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과 권력 위해 기회주의 편승하는 김정은 체제

 한반도 평화는 북한의 비핵화와 체제구도 변화를 담보로 한다. 그들의 남침과 도발을 제어해야만 남한의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북한의 권력구도와 변화에 이목을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2010년 부자세습을 견인할 북한의 후견정부가 모습을 드러낸 후 김일성-김정일-김정은에 이은 세습통치가 지속적으로 가동되고 있다. 김정일을 주축으로 한 부자세습을 견인할 후견정부는 김경희-장성택 라인의 친족후견인들을 추가하며 가신세력들을 형성하였고, 이후 그 호위 아래 선두에서 세습후견연합을 이끌어왔다. 그리고 김정일 통치기 세력이 재(再)포진된 진영을 토대로 3대째 김정은 체제가 북한의 선군통치연합의 대를 이어 지배를 가시화하고 있다.  
 

 
젊은 후계자 김정은이 기존의 구도에 연입되면서 세습과정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권력세습은 제도화된 권력계승 장치에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후계자를 선정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의 경우 중심 인적(人的) 독재체제에서 발생한다. 김정일의 절대 권력유지를 지탱해온 책임과 더불어 아들 대에 이르러 새로운 수령으로 등극시켜야 할 임무를 맡게 된 북한의 선군가신집단들은 김정일 통치기에 확립된 구체제 수호의지와 통치연합 구성에 녹아든 핵무장과 반개혁 등의 정책수단들을 지속시켜야 한다는 데 이구동성으로 의견일치(Consensus)를 봐왔다. 그중 새롭게 가세한 통치 엘리트들은 가족 승계를 수용하는 실질적 세력으로 자리를 구치고 있다. 이들은 독재자 사후 불확실성을 감소시키고 기존의 권력분배 상태를 유지하며 기득 권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김진하 통일연구원 국제전략연구센터 소장은 “체제 내외에서 끊임없이 언급되는 ‘유훈’의 존재와 그 신성불가침의 권위는 실제 유훈의 존재 여부를 떠나 세습과정에서 이루어진 유언/무언의 집단적 합의의 절대성을 상징한다”고 분석하며 “이들 체제는 김정일 당시부터 구상돼 왔다. 그 핵심은 통치 엘리트 간 균등한 권력배분을 통한 세력균형체제의 수립이다. 김경희-장성택을 중심으로 한 친족 후견세력, 군부, 보안기구와 당 엘리트 등 각 세력에 권력을 균등하게 분배하며 상호견제와 균형 속에 독자적 세력 결집만으로는 절대권력과 중요 정책 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힘의 평형상태(Equilibrium)를 유지하는 게 목적이다”고 설명한다.   

현재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의 세습 이양을 위한 기간은 매우 짧았다. 김정은은 스스로 지지 세력을 규합하지 못한 채 권력을 세습 받았다. 과거 김정일의 조직지도부 등의 권력기반조직을 다지지 못한 상태다. 따라서 김정은의 정치적 미성숙과 갑자기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는 김정일로 하여금 후계자의 생존을 보호하기 위한 구조적 장치를 마련하는데 초점을 맞추도록 했다. 김정일은 죽기 전, 김정은이 자체 권력을 강화하여 김정일 통치방식의 개인독재체제를 재건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고자 고심했다. ‘수령독재 재건축’ 시점까지 김정은의 정치적 생존을 보장하는 장치의 마련이 시급했던 것이다.


또한 김정일은 세습후견인으로서 중책을 맡은 장성택조차 행정부장직과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직 등 한정된 권한만이 주어지도록 조치했다. 친족가신세력이나 군부 또는 보안세력 모두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경쟁상대를 압도하지 못하도록 불안정한 균형체제를 구조화하여 김정은이 권력을 세습했을 경우 서로 경쟁하도록 유도하고자 고안했다. 또한 엘리트 간 균형체제는 김정일의 ‘유훈’인 핵개발과 반개혁을 근간으로 하는 생전 정책의 사후적 연장을 보증하는 기능을 수행토록 했다. 김정은은 물론 친족과 민간 당료, 그리고 군부 모두, 세력 간 견제와 균형 속에 개혁-개방의 추진 등 정책방향 설정에 있어 특정한 계획(initiative)을 구사할 수 없음을 염려했다. 팽팽한 긴장 속 균형체제에서 섣부른 정책제안은 곧바로 파멸을 맞을 수 있다. 정치생존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권위주의 체제에서 위험스런 모험을 택하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김정일 기획 하의 ‘김정은 후계체계’는 김정은의 정치적 생존과 구체제의 보존을 목적으로 의도된 엘리트 간 균형체제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권력구도는 매우 불안정한 양상을 띤다. 김일성-김정일 통치기 중 고착된 독재자중심 인적 독재체제는 엘리트 간 이해 충돌을 조정할 제도적 기제들(예컨대, 중국공산당 정치국회의)의 권위와 권한을 제약한다. 수령체제에서 통치엘리트 재(再)세력 간 이해 조정과 최종 정책결정(선택)권한은 최고지도자에 집중될 수밖에 없고, 이는 최고지도자가 고도의 전략적 판단력, 축적된 정치적 경험을 갖추고 있을 것을 요구한다.


 
현재 북한 지도부는 김정은의 통치력 한계와 그 대용물로써 제도적 갈등해소 장치가 부재한 상황이다. 따라서 엘리트 간 이해갈등과 정책노선 상의 대립이 원활한 조정절차가 없이 그대로 노정될 수밖에 없다. 수령으로서 절대적 구심력을 소유한 김정일 통치 시기, 기관 간 경쟁과 갈등 상황은 역설적으로 개인독재체제의 안정을 불러왔었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 하에서는 중앙통제력 확보가 미약하여 권력조직 간 갈등과 경쟁 심화는 체제 불안정을 부추긴다. 김정은 정권 이후 나타나기 시작한 대내적 공포정치와 대외적 모험주의의 불가예측성 증대, 문맥에서 벗어나는 너무 빠른 국면 전환과 졸속 행보 등은 바로 이러한 지도자의 조정능력 약화와 엘리트 권력 조직 간 격렬한 경쟁을 엿보게 한다. 

2012년에는 김정은의 지지 하에 장성택 등 친족 민간정치세력 주도로 소위 ‘6.28대책’ 경제대책이 시행되고, 군부이권이 내각과 당(행정부) 등으로 환수되는 과정에서 군부의 반발이 있었다. 이 와중에 군부의 실세로 일컬어지던 리영호 총참모장의 전격해임(2012년 7월 15일 정치국회의)이 발생했다. 이후 2013년 중반까지 군 주요 보직의 잦은 교체로 군부 길들이기에 나선 것이 포착되었다. 또한 기존의 국가경제개발총국을 확대 재편한 국가경제개발위원회를 수립(2013년 10월, 김기석 위원장)하고, 내각과 인민위원회 주도로 경제구조를 개편하는 작업을 강화한 정황이 드러났다.


김정은 정권의 세력균형체제에서 친족세력의 부상은 여타 집단의 견제와 균형을 유발할 수 있다. 기득권을 김경희-장성택 부부가 주도하는 행정부와 내각에 빼앗길 위기에 처한 군부는 김정일의 유훈사업인 핵개발 사업추진을 빌미로 반격의 기회를 노리기 십상이다. 이러한 사업의 대외적 공세단계가 ‘일단’ 개시되면, 핵문제에 관한 한 선군정치 하에서 김정일한테 수여된 독점적 권리를 토대로 군부세력이 정책결정과정을 공중납치(High-Jacking)할 수 있다. 3차 핵실험 이후 준전시 상황을 유지하고 대외적 긴장조성과 대결국면을 유도하며 정책 이니셔티브를 장악한 군부는 친족민간정치세력의 약진을 저지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대해 김진하 통일연구원 국제전략연구센터 소장은 “그럴 경우 대외위기 발생 시 자신의 권력과 권위가 약한 김정은은 파워엘리트로 구성된 국내 정치의 청중의 시선과 주목에 큰 부담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도자로서 권위를 확립하기 위해 대외적 위기상황에 강경대응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를 추구하는 김정은의 욕구는 군부세력의 세력 확장욕심과 결합되면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군부는 대외적 위기상황을 도발함으로써 김정은을 인질화할 수 있다. 김정은은 역시 군부경제 개혁시기에는 장성택 등 친족세력과, 핵실험 이후 경색 국면에서는 군부와 궤적을 같이하며 전술적으로 말을 갈아타는 모습을 보였다. 상황을 주도적으로 해결하며 경쟁세력 간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는 수령으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주어지는 환경에 지나치게(?) 발 빠르게 적응하며 자신의 생존과 권력 확대를 추구하는 기회주의적 편승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들려준다.

북한의 현시대 새로운 수령인 김정은의 통제력 약화가 통치연합 내 엘리트 집단 간 조정과 정책결정 기능의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 정책노선 또는 이해관계 충돌은 엘리트 간에 암살, 숙청 등의 폭력적 방식을 동원한 정면충돌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임시방편적 야합과 갈등봉합의 엘리트 집단 간 ‘통나무 굴리기(Logrolling)’ 과정을 거쳐 불안정하고 예측이 어려운 방식으로 처리되는 양상이다. 결국 장성택 세력과 군부 간 알력은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의 병진노선’의 채택(2013년 당중앙위 전원회의 결의)으로 갈등을 형식적으로 봉합하는 마무리 수순을 밟았다. 


특히 병진정책이라는 미봉책은 국제사회와의 갈등을 야기하는 핵정책과 국제사회의 지원 증대를 필요로 하는 경제개발정책이 원칙 없이 얼버무려진 모순적 조치라는 분석이다. 친족민간세력과 군부 간의 대립과 갈등을 봉합하는 차원에서 단행된 것이다. 양 진영의 대립은 지난 2013년 말 조직부 등 보안세력과 군부 간 제휴로 약세에 처하게 된 장성택 숙청으로 가시화되었다. 장성택이라는 인물이 세력균형체제의 가장 큰 수혜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가 되었다. 김정일 당시 최고 후견인으로 지목되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견제 해왔던 조직부와 보위부 등 사찰, 보안기관을 압박하는 데서 기인한 결과물이다.


지난 2010년 6월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이제강의 교통사고, 2011년 1월 류경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의 처형, 2012년 4월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의 자살 등의 배후 인물로 장성택이 지목을 받아왔다. 또한 다른 권력조직인 군부 역시 장성택의 견제 대상이 되었었다. 군부경제 이권의 환수, 리영호 총참모장 숙청 역시 장성택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세력균형체제의 작동원리는 ‘견제와 균형’이다. 따라서 장성택을 향한 권력집중은 조직부-보위부-군부로 연결되는 반장성택동맹의 결집을 초래했고, 김정은은 예의 편승방식으로 반(反)장성택 동맹에 가세했다. 그로써 장성택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장성택 숙청과 황병서, 조연준 등 조직부 세력 부상 그리고 김정은의 권력 강화가 향후 북한체제의 작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주목되는 현실이다. 이를 통해 한반도에서는 먼저 대내 정치적으로 통치 엘리트층의 ‘통나무 굴리기’와 특권은 물론 권력 독과점을 위한 카르텔(Cartel)화가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엘리트 세력 균형체제에서 중요한 한 축을 이루던 김경희-장성택 노선의 제거는 이후 김정은-보안세력-군부로 권력이 이양됨을 의미한다.


현재 북한은 친족세력의 제거 후 홀로 남겨진 김정은이 여동생 김여정 등 신세대 직계가족의 중용으로 김경희-장성택 제거로 급속히 세가 확대된 현 조직부 세력과 힘의 균형을 맞추는 한편, 군과 사회부문에 대한 공안통치 강화로 신-세력균형체제를 가동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에 따라 반대 급부의 조직부 등 신진권력은 구체제 유지를 위해서는 김정은으로 대표되는 ‘김씨가계’의 정통성 유지가 필수요건이다. 또한 신 주도세력 역시 당군가(黨軍家)와 보위조직 등 주요 엘리트 제 세력 간 세력 균형의 붕괴가 총체적 체제 붕괴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음을 숙지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 구심 축으로써 김정은을 옹위하며 동시에 일 세력의 권력증대 견제전략을 구사하며 구체제를 고수하려 할 것이란 판단이다. 엘리트세력 간 경쟁과 알력을 제도적으로 규율할 기구적 유산이 박약한 환경에서 엘리트 세력균형체제는 불안전한 상호견제와 전술적 합종연횡으로 유지될 수밖에 없다. 현재는 불안정한 당군가 간 균형 속에 김정은이 외형상의 독재권을 누리고 있지만, 통치연합 내 세력판도 변화는 언제든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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