울고법 김상환 부장판사(49·사법연수원 20기)는 이날 판결문을 읽기에 앞서 “한 사람의 죄와 벌을 다루는 그 어떤 형사재판도 담당 법관에게 끝없는 숙고와 고민을 요구한다”는 말로 재판장으로서의 깊은 고뇌를 드러냈다. 원 전 국정원장의 실형선고로 여당은 불똥 튈까 몸 사리고 있으며, 야당은 이때다 싶어 총공세에 나선 상황이다.
 

   
 
지난 2월9일, 서울고법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징역 3년과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선고 직후 법정구속된 원세훈 전 원장은 건설업자에게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지난해 9월 9일 만기 출소한 지 5개월 만에 다시 수감된 셈이다.
함께 기소된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과 자격정지 1년을,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 단장은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과 자격정지 1년 6개월을 각각 선고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이 심리전단 직원 김모 씨의 e메일 압수수색 때 확보한 파일의 증거 능력을 추가로 인정해 1심(175개)보다 4배가량 늘어난 716개의 트위터 계정을 유죄 증거로 인정했다. 특히 2012년 한 해 동안의 심리전단 트위터 글 27만여 건의 추이와 내용을 분석해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된 2012년 8월20일을 전후해 선거 관련 글이 정치 관련 글보다 많아지는 역전 현상이 발생하고, 정치와 선거 관련 글의 양이 모두 급증한 점 등을 주요 판단 근거로 제시했다.
재판부는 “2012년 8월20일 이후는 특정 후보 낙선 또는 당선 목적이 미필적으로나마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국정원의 조직 특성상 이런 활동은 국정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원세훈 전 원장은 재판이 진행된 2시간 내내 꼿꼿한 자세로 재판부를 응시했지만 막상 실형선고가 나자 당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재판부가 실형선고를 한 후 발언 기회를 주자 주먹을 굳게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세훈 전 원장은 “저로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앞으로 계속 재판을 받겠다”고 밝혔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재판장인 김상환 부장판사는 “징역형 선고에 따라 구속 사유가 있다고 판단해 이 자리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하겠다”며 단호한 어조로 법정구속을 명령했다. 
한편 원세훈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1, 2심 재판부가 정반대의 판단을 내림에 따라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어떤 결론을 내릴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다른 것에 대한 공격은 갈등과 분쟁 가져와”
원세훈 전 원장의 공직선거법 및 국정원법 위반 혐의를 모두 인정해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시킨 김상환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판결문을 읽기에 앞서 “한 사람의 죄와 벌을 다루는 그 어떤 형사재판도 담당 법관에게 끝없는 숙고와 고민을 요구한다”라며 “독립된 재판부는 알 수 없는 깊은 고독을 느끼기도 한다. 이 재판을 진행하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헌법과 법률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기록에 나타난 증거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성을 다해 탐구하려고 진지한 노력을 다했다”고 말했다.실제로 김 부장판사는 지난 주 판결문 초고를 작성한 뒤 지인에게 “법관은 판결로 말하는 것이다. 법에 따라 판결하면 되는 것”이라는 말을 거듭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 전 원장의 정보기관 선거개입에 대해 강한 경고와 우려를 동시에 나타낸 김 부장판사의 말에서 진정성이 읽혔다. 김 부장판사는 “정보기관의 선거개입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되거나 합리화될 수 없는 문제”라며 “국정원이 솔직한 반성과 깊은 성찰의 결과로 만든 거울 앞에서 이 사건 사이버활동의 적법성을, 그리고 그것이 합리적인 국민에게 어떻게 이해될 것인지 진지하게 따져봤는지 극히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정보기관 관련법 어디에도 선거에 개입할 명분을 주고 있지 않으며, 어떤 측면에서도 용인될 수 없고, 선거 과정과 무관하면 무관할수록 정보기관에 대한 신뢰가 생길 것”이라며 “어떠한 국가기관도 법치 영역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안보환경이 급변해 이에 대응할 절박한 필요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법의 체계에서 그 활동이 허용될 수 없다면 국회의 동의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또한 김 부장판사는 2시간 가까이 판결문을 읽으면서 논어의 ‘위정’편을 인용하기도 했다. 그는 “논어의 ‘위정’편에서 공자는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해 공격한다면 이것은 손해가 될 뿐’이라고 했다. 나와 다른 쪽에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배척한다면 결국 자신에게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의미이고, 이는 다른 것에 대한 공격과 강요가 결국 심각한 갈등과 분쟁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경고를 의미한다"고 강조했다.‘강골판사’로 알려진 그는 박근혜 대통령 5촌간 살인사건 의혹을 보도해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주진우 시사인 기자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의 항소심 재판을 맡아 이들에게 1심과 같이 모두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또 SK그룹 총수 형제의 횡령 사건에 공범으로 가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에 대한 항소심을 맡아 1심보다 1년 높은 징역 4년6월을 선고하기도 했다.
 

새누리 “매우 유감” VS 새정치 "성역없는 수사해야"

   
 
원세훈 전 원장의 유죄 선고를 두고 여야의 반응이 확연히 엇갈렸다.
새누리당은 자칫 이번 판결로 불똥이 튈 것을 우려해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여 원 전 원장의 1심 판결 당시 ‘야당의 정치공작’을 운운하며 강력한 공세에 나선 것과는 대조를 이뤘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사필귀정’이라며 박근혜 정권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새누리당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판결 직후 서면 브리핑을 통해 매유 유감이라는 뜻을 밝히며  “국정원은 국가의 안위를 위해 정보활동을 해야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엄정 중립을 지켜야 하는 국가 기관”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국정원은 이같은 잘못이 다시는 재발되지 않도록 심기일전하고 재발방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새누리당은 국정원의 정치중립을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이날 오후 주한외신기자간담회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어떤 경우에서든지 사법부의 판단은 존중한다”라며 “2심이 1심과 달리 판결된 부분은 한마디로 어떻게 말하기가 힘들다”라고 답을 아꼈다.

이에 반해 새정치연합 ‘국정원 대선개입 무죄공작저지 특위’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죄인은 감옥으로라는 지극히 일반적인 상식을 확인해준 판결”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국민은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자행한 헌정 유린과 국기 문란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며 ”국민은 청문회든 특검이든 오로지 진실만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사건 초기에는 그런 일이 없다고 하다가 증거가 나오자 개인적 일탈로 치부하고, 원 전 원장이 기소가 되니 재판 결과를 보자고 했다”라며 “이명박 정권에서부터 댓글 사건을 적극 은폐하고 축소한 박근혜 정권까지 성역없는 수사와 진상규명, 처벌,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공세를 퍼부었다.
새정치연합 유은혜 대변인은 사필귀정이라고 평가한 뒤 “박 대통령은 국정원 대선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며 “박 대통령은 권력기관의 대선 개입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앞으로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분명한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유 대변인은 “국가기관이 불법으로 지난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법적으로 인정된 만큼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지난 몇 년 동안 ‘원세훈 수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있었으나 결국 유죄판결을 받았다. 사안이 사안이니 만큼 재판부도 장고했으리라 생각된다. 대법원의 최종 결론이 남아있지만 법의 잣대 속에서 냉철한 결과가 나왔고, 이를 교과서 삼아 다시는 ‘정보기관의 선거개입’이라는 미개한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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